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2세대 혼다 인사이트는 첫 인상이 좋질 않았다. 요즘 도통 방향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된 혼다의 디자인 언어는 차치하더라도, 토요타 프리우스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저가형을 사용하면서 실루엣은 비슷하게 만들어 마치 동등 수준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양 소비자들을 낚으려(?) 한 것이 거슬렸다.
글/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고병배 (RPM9.COM 객원기자)
1세대 프리우스보다 2년 늦은 1999년 가을부터 일본 시판에 돌입했던 1세대 인사이트는 2인승 3도어 해치백이라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패키지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자신만의 특징은 뚜렷한 차였다. 요염하게 가린 뒷바퀴 등 친환경 차답다고 보여지는 귀여운 디자인이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혼다는 1세대 인사이트를 통해 처음 상용화한 IMA시스템을 시빅과 어코드 등에도 이식해 발전시켜 나갔지만 별다른 재미는 보지 못하는 듯 했다. 특히 하이브리드에 전력 투구하는 자세를 보인 토요타와 비교하면 혼다는 시스템도, 전략도 적당히 묻어가는 듯한 이미지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9년부터 일본에서 판매를 시작한 2세대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혼다는 ‘하이브리드의 본격적인 보급’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인사이트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 인기 몰이에 나섰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하이브리드 쿠페 CR-Z가 나왔는가 하면, 최근에는 소형 해치백인 피트(재즈)에도 하이브리드 버전을 더했다.
공교롭게도 인사이트는 3세대 프리우스와 닮은 구석이 많다. 뾰족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다르니 그렇다 치자. 보닛에서 지붕을 거쳐 뒷유리까지 이어지는 실루엣이 같은데다가, 둘로 나뉜 뒷유리의 한쪽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까지 닮았다. 중국에서 나온 차였다면 ‘짝퉁’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혼다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이러한 디자인을 취했다. 우선, 주요 시장을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택했기 때문에 세단이 아닌 해치백이 된 것이고, 공기역학 성능(cd 0.28)은 물론 ‘하이브리드 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을 고려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디자인은 혼다가 앞서 선보인 수소연료전지차 FCX클래러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테일램프 사이에 수직으로 뒷 유리를 배치한 해치 스타일도 1세대 인사이트가 프리우스보다 먼저이긴 했다.
5도어, 5인승 해치백인 인사이트는 전장 4,376 mm, 전폭 1,694 mm, 전고 1,427 mm로 시빅보다 작은 차다. 시빅 하이브리드와는 달리 하이브리드 전용 플랫폼을 사용했는데, 이는 아랫급인 피트의 것을 개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혼다 하이브리드의 핵심인 IMA는 5세대로 진화해 시빅 하이브리드의 것보다 부피가 19%작고 무게는 28% 가벼워졌다. (최근 미국 시장용 시빅이 새로 나오긴 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시빅은 기존 모델이다.)
IMA (Integrated Motor Assist)에서는 명칭 그대로 모터가 순전히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 프리우스처럼 모터만으로 주행이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하고 크랭크샤프트에 연결된 모터는 가속 때 엔진에 힘을 더하고, 감속 때는 발전기 역할을 하며, 시동 모터까지 겸하는 부지런한 친구다. (이 친구가 뻗을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용 스타터도 갖추긴 했다.)
변속기는 이 종류의 차에 당연시 되는 CVT이고, 니켈 메탈 배터리를 적재함 아래의 후륜 사이 공간에 배치했다. (엔진룸에는 일반차에서 볼 수 있는 배터리가 작은 용량으로 달렸다.)
SOHC 방식의 1.3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은 5,800rpm에서 89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4,500rpm에서 12.3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여기에 힘을 더하는 모터는 9kW(12마력)에 불과하다. 프리우스가 3세대로 넘어오면서 배기량을 1.8리터까지 높인 것과 비교된다. 인사이트는 그만큼 차체도 작고 배터리도 작다. 즉, 전체적으로 더 가볍다. 몸무게를 보면 프리우스가 1,397kg, 시빅 하이브리드가 1,305kg,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1,297kg, 인사이트가 1,240kg 순이다.
프리우스도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인사이트는 ‘깡통’소리를 들을 만큼 근검 절약(?)한 실내를 갖고 있다. 시승차는 나중에 추가된 ‘플러스 내비’ 버전이라, 국내 출시된 인사이트 중에서는 가장 사양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책 잡힐 부분들을 갖고 있다. 선루프가 없다든지, 가죽 마감이 아니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3천만 원 내외의 차 값을 생각하면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요 또래 수입차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 가격대 다른 수입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격을 고려하면, 전용액정을 단 자동에어컨과 컵 홀더 공간의 LED 조명, 열선시트, 전동접이 미러, 후방주차센서, 스티어링휠 오디오 리모컨 등을 갖춘 것은 차라리 의외라고 할 수 있겠다.
운전석에 앉아보면 우선 2층으로 구성된 계기판 등 시빅과 유사한 실내가 낯익다. 시빅보다 다소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불만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플라스틱 소재의 각기 다른 질감을 잘 살려서 깔끔하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기도록 꾸몄다.
스티어링 휠은 맨살의 우레탄이지만 감촉은 푹신한 편. 해외에는 가상의 7단을 설정한 패들시프트 사양도 있으나 여기서는 빠져있다. 시빅에서 볼 수 있었던 크루즈 컨트롤 조작부 대신 정보확인 버튼을 넣은 것도 눈에 띈다. 깜빡이나 에어컨 등의 조작부는 대체로 깔끔하게 작동한다. 분리식 컵홀더, 내비게이션 화면 아래쪽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서랍 등 수납 공간에 대한 배려도 충실하다.
직물 시트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감을 갖고 있지 않지만, 요추받침 조절기능이 빠진 것은 장거리 운전 때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유리창은 운전석 것만 원터치로 여닫을 수 있다.
프리우스와 나란히 세워놓으면 인사이트가 훨씬(?) 작은 차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지붕이 낮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앞좌석은 괜찮지만 뒷좌석에서는 문제가 된다. 탈 때부터 머리가 걸리는 느낌이고, 앉아서도 천장에 머리가 닿아 불편하다.
등받이나 방석의 각도, 무릎공간의 여유 등에서는 흠잡을 것이 없기 때문에, 헤드룸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진다. 바닥은 평편하게 만들었고 뒷좌석 도어트림에도 컵 홀더와 선반을 배치했다. 뒷문은 밖에서 손잡이를 당겨 열 때의 작동감도 모호하긴 하다.
흡사 우주선을 방불케 하는 후방시야는 딱히 갑갑하지는 않지만, 수직유리의 경우 오염됐을 때 닦아낼 수 있는 와이퍼가 없기 때문에 프리우스와 마찬가지의 불편함이 예상된다. 트렁크는 물론 전기스위치로 열도록 되어 있고, 해치 안쪽에도 닫을 때 쓸 손잡이가 마련되어 있다.
뒷좌석 등받이는 평편하게 접어 적재공간을 넓힐 수 있다. 적재함 바닥은 높게 느껴지는 편인데, 바닥 아래에는 스페어 타이어와 스티로폼으로 칸막이를 친 약간의 수납공간이 더 있다. 이들을 들어내면 문제의(?) 배터리 팩을 볼 수 있다. 물론 하이브리드 카가 아니었다면 적재공간이 더 늘었을 법 하다. 뒷좌석의 왼쪽 등받이 쪽으로는 배터리를 위한 흡기구멍도 뚫려 있다.
인사이트의 시승에 임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것은, 수입 하이브리드 차치고 가격이 저렴한 만큼 주행감도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예전에 타본 시빅 하이브리드가 안 좋은 선입견을 갖게 했다.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고 켜질 때 불쾌한 진동을 동반해 위화감이 컸고 승차감은 둔탁했다. 그런데-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사이트는 천지차이를 보여주었다.
시동을 걸 때부터 ‘부릉’이 아니라 ‘웅’하고 팬이 도는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만, 주행 중에도 내연기관이 아닌 모터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잦았다. 물론 엔진을 끈 채 모터만으로 움직이는 구간은 없다. 그러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엔진과 변속기가 조용하고 매끄러운 질감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주행조건에 따라 간혹 거슬리는 차체 진동이 나타날 때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는 회전수를 높게 유지해도 조그마한 엔진이 멀찌감치서 왕왕거리는 듯한 느낌에 그쳤다. 변속 레버를 D에 놓고 정지상태에서부터 풀 가속을 시도하자 회전수가 4000에서 잠시 지체되는가 싶더니 5000에서 65km/h, 5500에서 80km/h를 찍고 6000에 고정된 상태로 125km/h 이상의 속도를 모두 커버한다. 엔진과 모터, 배터리의 공조 상황은 계기판의 그래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배터리가 방전돼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배터리가 절반쯤 남은 상황에서는 모터를 쉬게 한 채 엔진 힘만으로 가속해서 무리 없이 175km/h까지 가속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는 오르막이었다. 평지에서, 배터리가 보조할 경우에도 180km/h에서 속도계는 멈춰 섰다.
경사가 심하고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도 찾아가 보았는데, 힘이 부치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적어도, 혼자 타고 돌아다닌 바로는 그랬다. 배터리도 쉽게 절반까지 방전되지는 않는다. 일부러 심한 가속을 한다 해도, 페달을 늦추는 순간부터 곧장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충전모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속 주행 시에는 엔진만 회전하게 되는데, 80km/h에서 1600rpm, 100km/h에서 2000rpm을 가리킨다. 시승차는 100km/h 부근에서 불규칙한 바람소리가 두드러지는 통에 노면이나 구동계 소음은 아주 조용하게 느껴졌다.
고속 주행 시에는 딱히 불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착 가라앉는 느낌도 아니다. 그런데, 저속에서는 가벼운 차라는 느낌이 두드러진다. 나쁜 뜻이 아니라, 핸들링이 경쾌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좌우 쏠림은 있지만 예측가능 한 정도의 적당한 움직임인데다가, 조향 반응도 말끔하다. 한계에 도전할만한 차는 아니지만 운전이 재미있다. 서스펜션도 시빅 하이브리드처럼 묵직하게 튀는 느낌이 아니고 일반 승용차에 가까워 자연스럽다. 후륜 브레이크가 드럼방식인 것은 조금 신경 쓰이는 대목이지만 특별히 거친 느낌은 없었고 제동 반응도 안정적이었다.
주행과 정차를 반복하면서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고 켜질 때도 거북함은 거의 없었다. 가끔씩 동력이 연결되면서 툭 튀거나, 시동이 꺼질 때 부들부들 떠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부드럽고 조용하게 작동했다. 시동이 꺼지고 켜지는 타이밍을 거의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의 오토 스타트 스톱 장치와 달리, 이 하이브리드 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보통은 차가 완전히 멈춰서기 전에 이미 시동이 꺼져있게 되는데,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타이밍을 모르고 지날 때도 많다. 재출발 할 때도 브레이크를 완전히 뗄 때쯤이 돼야 비로소 시동이 걸리기 때문에, 지난 번 골프 블루모션 시승 때처럼 교통상황을 내다보고 미리 시동이 걸리도록 한다든지 하는 것은 어려웠다.
가솔린 엔진인데다, 크랭크축과 같은 선상에 배열된 모터가 시동을 거는 탓인지 엔진의 기동 자체는 경쾌하고 시간지연도 거의 없다. 다만, 동력이 연결되어 차가 실제 출발할 때까지는 약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경사로에서도 가리지 않고 잘 작동하는 편이다. 비록 경사로 밀림 방지 기능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딱히 불안한 거동도 보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운전할 수 있었다.
시동이 꺼질 때는 히터의 송풍이 함께 멈추면서 정적이 찾아 든다. 여름에는 어떨까? 조금 걱정이 된다. 물론 설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차의 재출발과 관계없이 다시 시동이 걸리지만, 당장 코 앞의 송풍구에서 바람이 멈춘다는 것은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경우, 레버를 P에 옮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인데, 그렇게 되면 다시 시동이 걸려버리기 때문에 은근 갈등을 겪게 된다.
대시보드 왼편에는 녹색 ECON 버튼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을 누르면 엔진과 변속기가 더욱 효율적인 주행에 맞게 작동한다. 또한, 에어컨이 에너지 절약모드로 작동하고 시동정지 시간이 연장되며, 감속 때는 충전량이 증가한다. 정차 중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ECON 모드를 해제하니 곧장 시동이 다시 걸리기도 했다. ECON을 켜놔도 당장에 주행이 갑갑하게 느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 스스로 익숙해지면 좋을 것 같다.
상단의 디지털 속도계는 숫자가 공중에 떠있는 듯한 효과를 내는데, 배경의 색상이 수시로 바뀐다. 만약 연비 효율적인 운전을 하고 있다면 바탕이 녹색이고, 완만한 가속이나 감속 중일 때는 청록색이지만, 급 가속이나 급 감속 상황에서는 파란색, 심하면 진청색으로까지 변화한다. 가속 때뿐 아니라 재충전이 이루어지는 감속 때의 효율까지 나타냄으로써 바람직한 운전습관을 길러주는 기능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여기에 더불어, 운전 습관을 나뭇잎 개수로 표시해주는 기능도 있다. 시동이 걸려 있을 때는 현재의 연비 상태를 보여주고, 꺼진 상태에서는 시동이 꺼지기 전 가장 최근의 운전 주기에 대한 점수(시동을 켰을 때부터 껐을 때까지)가 나뭇잎으로 나타난다. 또, 하단 부분에는 현재까지의 누적 점수가 표시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은근 중독성이 있다.
혼다 인사이트의 공인연비는 23.0km/L. 총 주행거리가 4,000km를 막 넘긴 시승차는 이번 시승에서 16.4km/L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40리터의 연료탱크를 탈탈 털어 주행한 결과, 532km를 탄 뒤 아슬아슬하게 반납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연료를 가득 채우자 눈금 이상으로 올라갔던 바늘은 90km를 주행하고 나서야 파란색 첫 눈금까지 떨어져 웃음을 자아냈다.
인사이트는 1,339cc 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에 연간 자동차세가 엑센트 1.4와 다를 바 없다. 남산터널을 통과할 때 혼잡통행료를 면제 받는 기분도 삼삼했다. (앞유리 안쪽에 큼지막하게 붙여진 ‘맑은서울-저공해자동차’ 스티커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인사이트는 제원만으로 알 수 없었던 운전 재미를 갖고 있었다. 한계가 높다거나 순발력이 좋다거나 한 것과는 별개의 운전재미다. 덕분에,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CR-Z라는 하이브리드카에 대해서도 약간의 기대를 갖게 되었다. 인사이트는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만족감이 높아지는 차였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혼다의 소형차 만들기 노하우를 잘 보여주는 좋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사이트에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빼고 운전재미는 그대로 간직한 저배기량의 소형차가 있다면 정말 매력적일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재즈(일본 내수명은 피트)일 것 같은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