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10월 16일 인천 영종도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2010년형 체어맨W 기자 시승회 및 간담회를 열었다. 회사의 중장기 회생전략에 대한 기자간담회(관련기사 참조)에 앞서 짧게 나마 2010년형 체어맨W를 만나볼 수 있었다.
지난 10월 1일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간 2010년형 체어맨W는, 2008년 2월 처음 출시된 체어맨W(왠지 더 오래 전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의 부분변경 모델로, 크고 작은 21개 항목이 바뀌거나 새로 추가되었다. 내부적으로는 기존 체어맨W가 ‘W200’, 2010년형이 ‘W205’라는 코드명으로 구분되다는데, 신차 출시 이후 1년 반 만에 나온 연식변경 모델치고는 변화의 폭이 크게 다가왔다.
외관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승차감 향상과 NVH(소음, 진동) 개선 등 몸에 와 닿는 차의 특성을 손본 탓이기도 하고, 쌍용 스스로 이 차를 ‘성공적 기업 회생의 단초’라 표현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전사적으로 형성된 비장함이 베어있는 듯 느껴져서 이기도 할 것이다. 기존에 중•대형 SUV 위주로 되어 있었던 제품 포트폴리오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내년의 C200부터 중•소형 CUV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내세운 쌍용차로서는 적어도 신모델들이 준비될 때까지는 가장 믿음직한 버팀목이 체어맨W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종도 하얏트 리젠시 호텔 일대에 마련된 시승코스는 60km 정도로, 차 한대에 3명의 기자가 함께 타고 번갈아 운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km를 운전한 뒤, 다음 20km는 동반석, 나머지 20km는 뒷좌석에 앉아 차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식이다.
먼저 앞좌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변화로는, 흰색이었던 센터페시아의 버튼들이 어두운 톤으로 바뀐 것과 도어트림의 좌석 전동조절 스위치에 금속질감이 입혀진 것을 들 수 있다. 변속기 레버의 디자인도 더 고급스러운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바뀌었고, 실내거울에는 하이패스 기능이 통합되었다. 일반적인 송풍구 외에 타공된 메탈 트림에서도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에어샤워벤트’랄지, S클래스를 연상시키는 윈도우 스위치,스웨이드로 마감된 천장 등은 여전하다.
이번에 신설된 ‘럭셔리 그레이 에디션’을 선택하면 ‘유럽 명차의 것과 같은’ 밝은 회색 가죽 마감이 적용되고 우드그레인 색상 역시 그에 어울리게 바뀐다. 가격은 기존의 최고급형이라 할 수 있는 ‘VVIP’급보다 50만원이 더 비싸지만 그만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 클로징 도어’라고도 하는 파워 도어, 그리고 파워 트렁크는 거의 모든 급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앞문이든 뒷문이든, 닫을 때는 문턱에 살짝 걸칠 정도까지만 움직여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끝까지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닫히며, 트렁크 덮개도 원터치로 열리거나 닫힌다. (시승차처럼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된 경우에는 트렁크 덮개가 열렸을 때 짐을 싣기가 편하도록 뒷부분이 낮아진다.) 트렁크 덮개에는 손잡이와 우산꽂이가 추가되었다.
뒷좌석에서도 냉온장 기능의 콘솔박스나 도어-뒷유리의 전동식 햇빛가리개, 좌석 전동 슬라이딩 기능 등 최고급차다운 편의사양들은 여전하다. 이른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최고급 차다. 그렇지, 뒷좌석 공간을 넓히기 위해 앞좌석 두께를 줄이면서 예전에 있었던 등받이 내장 접이식 테이블은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 최고급차 뒷좌석에 앉는 분들은 잘 안 쓰는 기능이었던가 보다.
무엇보다 2010년형 체어맨W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할 것은 기존의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 안쪽에 리바운드 스프링이 추가된 것으로, 큰 요철을 통과할 때는 충격을 더욱 줄여주고 급격한 핸들링 시에는 차의 쏠림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차체의 뒷바퀴 앞쪽 부위에는 유럽산 고급차들을 벤치 마킹한 보강재가 추가돼 소음 및 진동 차단 능력이 높아졌다. 뒷좌석에서 느껴지는 승차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들이다.
시승팀은 차의 전반적인 고급스러움이나 뒷좌석에서의 만족감이 높다는 데 대해 의견을 함께 했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과속’으로 통과해도 뒷좌석에서는 아무런 불쾌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다만 고속주행시에는 풍절음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일단은 다른 부분의 소음이 워낙 적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닷바람이 심한 시승장소의 영향 탓도 있는 듯 했다.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풀 가속 때의 엔진음도 조용한 편은 아니다. 스포티한 엔진음을 살리고 있는 것은 체어맨 시리즈가 기술적인 뿌리를 두고 있는 독일제 고급세단들의 성격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페달은 묵직한 반면, 밟는 정도에 비해 튀어나가는 정도가 시원치 않다 했더니, 시승차는 체어맨W의 최고 사양인 V8 5000이 아니라 CW700. 여기에 얹힌 엔진은 기존의 체어맨 시절부터 써온 3.6리터 직렬 6기통으로, 25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보급형(?)이라 할 수 있는 CW600은 3.2리터 직렬 6기통 225마력이고, V8 5000은 이름 그대로 5.0리터 V8엔진을 얹어 306마력의 힘을 낸다.
예전에 시승했던 V8 5000의 주행감을 떠올렸기에 비교가 되었을 뿐, 일상적인 주행환경을 고려하면 CW700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벤츠에서 가져온 국내 최초, 최대 배기량의 V8 5.0 엔진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에쿠스는 최대 배기량이 4.6리터이고 최근 출시한 리무진 모델에만 V8 5.0리터 엔진이 얹힌다. 단, 둘 다 현대의 독자개발 엔진이다.)
변속기는 V8 5000과 마찬가지로 벤츠에서 가져온 자동 7단을 쓰는데, V8 5000 시승 때 아쉬움을 남겼던 간헐적인 변속충격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짧은 시승구간에서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기 보다는 운전석의 요추 마사지 기능을 작동시켜 잠시나마 긴장을 풀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턴시그널 스위치의 작동감이나 속도감응 조향장치의 과도한 무게감 차이는 좀더 손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다.
시승차에는 기자3명 외에도 마침 쌍용차의 종합평가팀 직원이 설명 요원으로 동승했기에 체어맨W대비 신형 에쿠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앞바퀴 굴림이었던 기존 에쿠스와 달리 상품성이 대폭업그레이드 된 완전 신형 모델이 경쟁제품으로 나온 상황이고, 거기에 최근의 회사 사정까지 겹쳐 조금은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현대차는 이제야 막 후륜구동 고급차를 개발, 생산하기 시작한 반면 쌍용은 (비록 벤츠의 플랫폼에서 출발했더라도) 10년 넘게 체어맨 시리즈를 개량,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아직은 만듦새-주로 고속안정성과 핸들링성능-에서 격차를 갖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어진 내용이지만, 쌍용은 적어도 상품성에 관한 한 체어맨W가 에쿠스를 이긴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쌍용자동차가 공식적으로 꼽는 체어맨W의 강점은 실수요층의 취향에 맞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스타일링, 10년 넘게 그들의 사랑을 받아온 후륜구동 최고급 세단으로서의 체어맨 브랜드, 에쿠스에는 없는 4륜구동 모델, 벤츠에서 가져온 V8 5000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 하만카돈 브랜드의 17스피커 오디오, 앞좌석 무릎에어백을 포함한 10개의 에어백 등이 있다.
문제는 고초를 겪는 사이 망가진 판매망이다. 하지만 워낙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은 규모의 판매망으로도 대등하거나 심지어 우세한 경기까지 펼쳐왔던 체어맨이기 때문에, 향후 회생승인을 받고 판매망을 재정비한 뒤 본격적인 마케팅에 다시 나서게 되면 에쿠스의 판매량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쌍용 측의 설명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는 이번 같은 짧은 시승이 아니라 에쿠스와의 제대로 된 비교시승 자리도 만들겠다고 했다. 부디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독점이 아니라 경쟁 체제여야 고르는 재미도 있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