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MBC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왕자님이나 다름없었던 안재욱(‘강민’역)은 백마대신 Z3를 타고 나와 안방극장에 ‘BMW’라는 세 글자를 신선한 화제로 올려놨었다. 그 Z3가 후속모델인 Z4(2002년)를 거쳐 2세대 모델인 뉴Z4로 거듭났다. ‘지붕을 열 수 있는 2인승의 스포츠차량’ - 로드스터라고 하면 벌써 7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BMW이지만, 이번 뉴Z4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BMW 로드스터 최초로 소프트탑 대신 접이식 하드탑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무게와 하중이동 때문에 안 된다더니 하드탑이 왠말이냐!’라는 논쟁은 현행 3시리즈 컨버터블의 데뷔 때 이미 끝났다. Z4에도 하드탑이 적용된다고 했을 때, ‘너 마저…’라는 배신감보다는 ‘역시 그렇군’하고 담담히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을 것 같다. 애초부터 리트랙터블(접이식) 하드탑인 ‘바리오 루프’를 달고 나타나 독특한 지위를 구가했던 SLK와 달리, BMW는 Z3시절부터 로드스터와 쿠페를 따로 제작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이처럼 유별난 고집은 한편으로 벤츠와 구별되는 BMW의 매력이기도 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인 신형 Z4는 살짝 커진 차체와 함께 접이식 하드탑을 채용하면서 종전보다 몸무게가 150kg~250kg씩 불었다. 보닛과 두 조각 짜리 지붕구조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었지만 로드스터와 쿠페를 동시에 노린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물론 몸무게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만큼 힘은 세졌고 차대는 단단해졌으며, 실내공간은 넓어졌고 사양은 고급스러워졌다. 이래저래 구형보다 많이 팔 조건들을 갖춘 셈이다.
여성고객들의 외면을 받았던 디자인은 아예 여성디자이너들의 손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바꿈시켰다. 구형이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생명체와 같은 부드러운 느낌이 강해졌다. 로봇상어에 실감나는 피부를 입힌 듯 하다. 혁신이 아니라 진화에 가깝다는 면에서는 먼저 선보인 7시리즈와도 유사한 흐름이다. 구형 Z4 로드스터에 옵션인 탈착식 하드탑을 씌우면 뒷모습이 독일군 헬멧을 연상시켰었는데, 이번 Z4가 지붕을 덮은 모습은 몸의 일부인 양 한결 자연스럽다. 구형보다 옆 창문은 40%, 뒤 창문은 52%를 키워 시야를 넓혔으나, 뒷부분이 패스트백 스타일로 길게 떨어져 트렁크를 짤록하게 만들었던 해치백형의 Z4쿠페와는 다른 형태의 덮개를 가졌다. Z4쿠페의 ‘더블버블’ 형상을 닮은 지붕의 캐릭터라인은 보닛에서 트렁크까지 연결되어 유기적인 느낌이 높아졌다.
둥글린 테일램프 주변은 6시리즈를 닮았고, LED를 적극 활용한 입체적인 램프 구성은 7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차를 옹색하게 보이도록 했던 구형의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도끼로 찍어 내린 듯 했던 뒷부분이 곡면화되면서 길고 넓어 보이게 되었다. 예쁘장한 뒷모습에 비하면 얼굴은 우악스럽다. 가로로 길게 찢은 콧구멍과 치켜 뜬 눈이 강한 존재감을 갖지만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차급에 비해 지나치게 무게를 잡은 것은 아닌지.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생김새도 아닌 것 같다. 아직은 구형의 쳐진 눈꼬리가 더 좋다. 옆라인은 아주 늘씬해졌다. 길다란 보닛과 운전석에 바싹 붙은 뒷바퀴를 가진 BMW Z4는 비례 자체가 동급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로드스터로 꼽힌다. 앉는 위치도 낮으므로 처음 운전해보는 이에게는 아래쪽 시야를 가로막는 길고 넓은 보닛이 꽤나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Z4의 상징이었던 측면의 Z자 굴곡과 BMW엠블렘 일체형의 깜빡이가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덕분에 더 길고 늘씬해 보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보닛에서 도어까지 연결되면서 아래로 쳐졌다가 뒷바퀴의 휠아치를 만나면서 위로 꺾여 올라가는 캐릭터라인은 클래식 로드스터의 이미지를 살린 Z4디자인의 백미. 실제로 늘어난 차체길이는 15cm정도이고 휠베이스는 구형과 거의 비슷하다. 폭은 1cm정도 넓어졌다. 차체색상으로 처리하던 A필러를 검정색으로 바꾼 것도 눈에 띈다.
실내는 한층 고급스럽고 화려해졌다. 시승차의 내장이 투톤가죽과 어두운 우드그레인의 조합인 탓도 있겠으나 예전의 간결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보다는 우아하고 호사스럽게 꾸며졌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은색장식을 두른 부분이 많아졌고 사양자체도 좋아졌다. 처음으로 신형 i드라이브가 달리면서 대시보드 상단에 고해상도 모니터가 얹혔고, 조이스틱 방식의 변속레버와 전동식 주차브레이크의 적용으로 세련된 분위기가 더해졌다. 모터로 구동되는 8.8인치 모니터는 1,280x480픽셀의 고해상도를 자랑하고, 80GB 하드디스크를 이용한 한글 내비게이션과 12GB 용량의 음악파일 저장공간, 블루투스, 6DVD 체인져를 지원한다. USB와 AUX 연결부는 암레스트 안쪽에 마련되어 있고, 14개의 스피커가 달린 로직7 오디오 시스템도 적용되어 있다. 두 명 타는 작은 차에 그 많은 스피커를 어디다 전부 달았을까 싶은데, 영화 DVD를 재생해보니 과연 성능이 대단하다. 모니터가 가로로 긴 탓에 화면 위아래가 잘리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Z4 쿠페에 달렸던 모니터는 ‘화면보지 말고 운전이나 할 것’을 강요하는 듯한 시대에 뒤쳐진 물건이었는데, 이제야 제짝을 찾은 것 같다. 이처럼 치렁치렁한 장비가 과연 필요한 차인가에 대한 물음을 논외로 한다면 말이다. 바꿀 수 있다면 HUD와 바꾸고 싶은 부분이다. 운전에 집중하고 싶다면 i드라이브의 옵션 메뉴를 통해 모니터를 접을 수는 있다.
암레스트에 오른팔을 걸치다 보면 변속레버보다 왼쪽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i드라이브 조작부가 손목 부근에 눌려서 원치 않는 조작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팔을 변속레버 오른편으로 내려놓는 편이 신경이 덜 쓰인다. 변속레버 오른편에 i드라이브 조작부가 있는 7시리즈에서는 오히려 이를 자주 만지기 위해 팔을 오른쪽으로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차량설정 등 각종 메뉴는 당연히 7시리즈보다는 한결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타이어 공기압 이상유무나 오일량을 표시해주는 그래픽 화면 따위를 보고 있자면 확실히 세대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후방카메라는 없지만 그래픽 화면을 통해 전후방 주차센서에 감지된 장애물을 영역별 색상으로 구분해주며, 후진시에는 동반석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아래쪽을 비추도록 할 수 있다. 룸미러는 물론 사이드미러에도 눈부심 방지기능이 있다. 오디오 조작부와 자리를 바꾼 공조장치는 엔진시동버튼 오른편으로 나란히 네 개의 원형 조작부를 마련했다. 온도조절장치는 좌우 독립식이고, AQS와 스티어링휠에서 조작할 수 있는 공기순환 조절 버튼이 있다. 스티어링휠 열선기능이나 스마트키는 국내사양에서 빠졌다. 크루즈컨트롤은 속도계 바깥쪽으로 설정속도를 표시해주는 별도의 지침이 뜨는 BMW특유의 방식이다.
시승차는 대시보드와 계기판, 모니터 덮개를 모두 가죽으로 감쌌고, 도어트림과 시트 일부에는 스웨이드 재질을 적용했다. 다른 BMW 컨버터블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시트와 내장재에는 태양광 반사기술을 적용해서 땡볕에 내놔도 표면이 덜 뜨겁다. 시트에 송풍기능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3단 열선만 달렸다. 헤드레스트 일체형인 시트는 형상이 그리 과격하지 않으나 옆구리 지지 부분을 전동식으로 조절할 수 있고 허벅지 받침의 거리를 수동 조절할 수 있다. 이는 동반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림이 두툼하고 직경이 작은 스티어링휠은 각도와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운전석에는 메모리 기능이 있고, 동반석은 높이조절이 되지 않지만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다. 물론 등받이는 뒤로 기울일 수 있을 뿐, 눕힐만한 공간은 없다. 시트 뒤쪽에는 서류 가방이나 윈드디플렉터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그물망이 달린 수납공간이 있는데, 등받이를 한번에 앞으로 젖힐 수 없기 때문에 쓰기가 편하지는 않다. 특이하게도 스키스루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시승차는 그 부분에 탈착식 3단 수납공간을 넣었다. 뭐가 됐든, CD체인져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 좋다. 실내공간이 넓어지기도 했지만 공간활용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구형에서는 주차브레이크 레버가 센터콘솔을 보란 듯이 잠식했었지만 신형에서는 전동식으로 바뀐 덕분에 팔꿈치 부근에 컵홀더가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컵홀더의 크기나 위치는 대시보드 양끝에서 튀어나왔던 기존 방식이 차라리 쓰기 편한 듯 하지만 말이다. 글로브박스는 여전히 좁지만 가둠식 도어포켓과 운전석 왼편의 서랍, 그리고 동반석 하체쪽의 그물망까지 활용하면 수납공간에는 딱히 불만이 없을 듯 하다. 어두울 때는 시트 뒤편과 손잡이, 도어포켓, 발공간 등 곳곳에서 신경 쓴 조명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하드탑은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20초 만에 열거나 닫을 수 있다. 소프트탑은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하고 부피가 작아 이것이 8초 만에 가능했었다. 차가 정차해있어야 작동이 시작되고, 버튼은 동작이 완료될 때까지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버튼위치가 편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리모컨으로 여닫는 것도 가능하지만 안될 때가 더 많은 듯 하다. 지붕 안감은 단단한 재질이고, 시트처럼 밝은 색으로 되어있다. 밀폐성은 쿠페나 다름없다. 지붕을 닫은 상태로 달리다 보면 새로 나온 Z4’쿠페’를 타고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쿠페라고 생각하고 보면 뒷유리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은색 롤바가 독특하다. 유리창은 네 개를 동시에 원터치로 내릴 수 있고, 도어쪽에는 물론 숏드롭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트렁크 덮개는 BMW엠블럼의 상단부분을 눌러 여는데, 전동식으로 잠김이 풀리면서 끈적하게 작동한다. 운전석에서 열 수 있는 스위치가 달린 사양도 있으나 시승차에는 없었다. 적재용량은 지붕을 내렸을 때 180리터이고, 지붕을 올리면 310리터가 된다. 지붕을 올린 상태에서는 46 인치 골프백을 두 개까지 실을 수 있다고 하는데, 큰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 지붕개폐에 관계없이 트렁크 용량이 260리터였던 구형 Z4로드스터도 골프백은 2개를 실을 수 있다고 했었다. 참고로 Z4쿠페는 340리터, 3시리즈 컨버터블은 210/350리터의 트렁크용량을 가졌다. 트렁크 바닥에는 스페어타이어 없이 배터리만 삐딱하게 자리잡고 있다. 무게배분 때문에 뒤에 놓은 것이긴 하지만 조개처럼 열리는 보닛 밑을 보면 배터리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 자체가 없다.
BMW의 코드명으로 따지면 1세대 Z4 로드스터가 E85, Z4 쿠페가 E86이고,이번 뉴Z4는 E89에 해당한다.
올해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제네바 모터쇼에서 신고식을 치른 뒤 봄부터 시판에 들어간 뉴 Z4는 국내에서도 5월초부터 판매되고 있다. E89에 얹히는 엔진은 일단 세 가지로, 모두 가솔린 직렬 6기통이다. 기본형인 ‘sDrive23i’는 2.5리터, 중간급인 ‘sDrive30i’는 3.0리터 자연흡기이고, ‘sDrive35i’는 3.0리터 직분사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여기에 보급형인 4기통 모델과 최상급인 M버전도 추가될 전망이다. 이중 국내에 들어온 것은 30i와 35i이며, 이번 시승차는 35i다. ‘sDrive’라는 낯선 이름은 X6가 그레이드명으로 끄집어낸 ‘xDdrive’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상시사륜구동인 X6의 DPC에 상응하는 후륜구동차용 구동제어장치가 달릴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댑티브 M 서스펜션’과 심화된 ‘드라이브 다이내믹 컨트롤(DDC)’이 적용되긴 했지만, 이름에서 강조할 정도의 장비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재로서는 ‘sDrive’가 단순히 후륜구동임을 의미하며, ‘sDrive35i’라는 긴 그레이드명(엠블렘은 S가 더 크고 모두 대문자이다)은 차체 옆면에만 적힌다.
35i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엔진은 335i 세단/컨버터블에 얹혀 각광받고 있는 N54B30이다. 배기량은 2,979cc, 최고출력은 306마력으로, 구형 M3의 3.2리터 엔진을 이식했던 Z4 M로드스터/M쿠페의 343마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3.0 Si가 265마력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의 출력증강이 이루어진 셈이다. 트윈터보 덕택에 1,300–5,000rpm의 넓은 영역에서 40.8kg.m의 뛰어난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물린 트랜스미션 또한 BMW의 최신 아이템인 7단 더블 클러치 변속기(DCT)로, 첫 수혜자였던 M3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음으로써 신형 Z4의, 특히 35i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35i에 6단 자동변속기를 얹으면 0-100km/h 가속에 5.2초가 걸리지만, 국내 기본사양인 7단 DCT는 이를 0.1초 단축시킨다. 외형상으로는 6시리즈와 같은 디자인의 조이스틱 스타일 변속레버를 채택했다.
사용법은 그대로다. N에서 레버왼쪽의 버튼을 누르며 밀면 R, 당기면 D이고, 상단의 P버튼을 누르면 주차상태가 된다. D에서 왼쪽으로 빼면 S(스포츠)모드가 되고, 앞뒤로 움직이거나 스티어링휠의 변속패들을 건드리면 M(수동)모드가 된다. 보편적인 방식과 달리 앞으로 밀면 시프트다운, 당기면 시프트업이 되는 것이라든가, 수동모드에서도 회전한계에서는 자동으로 시프트업이 이루어지는 것, 킥다운이 가능한 것 또한 여전하다. 모드를 오갈 때 ‘철컥 철컥’하는 레버의 짤막하면서도 견고한 움직임은 운전이 아니라 조종을 하고 있는 듯한 손맛을 준다. 스티어링휠의 변속패들은 조작감이 다소 투박한 듯 하나, 진지하게 다룰 때에는 오히려 명쾌하게 느껴지고, 반응 또한 그러하다. 신속 정확하면서도 매끄럽게 작동하는 변속기는 첨단기술의 효용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수동모드에서의 풀 가속시 2단과 3단으로의 변속시점은 60km/h, 100km/h로, 6,500~6,800rpm정도에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335i는 7,000rpm을 기점으로 50km/h, 100km/h가 자동변속포인트였다. 0-100km/h 가속시간은 335i 세단이 5.8초, 335i 컨버터블이 6.0초로 되어있다. 순항시 Z4의 엔진회전수는 80km/h에서 1,600rpm, 100km/h에서 2,000rpm으로, 역시 100km/h에서 1,900rpm이었던 335i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킥다운을 해보면 80km/h에서는 7단에서 2단으로, 100km/h에서는 7단에서 3단으로의 스킵시프트가 이루어진다.
335i도 스포츠카가 아닌 순정 차량으로서는 제법 날카롭고 큰 배기음을 냈는데, 같은 엔진을 얹은Z4에서는 그것이 한층 부각되어있다. 하드탑의 밀폐성이 뛰어나 지붕을 닫은 상태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지만, 창문을 열거나 지붕을 내린 상태에서는 시동을 걸 때부터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는다. 킥다운과 함께 회전수가 솟구칠 때의 감흥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북을 두드리는 듯한 저회전에서의 묵직한 고동소리나 변속과 함께 ‘퍽’하고 내뱉는듯한 효과음이 주는 재미에 비하면 고회전에서의 소리는 질감이 아쉽게 느껴진다. ‘다이내믹 드라이빙 컨트롤’ – DDC는 엔진반응과 조향반응, 변속반응, DSC의 개입을 운전자 성향과 주행환경에 따라 통합제어해주는 장치로, 구형에서는 ‘스포츠’ 버튼 하나로 ON/OFF시켰던 것이 신형에서는 노멀/스포츠/스포츠+의 3단계로 바뀌었다. 35i에는 어댑티브M 서스펜션이 적용돼 차고가 10mm 더 낮고, 댐퍼 감쇄력이 DDC설정과 연동된다. DDC의 단계를 높이면 가속페달 입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조향조작에 힘이 들어간다. 변속기를 D에 두었다면 DDC를 스포츠+까지 높이더라도 계기판 상의 변속모드는 계속 D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기어를 내리고 엔진회전수를 높게 쓰는 패턴으로 바뀐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DSC의 개입을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계기판에 미끄러짐 경고 표시가 뜨기 때문에 일반도로에서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이 부분은 새 7시리즈와 같다. 별도로 마련된 DSC OFF 버튼을 짧게 누르면 DTC(다이내믹 트랙션 컨트롤)모드가 되고, 길게 누르면 DSC OFF가 되는데, 스포츠+에서는 자동으로 DTC 모드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즉, DSC가 완전히 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자가 기술을 발휘하고 거기에 책임을 질 여지가 많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가속페달에 대한 응답이다. 급출발, 혹은 저속으로부터의 급가속을 위해 페달을 한번에 콱 밟으면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차가 부드럽게 출발한 후에야 회전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노면이 말라있고 접지력을 저해할 요소가 없다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고, 당연히 DSC(DTC)가 개입할 여지도 없다. 과도한 출력으로 타이어가 미끄러지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엔진힘을 떨어뜨리거나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입력단계에서부터 비효율적인 명령을 걸러내는 셈이다. 1,535kg의 공차중량에 비해 넘치는 엔진 힘을 생각하면 초기 반응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Z4가 그리 꽉 막힌 차는 아니다. 포르쉐가 PDK와 함께 스포츠플러스 모드에서 론치컨트롤(launch control)을 제공했던 것처럼, Z4도 같은 기능을 준비했다. 스포츠+모드에서 변속기를 M모드 1단에 둔 뒤,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계기판에 깃발(체커기)표시가 나타나면서 엔진회전수가 4,000rpm에 고정된다. 이때 왼발을 브레이크 페달에서 떼면 요란한 스키드음과 함께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급출발이 된다. DSC(DTC) 작동램프가 깜빡 거리긴 하지만 차체 뒷부분이 옆으로 도는 것은 잡아주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 스스로 진행방향을 바로잡는 조향 조작을 해주어야 한다. 차에 무리를 주고 싶다면 이 스릴 있는 ‘게임기능’을 반복 사용하면 된다. 더블클러치 변속기는 구조적으로 일반 자동변속기와 다른 탓에 처음 접하는 이들을 당황시킬 만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Z4의 경우 약간의 클리핑 현상이 있고 언덕길에서는 2초간 뒤로 밀림을 방지해주기 때문에 한결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그러한 한편으로, 변속기의 모드 변경 시 주위 반향을 통한 금속성 작동음이나 감속 시 멀찌감치서 들리는 덜컥거리는 소리는 색다른(?) 변속기를 다루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러모로 PDK버전의 포르쉐 박스터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바로 그 강도의 차이야말로 Z4와 박스터를 가장 뚜렷하게 나누는 요소이기도 하다. Z4의 외침은 귓전을 때리되 가슴을 울리지는 않으며, 크루징도 한결 조용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PDK는 ‘스포츠플러스’ 모드에 놓을 경우 반응속도를 높이기 위한 반대급부로 변속충격이 두드러지지만, Z4의 DCT+DDC는 그러한 정도의 적극성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BMW의 DCT라 해도 M3의 M DCT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박스터에 비하면 Z4는 한결 편하고 안락한 차다. 각종 제원과 가격은 비교를 부추기지만 막상 타보면 지향점이 다르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스포츠 로드스터로서의 순수성을 아꼈던 구형 Z4라면 모를까 신형에 와서는 박스터보다 SLK쪽에 더 가깝게 다가선 느낌이다. 그러니,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Z4는 이전에도 박스터만큼의 수고 없이 박스터의 꼬리를 물 수 있는 차였다. 따라서, 그냥 부드러워졌다기 보다는 관용도가 높아졌다고 표현하고 싶다. 한정된 범위에 대한 고집을 내세우기 보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유연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진화된 디자인과 접이식 하드탑이 그렇고, DDC와 어댑티브M 서스펜션이 그렇다. 슬렁슬렁 다닐 수 있는 노멀 모드가 추가되었을 뿐, 작정하고 달리면 Z4의 예리한 핸들링과 민첩한 몸놀림은 여전함을 느낄 수 있다. 제한된 환경이나마 와인딩코스를 통과하면서 느낀 Z4의 달리기실력은 결코 빠지지 않았다. 2002년부터 단종때까지 18만대의 Z4로드스터와 1만7천대의 Z4쿠페를 팔아 별 재미를 보지 못한 BMW가 최근의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형 Z4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특성이 시장에 먹힐 것으로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유연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 35i에서 걸리는 부분은 19인치 휠과 타이어이다. 국내사양의 35i는 앞바퀴에 225/35R19, 뒷 바퀴에 255/30R19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포텐자 RE050A ‘런플랫’을 끼우고 있다. 그 사이즈와 디자인은 측면 외관의 멋스러움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이 사실이나, 국내 도로 현실상 부담스러운 편평비가 Z4의 발목을 잡는다. 도로 이음매에서의 쿵쿵거리는 승차감은 둘째치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요철에 혹시나 휠이 상할 새라 신경이 곤두선다. 출중한 달리기 실력을 뒷받침할 휠,타이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일상에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한발 양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내사양에서는 30i도 225/40R18과 255/35R18을 끼우고 있지만 미국사양에서는 35i에 225/45R 17, 255/ 40R17이 기본이다. 총 주행거리가 아직 4,000km에 미달한 시승차는 455km를 주행한 이번 시승기간의 평균연비가 8.4km/L였고 ‘여행컴퓨터’에 남아있는 3,590km 거리의 평균연비가 6.8km/L였다. 공인연비는 신차발표 당시 미정이었으나 최근 9.9km/L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료탱크 용량은 55리터이다.
▶ [rpm9] BMW Z4 시승기 사진 갤러리RPM9 [ http://www.rpm9.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