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페라리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갖추었던 이태리의 스포츠카 메이커 마세라티, 현재는 페라리와 한 솥 밥을 먹고 있지만 여전히 스포츠카 메이커로서의 이미지가 강한데, 그런 마세라티가 만든 최고급 스포츠 세단은 어떤 느낌일까?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마세라티가 최고급 스포츠 세단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인 것은 2003년, 그로부터 지금까지 콰트로포르테와 같은 개성강한 모델은 없었다. BMW M5, 메르세데스-벤츠 S63 AMG, 아우디 S8 등이 경쟁 무대에 서곤 했지만 이들은 럭셔리 세단을 베이스로 한 만큼 태생부터가 다르다 보니 모델 자체를 직접적인 맞수로 세우기는 어려웠다. 마침내 올해 포르쉐가 파나메라를 선보이면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포르쉐 파나메라는 숙명의 라이벌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애스턴마틴 라피드가 그 경쟁 대열에 발을 내디딜 예정이다.
그럼에도 위의 세 모델들 역시 스포츠카 메이커가 만든 럭셔리 스포츠 세단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여전히 서로 많은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스포츠세단들이 대부분 쿠페를 닮은 차체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비해, 가장 먼저 데뷔한 콰트로포르테는 이들과는 달리 정통 세단의 비례를 하고 있는 점부터가 다르다.
그 동안 수 많은 자동차들을 만나왔지만 유독 마세라티와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다. 수 년 전 마세라티 스파이더를 잠깐 시승해 본 것이 전부였었는데, 마침내 마세라티의 기함이자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럭셔리 스포츠 세단 콰트로포르테의 최신 버전인 스포츠 GT S를 만나게 되었다. 콰트로포르테라는 이름은 ‘네 개의 문’이라는 뜻으로 4도어 세단을 의미한다.
콰트로포르테는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차체에 스포츠카 수준의 달리기를 선사해, 이탈리안 스포츠 세단의 정상 자리를 지켜왔으며, 2007년에는 스포츠에 잘 어울리는 강렬한 반자동 변속기 대신 좀 더 안락한 일반 자동변속기가 더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판매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
콰트로포르테는 4.2리터 엔진을 얹은 기본형 외에, 더욱 강력한 4.7리터 430마력 엔진을 얹은 콰트로포르테 S를 선보인 이후, 이번에 다시 엔진 성능을 440마력으로 높이고, 좀 더 스포츠카에 가깝게 차체를 꾸민 콰트로포르테 스포츠 GT S 모델까지 선보이면서 3가지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으며,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또 하나의 모델인 매력적인 쿠페 그란투리스모는 4.2 엔진을 얹은 기본형 그란 투리스모와 4.7 440마력 엔진을 얹은 그란 투리스모 S, 그리고 F1 타입 변속기 대신 자동 변속기를 장착한 그란 투리스모 S 자동 변속기 모델이 있다.
콰트로포르테 스포츠 GT S는 고성능형인 콰트로포르테 S를 보다 더 스포티하게 개조한 모델이다. 하지만 워낙 개성강한 모델인 만큼, 내 외관 모두 큰 변화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변화의 의도는 적중한 듯 첫 눈에도 더욱 스포티한 인상을 풍긴다.
기본적으로 5,100mm에 이르는 거대한 차체임에도 키가 1,440mm에 불과한데다 특별히 긴 보닛과 옆구리에 뚫어 놓은 세 개의 벤트 덕분에 매력적으로 늘씬한 스타일은 여전히 신선하다. 그리고 디자인은 똑 같지만 이번에 바탕을 짙은 회색으로 처리한 헤드램프 덕분에 썬그라스를 착용한 듯 샤프한 느낌이 더욱 강렬해 졌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가운데 세로 핀들이 볼록하게 돋아났던 것을 오목하게 처리하고 역시 검은 톤을 강조했는데, 얼핏 스치고 지나가면 그란 투리스모로 착각할 정도다. 그 외에도 도어 손잡이를 차체 색으로 바꾼 것이라든가, 차체 몰딩은 물론 배가 파이프까지 크롬 대신 검정색을 사용하는 등 작은 터치들이 더해졌다.
새롭게 디자인된 20인치 멀티 트라이던트 실버 휠에는 앞 245/35ZR20, 뒤 285/35ZR20 피렐리 P제로 타이어가 신겼다.
인테리어에는 우드 그레인 대신 카본 파이버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밝은 티탄텍스가 센터 페시아와 변속기 레버, 도어 트림 등에 사용되어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 변화다. 실내 곳곳을 덮고 있는 갈색 가죽은 흰색 스티치와 파이핑이 어우러져 이탈리안 명품 가죽 세공의 손길이 느껴진다. 대시보드 아랫쪽이나 센터터널까지 꼼꼼하게 가죽을 잘 덮었는데, 정작 데시보드를 덮는 가죽 장식은 기본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이 상태만으로는 고급스러움이 살짝 부족한 느낌이다.
스티어링 휠은 손으로 잡는 부분의 근육질이 매력적이며, 동그란 버튼들은 페라리의 마네티노 스위치 주변의 버튼들을 닮았다. 계기판은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계기판 중앙에는 전방을 주시하며 고속으로 달릴 때 변속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RPM 인디게이터가 적용되어 있다. 반원의 아래에서부터 눈금이 차 올라 중앙부에서 노란색을 거쳐 빨간색이 나올 때 패들을 당겨주면 최적의 타이밍에서 변속이 가능하다.
센터 페시아 가운데에는 고급스러운 아날로그 시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 오디오와 에어컨 조작부도 비교적 단순하게 처리했다. 오디오는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시트는 면적이 살짝 좁은 듯하지만 몸에 잘 맞고 고급스럽다. 5개의 헤드레스트에는 모두 삼지창 엠블럼이 찍혀 있고, 네 좌석 모두 냉방과 난방 기능이 함께 갖춰져 있다. 특히 뒷좌석은 VIP를 위한 공간으로 손색이 없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공간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엔진은 배기량이 4.7리터로 콰트로포르테 S와 동일하지만 튜닝을 통해 그란투리스모 S와 같은 440마력/7,000rpm과 최대토크 49.5kg.m/4,750rpm을 뿜어낸다. 세계 최고의 엔진을 자랑하는 페라리의 형제 브랜드답게 회전이 매끄럽고 빠르며, 7,250rpm까지 치솟는다.
강력한 엔진에는 새롭게 개선된 자동 6단 변속기가 짝을 이루었다. 그 동안 페라리 F1 변속기 타입의 깜비오 코르사와 그 이후 개선된 듀오 셀렉트를 사용했었는데, 마세라티라는 브랜드가 가진 스포츠성과는 잘 어울리는 강력한 변속기였지만, 일상적인 럭셔리 세단으로 콰트로포르테를 이용하는 이들에겐 과격한 성격이 다소 부담스러웠었다. 그래서 반 자동 변속기 대신 자동변속기를 장착하게 되었고, 그 전략이 적중해 콰트로포르테 판매가 급신장되기도 했었다.
이번에 개선된 자동 6단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가 있는 자동변속기 중에서 가장 스포티한 프로그램을 채용한 듯하다. 변속이 빠르고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 매칭이 정확하다. 그만큼 변속 시에도 차체는 높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시프트 패들은 스티어링 휠과는 분리되어 칼럼에 고정된 방식이다. 패들이 길어서 스티어링 휠을 많이 돌린 상태에서도 쉽게 조작할 수 있지만 조작감이 약간 밋밋한 느낌이다. 그리고 D모드에서 시프트 패들을 이용해서 순간적으로 수동처럼 변속할 수가 있는데, 이때는 다시 D모드로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빠른 것이 흠이다. 반면 수동모드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변속이 빠르고 정확해 매우 높은 만족감을 제공한다. 자동변속기가 이 정도로 완성도가 높으니 굳이 더 스포티하다 해도 변속 충격이 남아 있는 듀오 셀렉트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어 레버를 사용해 변속할 땐 레버를 왼쪽으로 당긴 후 위 아래로 움직이게 되는데,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레버를 위로 밀면 다운, 아래로 당기면 업이다. 여러 번 이야기한적이 있는데, 이 방식이 실제적으로 더욱 효과적이다. 감속하면서 코너에 진입할 때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기어를 앞으로 미는 행동이 더욱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콰트로 포르테 스포츠 GT S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비는 스포츠 모드 선택 시 자동으로 전환되는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다.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기본적으로 한 단, 혹은 두 단이 내려가면서 보다 높은 회전수를 이용해 경쾌하게 주행할 수 있으며,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때면 자동으로 힐앤토를 사용한 것과 같은 다운 시프트도 제공한다.
그리고 이때 수반되는 것이 바로 배기 사운드의 증가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도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으며,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아주 매력적이고 강렬한 사운드가 터져 나온다. 이 때는 정상적인 배기 라인 대신 보다 짧게 연결된 배기 라인을 통해서 직접적인 배기가 이루어지게 된다. 배기 사운드도 브랜드와 모델마다 특징이 있게 마련인데, GT S의 스포츠 모드 사운드는 마세라티가 속한 페라리 집안 색체가 짙다. 다시 말하면 페리리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터널을 지날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시내에서조차 그 사운드는 아주 매력적이다. 물론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거나 예의를 갖추어야 할 움직임이라면 스포츠 모드를 해제해 주면 된다. 이처럼 콰트로포르테 GT S는 노멀 모드에서는 럭셔리 세단답게 안락하고 조용하게 주행하다가, 스포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스포츠카로 돌변한다.
변속은 약 7,250rpm에서 이루어지는데, 50, 110, 170, 230,km/h에서 각각 변속이 이루어지고 5단 6,500rpm 부근에서 280km/h를 지난다. 초반 가속은 웬만한 스포츠카는 가뿐하게 따돌릴 정도로 빨라, 0~100km/h 가속에 5.1초가 걸릴 뿐이다. 무엇보다 어떤 속도 영역에서든 엑셀 페달에 발을 올려놓는 즉시 경쾌한 가속이 터져 나오는 점이 매력이다. 시프트 패들을 당겨가며 고회전을 마음껏 요리하는 재미가 2톤의 세단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것은 경쾌하게 회전이 상승하는 강력한 엔진과 빠르고 매끄러운 반응의 변속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만하다. 또한 강력한 스포츠 세단답게 스티어링이 예리해 5m가 넘는 거대한 차체가 세련되고 날렵하게 반응한다. 빨간색 캘리퍼가 돋보이는 브레이크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한편, 서스펜션을 낮추고 앞 뒤 스프링을 각각 30%, 10% 더 단단하게 하는 등, 차체를 보다 스포티하게 세팅하긴 하였지만, 고속에서의 안정감보다는 일상에서의 안락함이 여전히 더 우세하다. 초고속 영역에서는 약간의 불안감이 스며든다. 이는 마세라티가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이면서 최고의 성능을 담았고, 실제로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일상에서의 럭셔리 세단으로서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하겠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 럭셔리 스포츠 브랜드 마세라티가 새롭게 선보인 콰트로포르테 스포츠 GT S는 피닌파리나 디자인의 섹시한 자태와 페라리의 혼이 담긴 강렬한 주행, 그리고 멋진 사운드가 어우러져 이탈리안 스포츠카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반면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명품 실내와 안락한 주행 감각은 럭셔리 세단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 특성이 그냥 혼합되어 버리지 않고, 스포츠 버튼을 누르는 행위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으로 살아나는 점이 즐겁다.
가격은 2억 3천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