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5미터, 폭 2미터, 높이 1.8미터의 차체 크기, 그리고 2톤이 넘는 몸무게를 가진 미국산 SUV(미국기준 ‘풀 사이즈, 3열 좌석 SUV’)에 2.0리터 가솔린 엔진.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조합이다. 설사 엔진에 터보가 달렸다고 해도 말이다. 고성능 차의 전유물이었던 터보가 다운사이징의 상징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요즘이다.
최근 포드의 다운사이징 노력은 미국 자동차회사들 중 단연 돋보였다. 대서양 너머 `유럽 포드`의 효율적인 파워트레인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려 애썼고, 이를 ‘원 포드(One Ford)’ 전략으로 묶어 새로운 차 만들기에 나섰다. 최하 4.0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얹어왔던 익스플로러가 다운사이징 된 3.5 V6 외에 2.0리터 4기통 ‘에코부스트’ 엔진을 함께 선보이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다.
배기량과 실린더 개수를 줄이는 대신 가솔린 직분사 기술과 터보차저로 부족한 성능을 보충하고 효율을 높인 엔진들을 포드는 ‘에코부스트(EcoBoost)’로 명명했다. 경제성과 힘을 동시에 잡는다는 의미이다. 에코부스트 패밀리의 가장 작은 엔진은 유럽 포드의 1.0리터 3기통으로, 준중형차에 기존 1.6리터 자연흡기 엔진 대신 탑재된다. 포드는 2013년까지 전세계적으로 150만 개의 에코부스트 엔진을 생산할 예정으로, 이를 통해 북미 제품의 90% 이상, 글로벌 제품의 80% 이상에 에코부스트 엔진을 탑재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엔진만 갖고 될 일은 아니다. 이번 세대 익스플로러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프레임 방식 차대 구성을 버리고 승용차와 같은 모노코크 차체를 채용한 것이다. 링컨 MKS, 포드 토러스 등의 대형세단과 기본 플랫폼이 같고, 차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트럭 바탕 SUV에서 크로스오버, 혹은 CUV로의 업종 변경이다. 플랫폼 변경과 함께 구동 방식까지 뒷바퀴 굴림에서 앞바퀴 굴림으로 바뀌었으니 이전 모델들과는 완전히 선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덩치는 더 커졌지만 승용 감각이 강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닛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경량화했고 공기저항계수는 0.35에 묶었다. 시승차는 검정색이라 두드러지지 않지만, 날렵하게 경사진 A필러는 검은 색으로 처리해 앞 유리와 옆 유리가 한 덩어리처럼 이어져 보이도록 했다. 모던한 면 처리와 근육질을 강조한 차체는 크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의 신세대 모델 ‘이보크’를 떠올리게 한다. 이보크의 가솔린 엔진이 이 차의 것과 같은 제품임을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다.
실내 변화는 더 놀랍다. 평범해 보이는 플라스틱 위주의 마감에 성급히 실망해서는 곤란하다. 뭉뚝한 버튼, 투박한 조작부의 미국 차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상세 메뉴가 펼쳐지는 대시보드 중앙의 8인치 화면은 물론, 아래쪽의 에어컨, 오디오 조작부가 모두 터치 방식이다. 심지어 비상등 스위치도 터치. 물론 이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계기판도 아날로그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4.2인치 LCD화면을 배치해 운전자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을 표시하도록 했다. 가령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왼편의 엔진회전계 자리에 상세 연비나 차량 설정 메뉴 등을 끄집어 낼 수 있고, 오디오, 연결된 휴대폰, 에어컨의 온도 및 바람세기 등을 계기판 화면으로 확인하면서 조작할 수 있다. 운전대의 5웨이 ‘마이포드’ 버튼들로 조작하거나, 영어 발음에 자신이 있다면 음성인식 기능을 써도 된다.
그래픽은 화려하고 움직임이 섬세하다. 하지만 그만큼 부하가 많이 걸리는지, 반응이 더디다.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 IT업계에서 유명했던 이름들이 이제 자동차업계에서 자주 노출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포드의 경우 음성인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관해서는 일찌감치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았다.
국내에서 장착한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는 화질이 떨어지지만 충분히 유용하다. 액정 바깥쪽의 플라스틱 마감을 터치해야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전환되는 것은 포커스와 마찬가지. 터치할 부분에 ‘NAVI’라는 글자를 입힌 것은 좋으나 품질은 떨어져 보인다. 시승차는 실내 기온이 낮을 때 이 부분의 터치 인식이 되지 않는 문제도 나타났다. 후방카메라 화면은 조향 안내선을 표시해준다.
널찍한 실내는 주어진 공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한 모습이다. 덩치에 비해 좁기 일수였던 예전 미국 차들과는 역시 다른 모습이다. 앞좌석 시트 사이가 넓고 도어의 팔걸이마저 멀게 느껴진다. 도어트림마다 병 홀더 등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크기와 형상은 실용적이지 못해 보인다.
시트는 쿠션이 푹신하다. 시트를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의 운전 감각은 대형 승용차를 조금 높여놓은 수준. 시트를 이보다 높이면 ‘올라탄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전동 조절은 동반석까지, 그리고 요추 받침까지 된다. 운전대 조절은 수동이기 때문에 이지액세스 기능은 시트 부분만 작동한다. 스티어링 컬럼의 버튼으로는 페달 깊이를 전동 조절할 수 있다. 사이드미러와 페달 위치도 시트 메모리 기능에 연동된다. 통풍시트 등의 ‘자주 쓰지 않는’기능은 터치스크린의 메뉴를 몇 번 눌러야 선택할 수 있다.
1열 좌석을 최대한 낮춰도 2열 승객은 여유롭게 발을 뻗을 수 있다. 머리와 무릎 공간도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방석 부분은 소파보다 벤치에 높이 앉은 기분을 준다. 그래서인지 B필러에는 큼지막한 손잡이를 달아놨다. 등받이 각도는 뒤로 꽤 뉘일 수 있다. 바깥쪽 헤드레스트는 높이 조절이 안되고 앞으로 접을 수만 있다. 바닥 터널이 솟아 있지만 앞좌석 센터콘솔이 뒤로 튀어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발을 통과시킬 때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7인승 차량의 의무사항인 소화기가 이곳에 달린 것은 신경 쓰일 수 있지만 유사시 찾아 쓰기에는 그만큼 유리할 수 있겠다.
뒷좌석용 송풍구는 센터콘솔이나 B필러가 아닌 천장에 마련되어 있고, 센터콘솔에서 풍향, 풍량, 온도조절을 할 수 있다. 물론 앞좌석에서도 제어 가능하다. 센터콘솔에 110볼트 전원 소켓을 마련한 것이 특이하다. 쌍으로 된 컵홀더는 1열 센터콘솔 뒤편에도 있고 뒷좌석 가운데 팔걸이에도 있다.
6대4로 나뉜 2열 등받이를 앞으로 접은 뒤 시트를 앞으로 젖히면 3열 좌석으로의 통로가 생긴다. 시트 바깥쪽의 레버를 이용하면 되고, 헤드레스트까지 한번에 접혀 편하다. 허리를 굽혀 3열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다. 3열 공간이야 넓고 편할 수는 없지만 미니밴이 아닌 7인승 SUV로서는 기대 이상이다. 헤드레스트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직접 앉아보면 머리 공간은 확보되어 있다.
어느 쪽에 앉건 한쪽 발이 2열 좌석 다리 부분에 걸리고, 무릎을 세워 앉는 기분을 감수해야 하지만, 2열 등받이만 일부러 뒤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인 남성이 앉기에도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팔꿈치 부분에 컵 홀더와 수납 공간이 있고 천장에는 송풍구와 스위치 달린 실내등이 있다.
3열 좌석은 트렁크 쪽에서 버튼을 눌러 원터치로 접고, 펴고,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등받이를 접거나, 시트를 바닥 아래로 묻어버리거나, 원상 복귀시키는 동작이 모두 손가락 하나 ‘까딱’만으로 가능한 것. 끝마무리로 헤드레스트만 세워주면 된다. 둘로 나뉜 시트를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도, 한쪽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3열에 사람이 타도 뒤편에 595리터의 적재공간이 남는다. 두툼한 시트가 사라질 공간을 확보하느라 아래쪽을 깊이 파 놓았기 때문이다. 그 아래로는 임시 스페어 타이어를 묻어놨다. 프레임 타입 SUV에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공간활용이다. 테일게이트는 전동으로 여닫힌다.
BMW는 3.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2.0 터보로 대체해 가고 있고, 현대기아도 북미 시장용 2.7~3.3리터 V6 엔진 일부를 2.0 터보로 대체했다. 이렇게 따지면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의 포지셔닝도 대충 가늠이 된다. 베라크루즈에 쏘나타 터보의 2.0 엔진을 올린 셈이긴 한데, 차체는 익스플로러가 크고, 엔진 성능은 현대 쪽이 낫다. 단순비교 하자면, 쏘나타 터보의 2.0 엔진(271마력, 37.2kgm)은 베라크루즈에 얹힌 3.8리터 V6 가솔린 엔진(264마력, 35.5kgm)보다도 성능 수치가 높다.
익스플로러에 탑재된 2.0리터 에코부스트 엔진의 최고 출력은 5,500rpm에서 243마력이고, 최대 토크는 3,000rpm에서 37.3kgm이다. (미국 제원 상으로는 최대토크 발생시점이 1,750rpm으로 되어있다.) 최고출력이 290마력인 익스플로러 3.5는 최대토크가 35.3kgm로 오히려 2.0에 뒤지며, 4,000rpm에서야 이 수치가 나온다. 2.0 에코부스트는 포드 토러스에도 얹힌다. 한편, 고성능 모델인 토러스 SHO는 3.5리터 트윈터보 에코부스트 엔진을 탑재한다.
변속기는 자동 6단. 레버 형상은 3.5와 마찬가지로 심심하고 조작감도 무덤덤하다. 3.5와는 달리 수동 변속 모드 ‘셀렉시프트’가 없기 때문에, D레인지 다음이 ‘M’ 대신 ‘L’로 되어 있다. 레버를 L에 놓으면 기어가 1~2단에 머물고, 레버 옆의 버튼을 누르면 오버드라이버 기어가 선택되지 않는다.
변속레버에 달린 버튼은 위치나 기능상으로 ‘오버드라이브’ 버튼이 맞는 것 같지만, 포드는 이것을 ‘Grade Assist’, 즉 ‘경사로 운전 보조 기능’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작감이 맹한 이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 화면에 경사로를 내려가는 차량의 그림과 함께 경고 메시지가 뜬다. 언덕이 많은 곳이나 산악지대에서 엔진 브레이크가 적극적으로 제공되고, 오르막길에서는 낮은 단수의 기어가 오래 지속되도록 한다고 한다. 저속 내리막길에서 자동으로 일정 속도를 유지해주는 HDC 기능과는 다르다. (HDC는 익스플로러 3.5에만 적용되어 있다.) 오르막 밀림 방지 기능은 제공한다.
2012 익스플로러의 3.5 가솔린 모델과 달리 2.0 에코부스트는 4륜 구동 옵션이 없고, 다이얼을 돌려 지형에 따른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도 빠져있다. 그래서 차라리 더, 덩치 크고 안전한 느낌의 안락한 크로스오버 승용차로서 특화된 모습이다.
(디지털로 ‘그려지는’ 엔진회전계의 눈금이 워낙 듬성듬성해서 가독성이 심히 떨어지긴 하지만) 6단,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700rpm정도. 여기서 레버의 버튼을 누르면 2300rpm정도가 된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을 할라치면 타이어가 요란하게 헛돈다. 1단에서 그러더니 2단으로 바뀐 다음에도 끼리리리리릭 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여차하면 운전대가 휙 돌아가면서 차선을 넘어갈 기세다. 처음에는 TCS가 꺼져 있나 의심했을 정도다. 힘 자랑도 좋지만 불안감 조성은 좋지 않다.
풀가속을 하면 6,500rpm을 기점으로 55, 90, 150km/h에서 다음 단으로 변속이 이루어지고 180km/h에서는 속도제한이 걸린다. 기세는 등등하다. 하지만 급출발 때의 여운이 남은 탓인지 속도제한이 유난히 고맙게 느껴졌다. 일반 주행 중 가속 페달을 깊이 밟으면, 큰 덩치를 슬슬 달래가며 속도를 더해나간다는 인상이다. 튀어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력은 충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일상적인 용도에서 힘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일은 드물 것 같다. 변속기는 이따금 튀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소음은 대체로 잘 정리되어 있다. 배기량이 작으니 엔진 소리도 덜 들리나 싶다. 그래도 낮은 회전수에서는 그르렁거리는 대배기량 엔진의 소리를 흉내 내며 능글맞게 군다. 앞 유리 모서리 부분에는 ‘사운드스크린’이라는 영문로고가 붙어있다. 전면과 측면 앞 창에 이중접합 차음 유리를 사용하는 등의 소음 저감 대책을 적용한 덕분에 가솔린 SUV의 상대적인 장점이 더욱 부각된다. 산통을 깼던 300C의 경망스러운 깜빡이 소리와 달리 익스플로러의 것은 그럴 듯 하다.
덩치와 달리 파워 스티어링은 전동식이다. 차체에 걸맞게 조금 묵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앞서의 후덜덜한 스핀과 일련의 불안감을 제외하면 평상시의 주행에는 어색함이 없다. 승차감은 대체로 부드럽지만 20인치 휠, 타이어 (한국타이어 옵티모 H426, 255/50R20)을 끼운 시승차는 잔 충격을 호들갑스럽게 전달하는 모습도 보였다. 간헐적으로 삐걱대는 내장재 잡소리가 신경 쓰인다. 브레이크는 페달 감각이 자연스럽고 차체 무게로 인해 밀린다는 느낌도 적다.
고속도로를 제한 속도 내에서 달린다면 이 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될 법하다. 앞 차와 거리를 유지해 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달렸다. 정지 재출발까지는 지원하지 않고, 26km/h 이상에서만 작동하지만 편리하다. 토러스와 마찬가지로 앞 유리에 빨간색 경고등을 점멸시켜주는 전방 추돌 경고 시스템도 지원한다.
330km를 주행한 시승 기간의 평균연비는 7.6km/L가 나왔다. 공인 연비는 9.7km/L.
3.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SUV들과 비교해도 이 부분이 약점이지만, “동급 가솔린 SUV 중에서는 국내 시판차 중 최고 연비!”라는 것이 포드코리아의 주장이다. 일단, ‘덩치 큰 만큼 기름 많이 먹으면서도 움직임은 굼뜬 전형적인 미국 SUV’랑은 다르다는데 의의가 있다. 사용자설명서에는 옥탄가 87이상의 무연 가솔린을 넣으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3.5 모델과 같다.
2012 포드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의 가격은 4,610만원이다. 차 크기와 사양, 낮은 배기량이 주는 장점 등을 생각하면 국산 SUV들마저 심각하게 위협할 법 하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이번에 시승한 차의 사양이 국내에서 팔고 있는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와 다르다는 것. 쉽게 말하면, 국내 판매 중인 2012 익스플로러는 `2.0 고급형`과 `3.5 최고급형`인데, 시승차는 `2.0 최고급형`이다. 때문에 시판 중인 2.0 에코부스트보다 사양이 좋다. 거의 3.5 수준이다. 그리고 3.5의 가격은 5천만 원 중반까지 올라간다. 어쩐지…
이런 차는 수입사에서 인증이나 테스트 등을 위해 들여온 것이다. 홍보용 시승차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은근슬쩍 투입되기도 한다. 기자도 전시장에서 2.0 에코부스트를 미리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면 모르고 그냥 낚일 뻔 했다. 물론 국내 시판 사양의 2.0 에코부스트도 경쟁력이 상당한 패키지를 갖추긴 했다. 하지만 4,610만원에 이번 시승기에서 언급했던 사양들이 모두 제공되는 것은 아니니만큼, 다음 편에서는 시판 모델과 시승차의 사양 차이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글,사진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주행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