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수제 미드십 수퍼카가 될 스피라는 스틸 스페이스 프레임에 카본 파이버 보디를 얹었다. 시승한 스피라 터보는 2.7리터 터보 엔진으로 500마력의 최고출력과 58.3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0~100km/h 가속에 3.8초, 최고속도는 332km/h의 가공할 성능을 자랑한다. 인증 막바지 단계에 있는 스피라 터보를 통해 원초적인 매력과 무궁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 사진 / 박기돈 (rpm9 편집장)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대기업 위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수준 높은 자동차 문화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선 다양성이 함께 담보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최근 국산 자동차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들이 등장하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프리미엄급 후륜구동 승용차와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생산되기 시작했고, 미니나 뉴 비틀이 부럽지 않을 멋진 스타일의 크로스오버 모델도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아직도 역시 거대 자동차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오랫동안 많은 자동차 매니아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모델이 바로 스피라다. 쇼카와 컨셉트카 등을 제작했던 프로토 자동차가 정통 미드십 스포츠카 제작을 결정하면서부터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스피라는 처음 프로토타입 시절 ‘PS-II’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름을 스피라로 확정하고 개선된 모델을 선보였었고, 지난 2007년 어울림 모터스가 스피라에 대한 권리를 인수하면서 현재는 어룰림 스피라로 판매를 코앞에 두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03년 초대 스피라를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잠깐 운전을 해 볼 수 있었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였을 뿐 아니라 스페이스 프레임 바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드십 스포츠카의 아직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무척이나 감명 깊었었다. 그리고 이제 양산을 눈 앞에 둔 최종 진화 버전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03년의 프로토 스피라
최근 스피라는 GT 마스터스 시리즈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도 하고, 제원과 사진, 동영상 등을 통해서 그 존재를 많이 알려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증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가능성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대기의 정체로 인해 수 많은 미세먼지와 수증기들이 만들어 낸 안개가 한반도 전체를 뒤 덮으면서 여름인지 가을인지조차 분간이 안 되던 날이 며칠간 이어진 끝에 마침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왔지만 결코 반갑지 않았다. 바로 그날 새벽에 스피라 촬영과 시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을 겸한 간단한 시승을 위해 새벽 5시 30분 우리는 분당 율동 공원에 모였다. 애석하게도 일기 예보는 비교적 정확했고 새벽 5시 풍경은 비가 조금씩 내리는 모습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 빗속에 만난 스피라를 찬찬히 둘러 볼 여유도 없이 곧바로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해야 했다. 분당을 출발하면서 필자가 먼저 스피라의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도어 옆 쪽에 숨어있는 버튼을 들어 올려 문을 열고 낮은 차체의 평평한 바닥에 얹힌 레카로 버킷 시트에 몸을 실었다. 시트는 몸에 꼭 맞았고 시트에 밀착되는 느낌은 서서히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페달 조작을 고려해 시트의 거리를 조절하고 등받이를 조절하고, 그리고 스티어링 휠의 각도를 조절했다. 스티어링 휠은 텔레스코픽 기능은 없고 틸팅 기능만 있지만 운전 자세는 비교적 잘 만들어졌다. 4점식 안전벨트를 채우고 벨트를 몸에 맞게 조이자 시트와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완벽하게 고정되었다.
다시 한 번 페달들을 조작해 보면서 자세가 적당한지 점검했다. 클러치를 밟는 발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클러치는 성능에 걸맞게 적당히 무겁고 단절감도 적당하다. 모모 제품을 사용하는 우람한 근육질의 투톤 가죽 스티어링 휠은 발표된 사진 속의 스피라 S에 장착된 제품과는 달랐지만 직경이 작고 그립감이 좋아 고성능 스포츠카에 잘 어울린다. 이 작은 스티어링 휠을 통해 이 무시무시한 스피라를 조련해야 한다.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양산 시판 버전에는 버튼 시동 장치가 달리겠지만 테스트카인 시승차에는 일반 시동장치가 달려 있다. 경쾌하게 시동이 걸리자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진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도 이제는 아이들링 상태부터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다. 시동이 걸리면서 동시에 속도계와 회전계 바늘은 한 바퀴를 회전 한 후 자기 위치를 잡는다. 인피니티 모델에서 보았던 것과 닮았다. 룸미러 너머로 스피라의 빨간색 엔진 커버가 살짝 보이지만 그 너머 시야는 거의 막혀 있는 거나 다름 없을 정도로 룸미러로 뒤 시야 확보는 거의 힘들었다.
출발하기 전 클러치의 답력을 다시 한번 시험해 보고는 드디어 기어를 1단에 넣었다. 기어봉의 길이도 적당하고 기어 작동 거리도 무난하다. 조작감은 평범한 편으로 엄청난 성능을 감안하면 좀 더 절도 있는 동작을 보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기어레버 디자인은 실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고성능 수퍼카에 어울릴 만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야 할 것 같다. 클러치는 유격이 별로 없어 부드럽고 신속하게 클러치를 놓으면서 출발해야 한다. 시내 주행 수준으로 3천 rpm 정도에서 변속하지만 그 정도에서도 엔진 사운드는 엄청나다. 주변에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겠다.
시내를 지나 도시 고속화 도로에 진입하는 동안 운전은 우려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적당히 무거운 클러치와 뒤통수를 때리는 엔진과 배기 사운드, 그리고 회전수가 3천을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커지는 날카로운 터빈 소리와 엑셀을 뗄 때마다 터져 나오는 블로우 오프 밸브 소리 등이 긴장감을 무시로 끌어 올리긴 하지만 정작 근육을 긴장시켜야 할 상황은 별로 없었다. 승차감도 노면의 정보를 잘 전달하지만 지나치게 딱딱한 수준은 아니다. 앞 뒤 모두 더블 위시본 방식인 서스펜션은 수제작의 장점을 살려 오너가 원하는 대로 세팅을 할 수 있다. 시승차 정도의 서스펜션 세팅이라면 시내 주행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준이다.
스피라와 처음 친해지는 시간쯤으로 생각하며 부드럽게 회전을 올리고 신속하게 변속하면서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기어는 6단까지도 수시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고속화 도로에서 드디어 조금씩 회전수를 올려 보기로 하고 더블 클러치로 회전수로 맞추면서 기어를 한 단씩 내리자 회전수와 함께 동반 상승하는 엔진 사운드는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 올린다. 3단 80km/h 정도에서 엑셀을 강하게 밟으며 스로틀을 열자 순간적인 회전 상승 후에 잠시 터빈이 작동하는 래그가 오고 그리고 나서는 지금까지의 긴장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짜릿함이 등을 떠 민다. 그렇다. 터보가 작동하면서 폭발적인 가속력이 스피라와 필자를 함께 쏘아 보내는 것이다. 엄청난 속도감도 그렇거니와 터빈이 회전하는 날카로운 사운드 조차 멀리 사라져가는 느낌은 실제 속도감 이상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3단에서 이 정도의 가속력이라면 1단과 2단은 어떨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어느새 회전은 6천을 가리키고 신속하게 클러치를 끊으면 엑셀을 때는 순간 ‘피융’하는 블로우 오프 밸브 사운드가 다시 한번 스피라를 쏘아 보낸다. 기어를 4단에 넣고 클러치를 연결하면서 엑셀을 밟으면 또 다시 엄청난 힘이 등을 떠 민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우주선이 빛 속을 통과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하긴, 아직 새벽 시간인데다 살짝 내린 비로 촉촉해진 도로 위에는 가로등 불빛들이 내려 앉아 있어 가속 시에는 그 불빛들이 흐르는 괘적이 실제 내 눈에 빛 줄기로 보일 정도다.
이렇게 시작된 스피라와의 밀회는 몇 명의 드라이버들을 교체해가며 촬영까지 곁들이면서 수 차례 반복되었다. 올림픽대로와 영종대로를 지나는 동안 필자는 함께 주행하는 옆 차에서, 달리는 스피라를 촬영했다. 아직 어둑어둑한 도로 위에서 여명과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달리는 스피라를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촬영자만의 특권이다. 그 동안 스피라의 사진과 전시되어 있는 차량을 보면서 내심 디자인이 심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도로위를 달리는 스피라에서는 페라리의 라인이 살짝 감지되면서 은근한 속도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피라의 옆 모습에서는 어깨 라인이 무척이나 강하지만 앞 펜더를 떠나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는 단순한 일직선이어서 수퍼카가 가져야 할 화려함에는 다소 못 미친다. 하지만 도어 아랫부분을 지나 뒤 펜더 앞쪽까지 뚫려 있는 대형 공기 흡입구가 미드십 스포츠카로서의 위상을 높여준다.
앞 모습은 이전 모습에 비해 훨씬 차분해 졌다. 삼각형에 가까운 헤드램프 속에는 3개의 동그란 램프가 세로로 배열되어 있어 개성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엔진이 들어 있지 않은 보닛 중앙엔 에어 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지붕을 지나 뒤로 넘어가면 유리로 덮인 엔진룸 안쪽으로 빨간 엔진 커버가 보이고, 엔진 후드가 끝나는 부분에는 독특한 형태의 공기 흡입구가 위치한다. 강력한 터보엔진으로 신선한 공기를 더 많이 보내기 위한 장치로 지붕을 넘어 내려온 공기들이 딴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모조리 터빈 속으로 빨아 들일 듯한 모습이다. 이 공기 흡입구는 터보 모델에만 마련되어 있다. 뒷모습은 엉덩이를 한껏 치켜든 보트 테일 형상이 상당히 독특하다.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검은색의 라인이 무슨 의미인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가면서 뒷모습을 촬영하는 동안, 치켜 올라간 엉덩이 아래로 최신 스포츠카들이 앞 다투어 적용하고 있는 대형 디퓨저를 달면 훨씬 안정적이면서 멋진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보았다.
스피라의 차체 크기는 길이×너비×높이가 4,357×1,924×1,216mm이며, 휠베이스는 2,660mm, 트레드는 앞 1,580, 뒤 1,610mm, 지상고 138mm다.
사실 스피라는 개발 여건 상 오랜 시간의 풍동 시험을 거치진 못했을 터다. 하지만 300km/h를 넘나들 고성능 수퍼카를 지향하는 스피라에게 에어로 다이나믹 특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부분인 만큼 차후 하체 언더 커버나 리어 디퓨저 등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들뜨고 긴장됐던 첫 만남은 영종도의 선착장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비가 간간이 뿌려지고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면서 파도가 점차 높아져 갔다. 그 가운데서 내 외장 촬영을 하면서 좀 더 찬찬히 스피라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스피라는 엔진이 운전석 뒤, 그리고 뒤 차축 앞 쪽에 위치하는 미드십 스포츠카다. 엔초 페라리, 포르쉐 카레라 GT,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포르쉐 박스터, 로터스 엘리스 등이 모두 미드십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중 가장 무거운 장비인 엔진과 변속기 등이 차체 중앙에 위치함으로 인해 앞 뒤 바퀴에 걸리는 하중을 적절히 분산하면서 최적의 운동성능을 얻어 낼 수 있는 방식이지만 뒷 좌석을 만들 수 없어 2인승의 순수 스포츠카에만 적용되고 있다. 스피라의 앞 뒤 중량 배분은 48:52로 최적의 수준이다.
그리고 스피라는 모노코크 방식을 사용하는 일반 양산 스포츠카들과는 달리 최고의 성능을 품으면서도 소량 생산에 적합한 스페이스 프레임 방식으로 생산된다. 철제 스페이스 프레임에 차축과 엔진, 변속기 등 모든 부품들을 얹어 조립한 후 보디를 얹는 방식이다. 스페이스 프레임 방식을 사용하면 뛰어난 차체 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소량 생산에 적합하다. 스피라의 프레임은 스틸로, 그리고 보디는 카본 파이버로 제작된다. 양산형 스포츠카의 경우 경량화를 위해 보디에 알루미늄 등의 합금을 사용하거나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카본 파이버는 이들보다 더 가벼우면서도 강하지만 제작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어 주로 레이싱 머신에 사용되고 있다.
스피라는 V6급 엔진으로부터 초 고성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차체 경량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스페이스 프레임 방식에 카본 파이버 보디를 얹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수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스피라 S의 경우 차체 중량이 1,080kg, 터보 차저를 장착한 스피라 터보는 1,130kg에 불과하다. 참고로 엔초페라리 1,365kg, F430 1,450kg,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1,665kg, 닛산 GT-R 1,740kg 등, 초 고성능을 발휘하는 수퍼카의 세계에서도1.4톤 정도면 가벼운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스피라에 장착되는 엔진은 현대 투스카니 엘리사에 얹히는 V6 2.7리터 DOHC 엔진에 수퍼차저나 터보 차저가 더해진다. 수퍼차저를 얹은 스피라 S는 최고출력 400마력/6,000rpm에 최대토크 40.5kg.m/5,500rpm을 발휘하며, 터보 차저를 얹은 스피라 터보는 500마력/6,000rpm에 58.3kg.m/5,500rpm을 발휘한다고 발표되었다. 400마력과 500마력의 힘은 사실 요즘 좀 달린다 하는 스포츠카에서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스피라는 그 파워에다 초 경량이라는 무기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성능은 어마어마해진다. 어울림모터스 측에서 밝히고 있는 가속 및 최고속 제원에 따르면 0~100km/h 가속이 스피라 S는 4.8초, 스피라 터보는 3.8초가 걸리며 최고속도는 각각 305, 332km/h에 이른다. 계속해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시승차는 현재 휠마력 350마력 수준으로 디튠하여 테스트 중인 상태였다.
우리가 흔히 수퍼카라고 부르는 모델들에서도 0~100km/h 가속력과 최고속도는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 0.몇 초의 차이와 최고속 몇 km/h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개발비와 가격 상승이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3.8초와 332km/h의 실력은 실로 엄청난 실력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발표된 이 제원이 실제 스피라의 실력임을 증명하는 일이 남은 셈이다.
시승차의 실내는 여기 저기 가죽이 헤지기도 하고 버튼이 몇 개 사라지기도 한 상태였다. 이는 이 차량이 어울림에서 두 번째로 제작된 차량으로 오랜 기간 테스트를 계속 해 오고 있는 차량인지라 내 외관이 신차 상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이점 감안해 주시기 바란다.
실내는 스페이스 프레임 방식 스포츠카답게 바닥이 낮고 평편하다. 게다가 레카로 버킷 시트는 허벅지와 옆구리 날개가 높고 딱딱해 시트 안으로 몸을 들여 놓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성능 수퍼카에 레카로 버킷 시트는 필요 충분 조건임에 틀림없다. 시트 뒤 쪽에는 아주 약간의 여유공간이 있어 작은 손가방 정도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스티어링 휠 안쪽으로 보이는 계기판은 두 개의 큰 원과 가운데 한 개의 작은 원에 크롬 링을 씌웠는데 계기에 톱니 형상을 더해 차별화했지만 숫자들의 시인성은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7천 RPM부터 레드존이 시작되며 회전수는 9,000, 최고속도는 330km/h까지 기록되어 있다.
시트를 제외한 실내는 검정색에 빨간색 스티치를 넣은 가죽으로 꾸몄다. 센터 페시아에서 센터 터널로 이어지는 패널들은 카본 파이버로 스포티하게 꾸미고 바깥 라인을 따라 역시 빨간 스티치로 장식했다. 파이오니아 오디오 아래에는 대형 모니터가 위치하는데 이는 어울림 모터스의 모회사라 할 수 있는 어울림 네트웍스가 공급하는 Car-PC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에 터치 스크린 방식으로 작동되며, 오디오와 공조 장치 제어는 물론, 와이브로 무선 인터넷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시승 때는 미처 Car-PC까지 테스트해 볼 여유가 없어서 아쉽게도 독자들께 자세한 소개를 드리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실내외를 모두 둘러보고 나서야 엔진룸을 살펴보았다. 패션 백팩을 연상케 하는 빨간 엔진 커버 가운데 백두산 호랑이를 형상화한 스피라 엠블렘이 박혀 있다. 그런데 엔진이 정 중앙이 아닌 약간 오른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엔진이 장착되는 높이도 기대보단 살짝 높은 듯하다. 최근 스포츠카들은 운동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엔진을 최대한 낮게 배치하는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스피라도 이제 시작인 만큼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을 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시승차에는 스피라를 위해 디자인된 19인치 단조 알루미늄 휠이 장착되었으며 타이어는 앞쪽에 금호 엑스타 KU19, 225/40ZR19 사이즈가, 뒤쪽에 한국 벤투스 V12 evo, 275/40ZR19 사이즈가신겨져있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시승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번 시승은 스피라의 모든 성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인증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일뿐더러 시승차 또한 연구 개발을 위해 제작된 차량이어서 양산될 스피라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승의 초첨은 스피라의 잠재력과 그 가능성에 모아졌다.
시승 동안 스페이스 프레임 방식 스피라의 뛰어난 차체 강성과 폭발적인 가속성능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고속도로에서는 뛰어한 고속 안정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최고속에 도전해 보지는 않았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브렘보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제동 성능 또한 탁월하다. 반면 코너링에서는 극도의 원초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스피라에는 자세 제어 장치인 ESP는 고사하고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TCS조차도 달리지 않는다. 그러니 엄청난 파워의 미드십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코너를 돌아나갈 때 당연히 발생하는 오버스티어는 모두 운전자가 컨트롤해야만 하는 과제다. 하지만 스피라는 뒤가 흐르더라도 비교적 예측 가능한 움직임을 보여 아주 과격한 상황이 아니라면 운전자가 적절히 컨트롤 하는 재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커 보였다.
짧았던 스피라와의 만남으로 많은 궁금증들이 해소되었고, 그 짧았던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무궁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자 아직까지 미완인 스피라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아쉬움 또한 더 커져 버렸다. 스피라의 엄청난 파워와 단단함은 원초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스피라는 그런 원초적인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다. 아니 어쩌면 이 땅에서 이런 원초적인 파워를 간직한 수퍼카를 만난 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축복을 누리길 기대하고 있는 많은 예비 오너들이 스피라의 모든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 때는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들이 모두 개선되고 성능과 가격에 걸맞은 고급스러움도 함께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자동차 매니아들은 큰 자부심을 하나 더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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