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한 에쿠스는 세계 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동차가 되어 돌아왔다. 고급스러움이나 조립 품질, 갖추고 있는 최첨단 기능들만 놓고 보면 동급 최고다. 하지만 디자인적인 창의성과 완성도, 기본기가 필요한 주행 성능 부분에서는 최고의 경쟁자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축하와 환호를 보냄과 동시에 주마가편(走馬加鞭)이 필요한 때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폭스바겐 페이톤, 렉서스 LS. 이상은 현재 전 세계에서, 10년 만에 뒷바퀴 굴림 대형 세단으로 돌아온 현대 에쿠스와 동급으로 볼 수 있는 모델 전부다. 그 위로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수퍼 럭셔리 세단 롤스로이스, 마이바흐, 벤틀리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라고 말할 수 있는 모델들이다.
다시 말하면 전 세계에서 현대 에쿠스보다 좋거나 동급이라고 볼 수 있는 모델이 단 5개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페이톤과 A8을 묶어서 생각하면 에쿠스는 세계 랭킹에서 최소한 5위 이상이다. 그 동안 이 등급에 속하기 위해 애 써온 재규어, 캐딜락, 링컨 등은 엄밀히 따질 때 현대 에쿠스 아래로 자리 잡아야 한다. 마세라티가 선보인 콰트로 포르테가 있긴 하지만 역시 워낙 스페셜리스트라 대량 생산 모델인 이들과 비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현대는 마침내 세계 정상의 반열에 에쿠스를 올려 놓았다. 단지 현대의 주장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그 동안 수 많은 자동차들을 경험해 온 필자의 판단으로도 에쿠스는 세계 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몇 달 전 현대 남양 연구소에서 에쿠스를 처음 만나 잠깐 시승해 보았고, 그리고 이번에 정식으로 에쿠스 VS380 모델을 시승하고 얻은 결론이다. 시승 내내 세계 정상급에 오른 우리 자동차에 대해 흐뭇함과 감탄이 연신 쏟아졌고,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디딘 에쿠스가 어떻게 성장해야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정체성 및 철학적인 면에서까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처럼 거물이 되어 돌아온 에쿠스에 대해서는 소개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번 시승기에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 시승기에서 빠진 상세한 이야기들은 다음에 다시 언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다.
에쿠스의 디자인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눈에 많이 익어져 이제는 큰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처음 에쿠스를 보았을 때 여러 모델들에서 보아왔던 부분들을 짜깁기한 듯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와중에 나름 현대가 신경 쓴 터치들이 개성으로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5,160mm에 달하는 거대한 차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역동적인 라인의 터치에 기인한 듯하다.
대표적으로 뒤 펜더 위쪽을 감싸는 라인이 긴 호흡일 수 밖에 없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을 단절시키면서 도약하는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라인은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통해 익숙해졌고, 최근에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세단과 쿠페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디자인의 최신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컨티넨탈 GT는 쿠페이고, E클래스는 아래 급임을 감안하면 동급에서 이처럼 역동적인 라인을 적용한 것으로서는 처음이다.
이처럼 대형 세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라인의 적용은 에쿠스의 이미지를 역동적인 모습으로 각인시킬 수 있어, 이전 세대 에쿠스를 운전할 때 가지게 되는 거대함에 대한 부담감이 무의식 속에서 많이 줄어들고, 오히려 퍼스널 카를 운전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대형 럭셔리 세단답게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앞모습은 제네시스 세단, 쿠페와 패밀리 룩을 만들진 못했지만 나름의 디자인 DNA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지 궁금해진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VS460을 포함한 VS380 프레스티지 VIP팩 II 모델에 세로 그릴이 장착되고, 그 아래 등급 모델에는 가로 그릴이 장착된다. 시승차는 VS380 프레스티지 VIP팩 II 등급이다. 라디에이터 그릴 한 가운데에는 사각지대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HID 헤드램프에는 스티어링 방향에 따라 램프가 돌아가는 어뎁티브 기능이 더해졌고 그 아래로 LED 방향 지시등을 배치했다.
이전 에쿠스부터 사용하던 엠블렘이 그대로 유지 되면서 현대가 만든 대형 프레스티지 세단으로서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스티어링 휠, 기어 레버, 알루미늄 휠, 트렁크 리드 등 엠블렘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 현대자동차 엠블렘 대신 에쿠스 전용 엠블렘을 사용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엔진 후드 끝 부분에 세워진 날개 형상 크롬 엠블렘은 이제 당당히 최고의 가치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옆모습에서는 짧은 앞쪽 오버행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3,045mm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를 품고도 뒤쪽 오버행은 상당히 긴 것 또한 인상적이다. 5,160×1,900×1,495mm 휠 베이스 3,045mm에 이르는 차체 크기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스탠더드 모델의 5,089×1,870×1,475mm 휠 베이스 3,035mm 에 비하면 살짝 크고, 롱휠베이스 모델의 5,206×1,871×1,473mm 휠 베이스 3,165mm에 비하면 작은 정도다.
렉서스 LS와 비교하면 스탠더드 모델의 5,030×1,875×1,465mm, 휠 베이스 2,970mm 보다는 당연히 크며, 롱휠베이스 모델의 5,150 ×1,875×1,465mm 휠베이스 3.090mm 와 비교하면 전장은 크고 휠베이스는 조금 작은 정도다.
이처럼 에쿠스는 사이즈 면에서 동급 경쟁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살짝 우세에 있다. 향후 전장 5,460mm에 달하는 리무진 모델이 등장하면 각 경쟁 모델의 롱휠베이스 모델보다 훨씬 커지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뒷모습은 리어 램프와 범퍼 하단 배기구 등이 외관에서 렉서스 LS를 가장 많이 닮은 부분이다.
알로이 휠은 기본형에 17인치가 장착되고 그 이상 등급에는 크롬처리된 18인치가 장착된다. VS460의 경우 옵션인 19인치 크롬 휠을 선택할 수 있다.
실내는 고급스러움에서 동급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형부터 데시보드를 가죽으로 덮고, 알루미늄 패널들도 중후하면서 고급스럽다. 조립 품질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VS380에서도 프레스티지 등급이상에는 우드 그레인이 리얼 우드로 바뀌고 천정은 스웨이드로 덮인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한 가지를 꼽으라면 시트 쿠션이 너무 부풀어 있다는 점이다. 충분히 안락하면서도 쿠션 부분이 조금 오목하면 감싸는 듯한 느낌이 좋을 텐데, 에쿠스의 시트는 전 좌석 모두 시트가 소위 빵빵하게 차 있어 시트에 묻히는 느낌이 들지 않고 덩그러니 올라 앉는 느낌이다. 특히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높게 배치되어 있어 시야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VIP를 배려하는 느낌이 부족하다.
VS380 프레스티지 VIP팩 II가 적용된 시승차에는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EAS), 차량 통합 제어 시스템(VSM),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프리 세이프 시트벨트, 운전자 통합 정보 시스템(DIS), 어댑티브 HID 헤드램프,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S), 렉시콘 로직7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열선 스티어링 휠, 후석 엔터테인먼트 모니터, 모젠, 전동식 파워 도어, 전동식 파워 트렁크, 리얼 우드 시트백 테이블 등 썬루프와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를 제외한 모든 장비가 탑재되었다. 그래서 가격은 1억에서 60만원이 빠지는 금액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몇 가지 핵심적인 기능들을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에는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세계 최초로 중앙선을 인식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주행 차선을 넘어 설 경우, 경고음이 울리면서 차선 이탈을 알려주는데, 만약 황색실선인 중앙선을 침범할 경우에는 경고음과 함께 시트 벨트를 수 차례 잡아 당겨주어 더욱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방향 지시등을 켰을 경우에는 일체의 경고가 발생하지 않으며, 우측으로 황색 실선을 넘을 경우에도 경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 패드의 우측 면에 별도로 마련된 버튼을 눌러서 경보 시스템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스티어링 휠의 버튼으로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면 자동으로 차간 거리 유지 기능이 함께 작동한다. 차간 거리 설정은 크루즈 컨트롤 작동 버튼 아래쪽에 있는 버튼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1단, 2단, 3단이 변하면서 거리가 설정 된다.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은 승차 인원에 관계없이 일정 차고를 유지해 주는 기능을 기본으로 하며, 차고를 기준보다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험로를 감안해 차고를 높였더라도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게 되면 자동으로 기준차고로 낮아진다. 서스펜션에는 감쇠력 조절 기능이 함께 마련되어 있어 스포츠 모드를 선택할 경우 댐퍼가 단단해 지면서 코너링이나 고속 주행에서 안정감이 높아진다. 시내 주행에서는 요철을 통과할 때 시트를 통해 전달되는 충격이 살짝 커진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드러움을 지향하고 있어 스포츠 모드라 하더라도 완전히 단단해 지는 정도는 아니다. 이러한 세팅은 다분히 렉서스 LS460을 지향한 모습이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경우 에어 서스펜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기준 차고를 낮춤으로써 주행 안정성을 확연하게 끌어 올리고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에어 서스펜션을 이용해 차고를 높여 주면 되므로 굳이 기준 차고를 높게 설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된 차량들은 원하는 만큼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충분히 부드러운 만큼 에쿠스도 향후에는 좀 더 주행 안정성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에쿠스에는 V6 3.8 람다와 V8 4.6 타우 엔진이 얹힌다. 람다 엔진은 제네시스 등에 얹혀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는 엔진이고, 타우 엔진은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엔진이지만 이미 미국시장에 제네시스와 함께 소개되었고, 미국 워즈 10대 엔진이 선정되는 쾌거를 이룬바 있는 엔진이다.
배기량 3,778cc V6 DOHC D-CVVT 람다엔진은 최고출력 290마력/6,200rpm과 최대토크 36.5kg.m/4,500rpm을 발휘한다. 제네시스 세단과 동일하며 제네시스 쿠페에 비해서는 출력과 토크가 살짝 낮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 얹혔다.
에쿠스 VS380의 전체적인 주행 감각은 부드러운 타입이다. 가속도 부드럽게 진행되고 변속도 부드럽다. 승차감도 부드러운 설정인데 후륜 구동 특유의 경쾌함과 요철을 타고 넘을 때의 안정감은 많은 향상이 이루어졌다.
가속은 넘치지는 않지만 충분히 여유가 있는 수준으로 달려 나간다. 킥다운으로 급가속하거나, 지긋이 눌러서 점진적으로 가속하거나 부드러움과 여유가 살아 있다. 100km/h로 정속 주행할 때 회전수는 1,700rpm을 살짝 넘는다. 변속은 50, 100, 140, 195km/h에서 이루어진다. 4단까지는 크게 무리가 없이 여유 있게 가속했지만 5단으로 넘어서서는 조금씩 힘에 부치는 느낌을 받는다. 5,000rpm에서 230km/h를 지나고 나면 가속은 탄력에 의존하게 되며 약 5,300rpm 부근에서 250km/h를 간신히 기록한다.
회전이 상승하는 느낌이라든지 부드러움에서는 제네시스 쿠페 때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일상적인 주행 영역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달리기 실력이지만, 역시 배기량 대비 끝까지 날카로움을 살려주는 실력은 부족하다. BMW 735i 같은 경우에는 250km/h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가속하는 파워를 보였었다. 이런 점이 오랜 기간 동안 최고의 엔진을 만들어 온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변속기도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부드러움이 돋보이며 크게 불만이 없다. 하지만 스포티한 주행을 원할 경우에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수동 모드에서의 변속이 대체로 굼뜨다. 시프트 패들도 없다. 스포츠 모드도 없다.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를 맞춰주는 기능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전혀 불만이 없을 수 있지만, 동급의 세계적인 경쟁자들이 순발력 있는 변속과 놀라운 달리기 실력을 갖추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재 자체 개발을 마무리하고 있는 자동 8단 변속기는 어떤 실력을 갖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스티어링은 조향 시에만 전기 모터가 자동으로 유압 펌프를 작동시키는 방식인데 직진하다가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면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정도로 역시 일상영역에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특히 차체 크기를 감안했을 때 스티어링 휠 직경이 상당히 작고 스포티한 편이어서 만족감이 높다. 하지만 고속으로 갈 경우 살짝 무거워지는데 그칠 뿐 여전히 충분히 무거워지지 않고 유격이 줄어들지 않아 주행 안정감에서 많은 손해를 본다.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직진 구간에서는 직진 안정성이 좋아 보이지만 살짝이라도 스티어링 휠을 움직여야 할 때는 큰 유격과 가벼운 반응으로 인해 불안한 거동을 보이게 된다.
VS460보다 많이 팔리게 되는 VS380은 일상영역에서 충분히 여유를 가질 만큼 모자람 없는 힘을 가졌고, 6단 변속기는 큰 스트레스 없이 부드럽다. 일반 고개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뒷좌석에 VIP를 모시는 용도로 사용될 경우 주행 성능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만큼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코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경쟁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달리기 실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현대가 이룬 기술 발전을 위해 투입한 것보다 더욱 많은 시간과 자금,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네시스 쿠페 같은 차종을 더욱 잘 발전시킬 필요가 있고, 모터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을 축적하는 일도 필요하다. 한편 현대가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는 렉서스의 경우 엄밀히 말해서 아직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동적인 주행 성능을 지향하기 보다는 렉서스 만의 부드러움을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현대는 이제 계속 렉서스를 좇을 지 아니면 더욱 높은 수준인 유러피안 럭셔리 세단을 지향할 지 선택해야 할 위치에 도달했다.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길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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