새로운 전기차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각 브랜드가 내놓는 전기차를 보면 이들이 그리는 청사진이 보인다. 어떤 브랜드는 이른 시일 내에 전동화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또 어떤 브랜드는 내연기관과의 공존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BMW의 전략은 ‘파워 오브 초이스’다. 기존 내연기관 외에도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그리고 앞으로 내놓을 수소전기차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 아래 나온 차가 지난해 말 풀 체인지 된 7시리즈다. BMW코리아의 시승회에서는 740이 당첨되는 바람에 순수 전기차인 i7을 타볼 기회가 없었는데, 최근에 테슬라 모델 S 플레드를 타보고 i7을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 차의 성격은 정반대다. i7은 7시리즈의 명성 위에 순수 전기차라는 새로운 옷을 입혔고, 모델 S 플레드는 전 세계의 모든 전용 전기 세단 중 가장 강력한 파워를 내세운다.
i7의 차체 크기는 길이 5390㎜, 너비 1950㎜, 높이 1545㎜이고, 휠베이스는 3215㎜다. 5m를 훌쩍 넘는 길이와 2m에 육박하는 너비가 플래그십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모델 S 플레드는 길이 5021㎜, 너비 1987㎜, 높이 1431㎜이고, 휠베이스는 2960㎜다. i7보다 높이가 확연히 낮고, 휠베이스가 짧은 데서 운전자 중심의 스포티한 세단임을 짐작게 한다.
공차중량은 i7이 2750㎏, 모델 S 플레드가 2160㎏으로 모델 S가 가볍다. i7은 740i와 비교하면 545㎏이 무겁다. 반면 모델 S 플레드는 대형 전기 세단치고 상당한 경량화를 이루었고, 무엇보다 전기차의 난제인 낮은 차체 높이를 구현했다는 게 돋보인다.
실내 구성 역시 두 차의 성격이 완전히 극과 극을 보여준다. i7은 전통적인 럭셔리 세단에 첨단 기술을 조합했는데, 모델 S 플레드는 기존 차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느낌이다.
이는 실제 운전할 때 극명하게 느껴진다. i7은 큰 고민 없이 차의 기능을 곧바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모델 S 플레드는 터치스크린에서 기능별 조작 방법을 미리 숙지 않으면 난감한 순간이 온다. 물론 모델 S도 익숙해지면 큰 어려움은 없지만, 아무래도 직관성 면에서는 i7이 우위다.
두 차의 콘셉트가 다르긴 하지만, 화려함 면에서는 i7이 낫다. 특히 파노라마 디스플레이 아래로 흐르는 영롱한 빛깔의 앰비언트 라이트가 실내를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이 정도 크기의 앰비언트 라이트는 다른 차에서 본 적이 없다. 다만 앰비언트 라이트의 밝기를 너무 밝게 하면 야간 주행 때 옆 창에 반사가 되어서 운전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
모델 S 플레드는 세로형 스크린을 썼던 구형과 달리 가로형 17인치 스크린을 중앙에 배치하고, 스티어링 휠 앞쪽에는 간단한 기능만 표시하도록 했다. 17인치 중앙 스크린은 운전석 또는 조수석 쪽으로 전동 틸팅이 되는 게 특징이다. 운전자만 있다면 운전자 쪽으로, 조수석 승차자가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보고 싶을 땐 조수석 쪽으로 틸팅하면 된다.
F1 경주차처럼 생긴 요크 스티어링 휠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첨단 자동차를 모는 느낌은 좋은데, 역시 처음에는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시승 때도 주차할 때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다가 잠깐 손이 허공을 맴도는 순간이 있었다.
뒷좌석은 말할 것도 없이 i7의 우세다. 모델 S 플레드가 운전자 중심으로 꾸며져 뒷좌석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i7은 시어터 스크린을 비롯해 놀라운 첨단 장비로 가득하다. 게다가 메리노 울 소재를 쓴 시트의 안락함도 i7를 돋보이게 해주는 요소다. 비행기 일등석에 탑승하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하는 뒷좌석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는 최적화된 시트 각도와 여유로운 헤드룸을 통해 한층 편안하고 여유로운 착석감을 제공한다.
모델 S는 구형보다 넓어진 공간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을 갖춘 팔걸이, 미디어 재생 기능을 갖춘 센터 콘솔 모니터 등으로 편의성을 보강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모델 S는 뒷좌석 승차자보다는 운전자를 위한 차다. 앞좌석에서 두 개의 스마트폰을 무선 충전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뒷좌석 승차자에게 비중을 둔다면 i7이 더 좋은 선택이다.
오디오도 차이가 있다. 모델 S는 960W 출력의 22개 스피커를 갖췄는데, 음질은 꽤 괜찮다. i7은 한술 더 떠서 35개의 스피커와 1965W의 출력으로 응수한다. 바워스 & 윌킨스 다이아몬드 4D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은 헤드레스트 내장 스피커와 시트 익사이터가 비장의 무기다. 앞좌석 등받이에 내장된 스피커는 비트가 강한 음악을 재생하면 승객의 등을 강하게 때리면서 흥분시킨다. 한 마디로 오디오는 i7의 압승이다.
i7은 오토매틱 도어 기능이 탑재된다. 차량 외부나 내부에서 버튼 조작만으로 도어를 여닫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운전석에서 차량 도어를 개별적으로 또는 일괄적으로 열거나 닫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주변에 장애물이 있으면 차량 측면 하단에 설치된 센서가 장애물을 인지해 도어가 열리는 각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모델 S는 오토매틱 도어 기능이 없고, 손으로 닫을 때도 약간 힘을 줘서 밀어야 닫힌다. 1억원 중반대의 차라면 도어가 덜 닫혀도 자동으로 닫히는 기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승차감은 두 차 모두 훌륭한데, i7이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피션트, 웰빙, 스포츠, 시어터, 아트 등의 다양한 모드가 각기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있는데, 예를 들어 웰빙 모드를 선택하면 운전석 시트 마사지 기능이 자동으로 켜진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 반응이 다를 뿐 아니라 앰비언트 라이트가 붉게 변하면서 실내 분위기를 확 바꾼다.
i7은 어댑티브 2-축 에어 서스펜션을 기본으로 탑재해 속도와 주행 모드에 따라 차량의 높이를 최적화된 위치로 조절한다. 여기에 시승한 i7 xDrive60 모델은 차체의 기울어짐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이그제큐티브 드라이브 프로가 추가됐다.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ARS), 액티브 롤 컴포트(ARC) 기능이 포함된 이그제큐티브 드라이브 프로는 서스펜션에 있는 별도의 48V 전기모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코너에서도 차체의 평형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좌측과 우측 바퀴들이 서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차체 기울어짐을 능동적으로 억제한다. 이러한 기술 덕에 이번에 장거리 시승을 했음에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모델 S 플레드는 컴포트와 스포츠, 자동, 고급 설정 모드가 있고, 서스펜션은 매우 높음, 높음, 보통, 낮음 등 네 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스포츠 모드를 설정하면 자동으로 가장 낮게 설정된다. 승차감은 초기형보다 다소 부드러워졌다. 너무 단단하다는 사용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모델 S 플레드로 고속 주행을 즐긴다면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는 게 필수다. 나는 시승 중에 컴포드로 해놓고 고속 질주를 하니까 차가 약간 뜨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무거운 배터리가 배치된 전기차의 특성상, 고속 질주 때는 서스펜션을 제일 단단하게 조이는 게 안전하다.
가속력은 모델 S 플레드의 압도적인 승리다.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이 무려 2.1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들을 제칠 수 있는 성능이다. 방심하고 가속했다간 목디스크가 올 정도로 가속감이 강렬하다.
i7도 최고출력 544마력도 만만치 않다. 이 거대한 체구의 차체를 스포티하게 몰기에 충분한 힘이다. 다만 1020마력의 모델 S 플레드와 비교할 땐 열세(0→100㎞/h 가속 4.7초)인데, 앞으로 i7의 고성능 버전도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i7의 인증 주행거리는 438㎞인데, 이번 시승 때 완충을 해보니 585㎞까지 찍혔다. 국내 인증 주행거리가 유럽에 비해서 짧게 나오는 만큼, 일상적인 주행상황에서는 500㎞를 어렵지 않게 넘길 것으로 보인다.
모델 S 플레드의 인증 거리는 474㎞다. 복합 전비는 4.1㎞/㎾h로, i7의 3.7㎞/㎾h보다 우월하다. 최고시속 역시 모델 S 플레드는 322㎞, i7은 240㎞로 차이를 보인다. 다만 모델 S 플레드의 322㎞/h 속도는 유료 업그레이드가 장착된 경우인데, 현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가격은 테슬라 모델 S가 듀얼 모터 모델 1억2806만1000원, 트라이 모터를 단 플레드 모델이 1억4106만1000원이다. 듀얼 모터 모델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555㎞로 더 긴 대신에 최고시속은 240㎞이고 0→100㎞/h 가속시간은 3.2초(플레드는 2.1초)다.
모델 S는 화이트 색상만 추가 금액이 없고, 블랙, 블루, 실버 컬러는 215만5000원, 레드는 431만원이 추가된다. 여기에 19인치 기본 휠 대신 21인치로 바꾸면 646만5000원이 더해진다. 실내 역시 올 블랙만 추가 금액이 없고, 화이트나 크림 색상을 조합하면 287만4000원이 추가된다. 일반적인 원형 스티어링 휠은 기본이고, 요크 스티어링 휠은 37만원을 더 내야 한다.
또한 내비게이트 온 파일럿, 자동 주차, 자동 차선 변경 등의 기능을 갖춘 오토파일럿을 추가하려면 452만2000원이 지불해야 한다. 도심에서의 자동 조향, 교통 신호 제어 기능이 포함된 풀 셀프 드라이빙 기능은 904만3000원이 추가된다. 이렇게 가능한 옵션을 모두 더한 모델 S 플레드의 가격은 1억6412만3000원이다. 현재 테슬라코리아에서 모델 S와 모델 X를 구매한 이들에게 슈퍼차저 3년 무상 이용권을 증정하는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다.
i7 xDrive60은 디자인 퓨어 엑설런스 이그제큐티브 패키지가 2억1570만원, M 스포츠 패키지 이그제큐티브 패키지가 2억1870만원며, 투톤 컬러는 2500만원이 추가된다. BMW는 하반기에 더 낮은 가격대의 모델을 추가할 예정이어서, 모델 S나 벤츠 EQS 등과 더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전반적으로 i7와 모델 S 플레드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완성도 높은 전기차였다. 운전자 위주로 타면서 속도를 즐긴다면 모델 S 플레드가 매력적일 수 있고, 뒷좌석 승객도 배려한다면 i7이 더 좋은 선택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