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초에 국내 출시된 2010년형 랜서는 기존 모델보다 사양을 보강하되 가격은 오히려 낮추어 저가 수입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고급형에 해당하는 ‘다이내믹’외에 보급형인 ‘스페셜’ 트림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혔지만 어느 쪽이건 가격은 3천 만원을 넘지 않는다. 랜서 에볼루션을 후광으로 업은 개성 있는 외관과 동급 수입차들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편의, 안전사양들도 강력한 무기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민병권
랜서가 돌아왔다. 아니, 랜서의 가격이 돌아왔다. 1년 전, 미쓰비시의 한국시장 공략 4번째 모델로 국내에 상륙한 랜서의 가격은 2,980만원이었다. 하지만 환율문제(경쟁사에서는 `원자재가격인상` 때문이라고도 했다.)로 인해 몸값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3천만 원대로 뛰어올랐었다. 2010년형 랜서는 다시 2,990만원이다. 직전과 비교하면 360만원이 싸졌고, 혼다의 시빅 2.0과 비교하면 딱 400만원이 저렴하다. ‘2천만 원대 수입차’라는 귀한(?) 자리를 수복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적지 않다.
아울러 이번에 추가된 ‘스페셜’ 트림은 일부 사양을 제외시키거나 옵션으로 돌리는 방법을 통해 가격을 2,750만원까지 낮추었다. 이는 혼다가 시빅 2.0 외에 ‘1.8’, 그리고 저가형인 ‘1.8 스타일’까지 출시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에 대응하는 것이다. 스페셜 트림과 구분하기 위해 기존 사양의 랜서는 ‘다이내믹’ 으로 부른다. 시승차가 바로 다이내믹 트림이다.
2010년형 랜서는 사양도 일부 달라졌다. 외관상으로는 도어 손잡이에 크롬장식이 들어갔고, 빨간색 바탕이었던 테일램프가 랜서 에볼루션과 마찬가지로 블랙베젤 타입으로 바뀌었다. 18인치 휠과 뒷 날개(옵션), 범퍼와 옆구리의 공기역학적 장식들로 한껏 스포티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공격적이다 못해 전투적이기까지 한 외관은 비록 호-불호가 나뉠지언정 이번 세대 랜서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올해 국내 출시될 신형 아웃랜더와 RVR(ASX) 역시 비슷한 얼굴들을 들이민다고 하니 반응이 주목된다.
실내에서는 계기판의 변화가 눈에 띈다. 붉은 색 계열의 단색 문자로 표시되던 액정화면이 파란색 위주의 다기능 컬러화면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한결 산뜻해졌다. 다만 표현 색상수나 해상도 가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랜서는 랜서 에볼루션과 반대로 속도계가 왼쪽에 있었는데, 2010년형에서는 엔진회전계와 자리를 바꿨다. 계기판의 최고속도도 220km/h였던 것이 240km/h로 늘었지만 그렇다고 최고속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오토 헤드램프에는 웰컴&커밍홈 조명 기능이 더해졌고, 와이퍼 워셔도 쓰기 편하도록 잔재주를 더했다. ‘컴포터 워셔’, ‘애프터 워시’라는 사양 설명이 비데를 연상시킨다. 실내 장식도 살짝 바뀌었다. 에어컨 조작부의 3연 다이얼에는 크롬장식이 더해졌는데, 랜서의 최대 약점인 실내 마감재질을 보완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듯 하다. 변속기 게이트나 공조장치 조작부 테두리의 크롬 장식을 도려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되려 추가를 하다니 실망이다. 이차의 쌍봉으로 솟은 계기판 하우징과 오디오가 매끈하게 녹아 들어 있는 대시보드 형상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실내 감성 품질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다행히 랜서는 이런 단점을 눈감아주고도 남을 만큼의 선물보따리를 제공한다. 스마트 키와 HID헤드램프, 선루프, 변속패들, 오토헤드램프, 오토와이퍼, 무릎에어백을 포함한 7개의 에어백, 주행안전장치(ASC), 크루즈컨트롤, 스티어링휠 오디오리모컨, 열선 가죽 시트, 후방센서 등등. 여기에 650와트 출력의 락포드 포스게이트 오디오까지 달린 점을 고려하면 엄연히 ‘2천만 원대’인 이 차의 가격이 놀랍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하다못해 시빅에는 없는 원터치 트리플 턴시그널 기능도 있다. 대신 시빅에 있는 화장거울 조명과 내비게이션을 갖추지 못했지만 역시 400만원이 저렴한 차 값으로 용서가 가능해진다.
랜서에 탑재된 2.0리터 MIVEC 엔진(4B11)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대기아차의 쎄타 엔진과 같은 근원을 갖고 있다. 최고출력은 6,000rpm에서 145마력이고 최대토크는 4,250rpm에서 19.8kgm로, 최신 쏘나타의 165마력 쎄타2 엔진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다만 쎄타2 엔진의 기아 포르테 2.0이 6,200rpm에서 156마력(포르테쿱은 158마력)을 내고 있고 최대토크는 19.8kgm/4300rpm이니 격차는 조금 줄어든다. 오히려 포르테가 4단 자동변속기에 머무는데 비해 랜서는 6단 수동모드와 변속패들이 있는 스포츠 CVT 변속기를 가졌다는 점 때문에 운전 질감 면에서는 앞서나간다.
물론 CVT 자체는 스포츠 주행에 그리 어울리는 설정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고 패들을 건드려 진입할 수 있는 수동모드가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 수동모드가 자동 시프트업을 배제한 적극적인 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다이내믹한 느낌의 차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수동모드에서는 의외로 직결감이 좋고 엔진브레이크도 유효하다. 덕분에 실제 주행에서는 수치 이상으로 잘나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포르테2.0보다 훨씬 무거운 공차중량과 밋밋한 배기음을 생각하면 조금은 의아해질 정도다. (공차중량: 랜서 다이내믹 1430kg, 랜서 스페셜 1,370kg, 포르테2.0 1,232kg) 제원상 최고속도는 200km/h이지만 150km/h를 넘겨서는 가속이 지루하다.
일상적인 시내주행이라면 가속페달의 초기 반응이 예민하지 않아 발 놀림에 부담이 없고, 반대로 깊숙이 밟아주면 그 정도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주기 때문에 굳이 수동조작 등을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없다. 변속 시의 들썩임이 없는 매끄러운 주행감은 CVT의 장점을 잘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속 주행시의 엔진회전수는 100km/h에서 2,000rpm, 80km/h에서 1,600rpm 정도. 2010년형은 앞유리에 차음유리를 적용해 주행소음을 줄였다.
하체는 제법 단단한 느낌을 주는 스포츠 세팅이지만 이 덩치에 18인치 휠을 끼운 차치고는 승차감이 좋은 편이다. 시승차는 출고 이후 시공된 방음방진재가 곳곳을 덮고 있어서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1년 전에 탔던 랜서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다. 충격을 유연하게 잘 받아주고, 코너링 때는 적당한 쏠림을 허용한다. 하체느낌에 비해서는 엔진 힘이 부족하게 다가올 수 있다.
트립컴퓨터에 나타나는 평균연비가 자동으로 초기화되는 바람에 시승 기간 동안의 연비는 기록하지 못했다. 자동초기화와 수동초기화를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설명서를 훑어 보고야 알았다. 랜서의 공인연비는 11.4km/L로, 시빅 2.0(5단 자동)의 11.5km/L와 비슷한 수준이고, 자동4단의 포르테 2.0 (13.6km/L)보다는 뒤진다.
개인적으로 랜서는 내장 때문에 사기 싫지만 외관 때문에 사고 싶은 차다. 주행성능이나 하체특성은 외관처럼 모나지 않아 대중적으로 다가가기에 무리가 없다. 경쟁모델에 비해 뒤지는 부분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면 가격대비 풍부한 사양으로 입막음을 할 수 있고, 그런 사양이 필요 없다는 이에게는 더욱 저렴한 스페셜 트림을 권할 수 있다. 미쓰비시는 국내에 진출한 일본 대중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중형차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랜서의 어깨는 무겁다. 2010년형 랜서는 좋은 조건을 갖고 새해를 시작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활약을 펼쳐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