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최근 자동차 엔진의 가솔린 직분사 시스템 생산을 시작한 한국로버트보쉬의 대전 공장을 방문했다.
대덕산업단지 내에 자리한 이 공장은 2002년부터 커먼레일 인젝터를 생산해 올 초 누적생산량이 2천만 개를 넘어서는 등 한동안 디젤 엔진용 시스템의 생산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지난 해 보쉬와 현대자동차가 합작사였던 케피코를 청산하면서 ECU등 가솔린 직분사 관련 부품을 보쉬가 인수, 대전 공장에서 생산키로 하면서 기존 시설을 확장하여 이들 라인을 흡수하게 됐다.
가솔린 직분사 시스템 생산 라인은 최근 확장 공사를 마친 제 2공장 1층에 자리했다. 1994년 기아자동차와의 합작으로 처음 문을 연 대전 공장은 당시 36,000㎡ 대지에 건물은 11,000㎡ 면적으로 태동했고, 2002년 이후 디젤 시스템에 대한 보쉬의 투자가 이곳에 집중되면서 2005년 12월에는 200억 원을 투자한 제 2공장을 준공하게 됐다.
이번에 44억원을 들여 2000㎡ 가량 증축된 2공장의 1층에는 가솔린 직분사 인젝터 생산라인이 700㎡ 면적을 차지했을 뿐, 많은 부분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올해 안에 동 시스템용 고압 펌프와 ECU, TCU 등의 생산 설비가 이곳에 들어찰 예정이다. 증축된 건물의 2, 3층에는 사무공간과 창고 등이 자리했다.
두 개로 나뉜 인젝터 라인 중 하나는 올해 2월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나머지 하나는 이번 주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아직은 초기인 만큼 문제점을 찾으면서 조금씩 생산량을 높여가고 있다. 두 라인을 최대로 가동할 경우 연간 생산량은 600만개로, 4기통 엔진의 완성차를 기준으로 하면 150만 대분이 된다. 하지만 올해에는 240만 개 정도만 생산할 예정이다.
엔진의 연소실에 연료를 직접 분사해주는 가솔린 직분사 시스템(GDI)은 기존의 포트 분사 방식에 비해 성능과 연비를 모두 높일 수 있어 적용이 늘고 있다. 보쉬는 ‘HDEV5’로 불리는 가솔린 직분사 인젝터의 생산 공장을 전 세계 다섯 곳에 두고 있는데, 이들이 지난 5년간 생산한 인젝터는 약 7천만 개에 달한다. 올해에는 대전공장 물량을 포함, 2,800만 개를 생산할 예정이다.
보쉬는 시장 별로 가까운 공장에서 제품을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밤베르크의 리드 플랜트(lead plant)와 터키공장이 유럽시장을 맡고, 미국과 중국에도 각각 공장이 있다. 대전 공장에서 생산된 가솔린 직분사 인젝터는 모두 현대·기아차에 공급된다. 이전에는 보쉬가 현기차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케피코를 거친다. 한 관계자는 “현기차에 공급되는 단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며 웃었다. 다른 완성차 업체로의 공급 계획은 아직 없다고 했다.
가장 많은 물량을 차지하는 것은 아반떼, 쏘울 등에 탑재되는 감마 1.6 엔진용 인젝터다. 2월부터 꾸준히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는 제품도 이것이다. 그만큼 차가 많이 팔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4기통 소형 엔진용 제품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라인은 제네시스, 에쿠스 등에 탑재되는 8기통 엔진인 타우 5.0의 인젝터를 생산한다. 또, 감마 1.6 터보, 누우 2.0, 람다2 3.0 엔진용 제품들도 올해 안에 차례로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처럼 하나의 라인에서 각기 다른 인젝터를 생산해야 할 때는 라인에 공급되는 부품들도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4시간 또는 8시간 단위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장착되는 엔진이 다르더라도 인젝터 자체의 크기나 모양 등은 서로 큰 차이가 없어 시리얼 번호를 확인해야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엔진에 따라 몰딩 모양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밸브시트에 뚫린 연료 분사 구멍의 크기와 위치 및 방향, 분사량 조절을 위한 스트로크 등 내부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보쉬의 핵심 기술이 담긴 부분은 밸브시트다. 때문에 하나의 인젝터를 구성하는 22개의 부품 중 유일하게 보쉬가 독일에서 직접 생산하는 부품이 바로 밸브시트다.
밸브시트는 보쉬가 독자 개발한 프로세스에 따라 레이져로 정밀하게 가공된다. 하지만 밸브시트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들은 협력업체들로부터 공급받는 것은 물론 공장별 현지화도 허용하고 있다. 대전공장의 경우 55%에 해당하는 12개의 부품을 국내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업체들의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만 확인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가솔린 인젝터 라인 총괄을 맡고 있는 전종규 이사는 보쉬의 강점으로 다국적 생산 네트워크를 꼽았다. 독일의 리드 플랜트에 시범 라인을 깔아놓고 6개월 내지 1년 동안 모든 면을 검증한 뒤 다른 공장에도 이를 똑같이 설치하고 품질, 자재, 공정, 청정도, 프로세스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인젝터 생산 라인은 크게 니들그룹-밸브그룹-몰딩-최종조립으로 나눌 수 있다. 반제품을 만드는 앞부분 공정의 설비는 독일의 작은 업체에서,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뒷부분은 보쉬에서 만들었다. 보쉬 내에 1천 명에 가까운 인원을 둔 설비 및 장비 제작부서가 있어 직접 노하우를 챙긴다. 앞부분 설비 중에서도 보쉬 자회사인 렉스로스의 부품들이 사용된 것이 눈에 띄었다.
일행이 주로 살펴본 곳은 라인의 핵심인 클린룸이었다. 세척된 부품들이 이곳에 공급되면 각 공정별로 레이져 용접과 조립을 거치고 바깥쪽으로 나가 몰딩 및 최종 조립 작업을 마치게 된다. 클린룸 안쪽의 설비는 천장을 덮는 등 여러모로 청정도를 유지할 수 있게끔 신경 썼다.
작은 단품들이 공정별로 공급되면 컨베이어를 타고 이동하면서 자동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닿을 일은 거의 없다. 세척된 부품을 팔레트에 담아 기계에 공급하고, 설비를 점검하는 정도가 사람의 몫이다. 때문에 1교대 당 근무 인원은 11명. 하지만 보쉬 가솔린 시스템 사업부는 올해 말까지 400개의 일자리를 늘릴 계획이다. 인젝터 외에 고압 펌프와 ECU, TCU등 나머지 부품의 생산을 앞두고 있는데다, 생산 인원 외에 간접 부서도 증원해야 해서다.
보쉬 가솔린 시스템 사업부는 지난해에 이어 내년까지 1,500억 원을 투자해 대전공장 내 라인을 확충할 계획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