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400 하이브리드는 메르세데스-벤츠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2008년 여름에 처음 발표됐지만, 실제 시판에 나선 것은 2009년 여름부터. 즉, 이번 세대 S클래스(W221)의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등장했다. 렉서스 LS600hL이 하이브리드의 성능을 과시하려는 듯 전기구동계에 잔뜩 힘을 준 것과 달리 S400 하이브리드는 작은 모터와 배터리로 실속을 챙겼다. 라인업 상의 위치도 구색을 맞추는 정도에 그친다. 하이브리드로 기세 등등한 토요타-렉서스가 브랜드의 기함 자리에 V12 대신 하이브리드를 앉힌 것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글/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민병권, 박기돈 (RPM9.COM 팀장)
이런 차들의 성격이랄까, 라인업 상의 포지셔닝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 가령 렉서스의 ‘LS600h(이 글에서는 롱버전을 의미하는 ‘L’을 되도록 생략하겠다.)’는 5.0리터 V8엔진을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더해 독일 경쟁사들의 최상위 V12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능을 낸다는 의미에서 6,000cc급 엔진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썼다. 그런가 하면 포르쉐의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실제 엔진이 3.0리터 V6인데도 4.8리터 V8 엔진이 탑재된 카이엔 S의 이름을 빌었다. 말하자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추가로 발생된 ‘+알파’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모델명을 통해 슬쩍 내비치는 셈이다.
S400 하이브리드도 실제로는 S350을 바탕으로 했지만 S350보다는 윗급이고, S500보다는 아래 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S350보다 이름이 ‘50’ 크다는 것은, 배기량이 ‘500cc’ 더 큰 차 같은 성능을 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엔진 배기량은 S350과 동일하므로, 성능에서 그만큼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될 것이다.
그런데, S400 하이브리드의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붙은 원반형 모터는 최고 출력이 20마력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힘에 엔진 힘을 더한 시스템의 최고 출력은 299마력. 이것이 272마력인 S350과 구분해 ‘400’이라는 이름을 쓰기에 충분한 만큼의 차이인가 하는 것도 신경 쓰이지만, 그 299마력조차도 실제로는 제대로 뽑아 쓰기가 녹록하지 않은 일종의 ‘뻥마력’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S400 하이브리드는 기본적으로 가솔린 엔진의 힘으로만 움직인다. 모터 만에 의한 주행은 아예 불가능 하고, 모터가 개입해 힘을 보태는 것은 운전자가 킥다운 등으로 강력하게 가속에 대한 의지를 보일 때뿐이다. 게다가, 풀 하이브리드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스터’ 기능이 작동하는 것은 풀 가속 초반의 몇 초에 그친다. 따라서 엔진의 최고출력이 나오는 시점에 모터도 항상 힘을 보탠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토크는 어떨까? S400 하이브리드의 모터는 가동즉시 160 Nm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가솔린 엔진의 최대토크는 2,400~5,000rpm에서 350Nm다. 둘을 합치면 무려 510Nm(약 52.0kgm)의 강력한 토크 수치가 얻어진다. 이 정도면 S350 디젤(CDI)의 토크가 부럽지 않다. 하지만 실제 시스템이 낼 수 있는 토크는 단순히 둘을 더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메이커 발표치는 385Nm(39.2kgm)로, S350의 35.7kgm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메이커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시스템 적용에 따른 무게차이가 75kg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실제 공차중량에서는 S400이 S350보다 150kg 더 무거워 2톤을 넘어섰다. 0-100km/h 가속에서 S350보다 단지 0.1초가 빠른 7.2초를 기록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최고속도는 둘 다 250km/h에서 제한된다.)
결국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의의는 성능 향상(혹은 상대적인 배기량 다운사이징)보다 연비 자체에서 찾아야 하겠다. 성능 수치상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모터의 토크는, 사실 가솔린 엔진의 부족한 토크를 보완함으로써 출발, 가속 때 연료를 덜 소모하게끔 한다. 게다가, 단순히 ‘부스터’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 시동을 걸 때는 ‘시동 모터’ 역할, 감속 때는 버려지는 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주는 ‘발전기’ 역할을 겸한다.
정차할 때 엔진 시동을 자동으로 껐다가 출발하면 재시동 해주는 기능으로도 연료소모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시동 모터로서의 역할 역시 아주 중요하다. 감속하다가 15km/h 미만이 되면 시동을 끄기 때문에 차가 완전 정지할 즈음에 계기판을 확인해보면 이미 시동이 꺼져있기 십상이다. 이렇게 서있다가도 브레이크 페달에서 살짝 힘을 빼주면 차가 정지한 상태에서도 다시 시동이 걸린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전진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시동이 걸리는 시점에서의 (크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시하기에도 뭣한) 소음과 진동은 신경이 쓰일 수 있다. 뒷좌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의 정숙함과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다 서다가 반복되거나, 멈추는 듯 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등 엔진의 ON/OFF가 너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을 만나면 기능을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일반 엔진에 스톱/스타트 기능만 추가한 차들과 달리 이 하이브리드에서는 기능을 끌 수 없다.
따라서 오너의 이해와 의지가 필요하다. ‘S클래스씩이나 타면서 이걸 참아야 돼?’라고 한다면 하이브리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차가 회전 중이거나 후진 기어를 넣는 등 주차를 위해 움직일 때는 이를 감지해 시동이 유지된다. 그리고 조향 장치와 에어컨 등은 전기구동 방식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이와 관련된 불편함은 없다.
부스터 모터 겸 시동모터는 감속 때 엔진 브레이크 겸 발전기 역할을 한다. 주행 중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있는 듯 없는 듯 개입하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는 본격적으로 끼어들어 차를 감속시킴과 동시에 여기서 발생되는 에너지로 충전에 나선다. 페달을 깊게 밟지 않으면 바퀴에 달린 일반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브레이크 패드 등의 수명이 좀 더 길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차가 완전히 멈춰 설 때까지의 반응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여느 차보다 무거운(강력한 스프링이 버티고 있는듯한) 브레이크 페달과 일정치 않은 감속 반응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S400의 하이브리드 관련 장치들은 여느 하이브리드카들과 달리 모두 엔진룸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혼자 3역을 하는 하이브리드 모듈이 기존 가솔린 차의 부품 일부를 통합 대체했고, 양산차 최초로 적용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그 컴팩트함 덕분에 기존의 일반 배터리 자리에 대신 들어갔다. 이들을 통제하는 제어부 조차 엔진룸에 자리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손해보기 쉬운 트렁크 공간도 S400에서는 여느 S클래스의 그것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뒤쪽으로 자리를 옮길 법도 한 배터리를 엔진룸에 그대로 둔 것은 ‘최적의 무게배분을 위해서’라고 한다. 에어컨의 냉각라인으로 배터리를 식힐 수 있고 배선을 짧게 가져갈 수 있는 등 효율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리튬이온 셀이 35개 내장된 배터리는 안전성 문제를 의식해 고강도 스틸케이스 등 7단계 안전장치를 갖추었고, 25개의 특허가 엮여있다. 120볼트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계통뿐 아니라 12볼트를 쓰는 헤드라이트 등 기존 전기 시스템 역시 이 배터리로부터 전원을 공급받는다.
S400이 단순히 S350의 구동계에 하이브리드 모듈만 더한 것은 아니다. 7단 자동변속기의 경우 프로그램 수정뿐 아니라 시동이 꺼졌을 때도 오일공급이 원활하도록 윤활 계통의 개량이 필요했다. 3.5리터 V6 가솔린 엔진은 열효율이 높은 앳킨슨 사이클로 작동하게끔 바뀌었다. 실린더헤드, 피스톤, 캠 샤프트 등이 S350의 ‘일반’ 엔진과 다르고, 출력도 7마력이 높아졌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개량했다. 다만, 타이어의 경우에는 특별히 연비 향상용 제품을 끼우지는 않았다.
이러한 수단들을 동원한 종합적인 결과로 S400 하이브리드는 S350대비 연비와 CO2 배출에서 20% 내외의 효율 향상을 거두었다. 적어도 데뷔 시점 기준으로는 동급 세단에서 가장 뛰어난 효율을 자랑했다. 단, 여기에는 ‘디젤 제외’라고 하는 조건이 붙었다. 효율 좋은 디젤차가 가솔린 하이브리드의 천적처럼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소음과 진동 면에서 –S클래스 급이라 할지라도- 디젤은 어쩔 수 없는 디젤. 게다가 국내시장에서는 S클래스 디젤(S350 CDI)이 노멀 휠베이스로만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롱 휠베이스로만 판매되는 S400 하이브리드와 저울질할 여지가 적다.
가격도 S350 CDI - 1억 2,590만원, S350L - 1억 4,150만원, S400 하이브리드L - 1억 6,790만원, S500L - 1억 9,250만원으로 나뉘어졌다. S400은 S350, S500과 각각 2,500만원 내외의 가격차이를 두고 쏙 들어가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S350L보다 그만큼의 웃돈을 주고 S400 하이브리드L을 살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벤츠 코리아에서는 S350L에 없는 사양들을 S400에 많이 얹어 놨다.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패키지, 하만카돈 로직7오디오, 뒷좌석 메모리 패키지, 실내등 패키지, 앞/뒤 좌석 컴포트 자동 머리받침, 스플릿뷰 기능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쩐 일인지 어텐션 어시스트 기능만큼은 S400에만 빠져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구매자라면 S350L에 필요한 옵션들만 추가해 주문하는 쪽으로 선회할 여지도 있다.
우리나라 공인연비는 S350L이 8.3km/L, S400 하이브리드L이 9.2km/L이다. 9.2km/L라는 것은 E클래스의 3.5 V6 모델(E300, E350)과 동일한 수치다. 400km를 주행한 시승기간의 평균연비는 8.4km/L가 나왔다. (참고로, S350 CDI의 공인연비는 11.8km/L다.)
S 400 하이브리드L은 수도권대기환경개선 특별법 상의 저공해자동차 2종에 해당하고 혼잡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주차요금을 할인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