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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언덕’(감독 조혜진) 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25)

발행일 : 2017-02-05 14:02:05

조혜진 감독의 ‘언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지구 멸망을 앞둔 나나(최성은 분)와 산(오현중 분)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지구가 멸망해서 좋은 점에 대해 후련하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에서 나나와 산의 대화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이야기를 했는데, 지구 멸망이 좋은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맞고 틀리고의 관점에서 판단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얼마나 생각을 유연하게 하지 못했는가를 ‘언덕’은 생각하게 만든다.

◇ 지구의 멸망과 개인사의 마지막

‘언덕’은 영화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깊이 생각할 질문을 던진다. 지구 멸망을 담은 마지막 메시지가 영상으로 나올 때는 지구의 멸망 자체에 집중해 답을 생각하게 되는데, 한강대교 위에 서 있는 나나의 모습은 개인사의 마지막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게 된다. 전체의 관점과 개인의 입장에서의 답은 물론 달라질 수 있다.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산은 여기저기 빛이 많아서 서울에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나나는 사람들이 하도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니까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언덕’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많은 부분이 우리 안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유래하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언덕’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은 지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지구와 가까워지는 소행성 무리 때문이다.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외적인 상황으로 지구와 인간 모두 생존의 갈림길에 선다는 것이 ‘언덕’이 보여주는 세계관이다.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 지구 멸망을 앞두고 좋은 점

나나와 산은 지구 멸망을 앞두고 꼭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한다. 그것까지는 웬만한 누구도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지구 멸망을 앞두고 좋은 점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임신할 걱정을 안 해서 좋다.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다. 청소를 안 해도 돼서 좋다. 목욕을 안 해도 돼서 좋다. 설거지를 안 해도 돼서 좋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같이 있는다.”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지구 멸망을 앞두고 좋은 점을 듣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무엇에 얽매이는지 어떤 제약을 받는지,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답답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지구 멸망을 걱정하던 그들은 이제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과관계의 모순이자 인과관계의 역설이다. 지구 멸망이라는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모순과 역설에 부딪힌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객관적 시야를 유지하지 못해 모순과 역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언덕’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에는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가 나온다. 영화 본편과는 다른 뉘앙스를 주는 음악 ‘그리워라’는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뭔가가 이뤄졌다는 강한 추측을 하게 만든다. 무엇일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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