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영화

[ET-ENT 영화] ‘무용수’(감독 전시형) 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21)

발행일 : 2017-02-05 12:48:35

전시형 감독의 ‘무용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무용수(김미래 분)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데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화면 인서트가 이뤄지며 인상적인 시작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사용해 효율적이면서도 압축된 영상을 보여준 작품으로, 춤을 이미지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움직임 자체를 부각하며 그 움직임 전후의 내면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 춤을 추는 무용수, 무용수와는 별도로 춤을 추는 그림자

‘무용수’에서 무용수의 그림자가 춤을 추는 것은 안무를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몰두한 나머지 자아의 이탈이 잠시나마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무용수의 안무, 그림자의 안무는 음악과 함께 이뤄질 때도 있고 적막의 시간 동안 펼쳐지기도 한다.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와 그림자는 별개로 움직인다, 무용수가 안무를 펼칠 때 그림자는 무용수를 지켜보고 있고, 그림자가 안무를 할 때 무용수는 그림자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무용수와 그림자를 자아분열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무용수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이 기본적으로 겪을 수 있는 고통과 갈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창작자와 아티스트의 몰입된 자아는 분열된 자아로 이어질 수 있다

작가는 시나리오 집필시 자신이 창조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1인 다역을 펼치는 어떤 배우보다고 더 많은 다역을 작가는 소화한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이기에 각 인물이 가진 내면에 누구보다도 더 몰입하게 되고, 각각의 인물에 분리해 몰입하다 보면 자아분열이 생길 수 있다.

감독의 경우 원 창조의 단계가 아니니 작가가 받는 고통은 겪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촬영현장에서 감독은 각각의 다양한 캐릭터의 내면을 오가야 한다. 그냥 외면만 바라볼 경우 좋은 작품이 나오기는 힘들다. 게다가 우리나라 감독들의 경우 작가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몰입된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관객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갈등과 고통을 작가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겪을 수 있고, 그 깊이와 양은 아티스트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연극 등 시나리오와 배우가 있는 장르뿐만 아니라 무용과 음악 등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도 같은 갈등과 아픔을 겪을 수 있다.

‘무용수’에서 무용수와 그림자가 아티스트의 자아분열을 표현한 것이 맞는다면, 영화배우가 아닌 무용수를 대상으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생각된다. 연기로 표현했으면 이것이 연기 변신인지 자아분열인지 명료하지 못 했을 수도 있는데, 움직임과 그림자라는 확실한 시각적 효과는 돋보이기 때문이다.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 흑백 영화, 무용의 기본인 움직임에 더욱 초점을 맞춘 영상

‘무용수’는 흑백 영화이다. 칼라 영화가 가진 색감을 없애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흑백 영상은 그림자를 더욱 살아있게 했는데,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조연의 경지에 오르도록 만들었다.

무대를 만드는 기술력이 발달했고, 다른 분야와의 컬래버레이션이 강화되면서 최근 무용은 움직임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도 있다. 조명과 영상의 활용에 대해 의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무용에서 움직임 외적 요소가 중요해졌다.

‘무용수’는 카메라가 무용수의 모습을 따라가며 근접 촬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흑백 영상을 선택함으로써 더욱 움직임의 디테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 어둠 속에서의 조명 처리

‘무용수’에서 무용수가 무대의 조명을 끄는 것을 그림자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차단과 집중은 또 다른 나인 그림자가 나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이 시퀀스에서의 조명 처리는 무척 뛰어나다. 카메라는 백스테이지의 위치에서 무대를 근경으로 관객석을 원경으로 바라보는데, 객석 끝 저 멀리에서의 밝음은 움직임의 윤곽을 보이게는 하지만 그림자를 만들 정도로 밝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명막, 반투명막을 이용해 상업 영화 이상으로 조명을 조정했을 수도 있고, 흑백 영상의 장점을 잘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단순히 기술적인 면에 머물지 않고, 무용수의 내면을 표현한 돋보이는 연출로 느껴진다.

◇ 대기실에 혼자 있는 무용수, 한 명을 표현하는 여섯 가지 모습

‘무용수’에는 단 한 명이 등장한다. 무용수가 대기실에 혼자 있을 때의 모습도 인상적인데, 큰 거울, 작은 사각거울, 작은 원형거울에 무용수의 모습이 비친다. 무용수의 그림자는 직접 보이기도 하고, 큰 거울을 통해서도 보인다.

본인과 거울에 비친 세 가지 모습, 그림자의 두 가지 모습까지 한 번에 여섯 가지 모습이 동시에 보이는데, 방향과 각도가 모두 다른 것이 눈에 띈다. 흑백 영화이기 때문에 여섯 가지 모습이 모두 도드라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무용수’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 빠른 움직임과 잠시 멈춤의 완급 조절이 돋보인 안무

‘무용수’에서 무용수로 등장한 김미래는 영화 속 춤을 직접 안무했다. ‘무용수’의 안무는 빠른 움직임과 잠시 멈춤 동작에서의 완급조절이 눈에 띈다. 부드럽게 동작을 이어가면서도 얼굴과 상체가 별도로 움직이는 아이솔레이션을 보여주고, 회전할 때도 팔과 몸통을 아이솔레이션한다.

무용에서 아이솔레이션을 잘 할 경우 안무가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솔레이션을 잘하는 무용수는 표현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데, 배우의 경우에도 눈과 코, 입, 귀를 아이솔레이션 해 표정연기를 할 경우 뛰어난 몰입도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김미래의 완급조절과 아이솔레이션은 움직임을 더 크고 다채롭게 보이도록 했는데, 클로즈업 영상과 음악이 함께 했다. ‘무용수’는 무용 실황 영상과 무용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