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찬 감독의 ‘연날리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딸 유진(전별이 분)과 고수부지에 연날리기를 하러 온 아빠 준원(김두진 분)은, 자신의 차에 페인트가 뒤덮인 사진을 보고 차로 가면서 유진과 헤어지게 된다.
◇ 빠르게 감정과 갈등을 격발하고, 계획한 것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연날리기’는 감정과 갈등의 격발이 빠르게 일어나고, 그다음 단계가 치밀한 계획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위태위태한 감정은 감정 자체로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무척 속도감이 느껴진다.
행동과 사건이냐, 정서와 감정이냐의 선택에서 감독은 빠른 전개와 감정의 폭주를 절묘하게 이어붙여 두 가지 모두 몰입감을 유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고 질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급조절도 이뤄지는데, 질주를 결정한 채은(김혜준 분)을 멈추게 하는 것은 준원의 사과나 설득이 아닌, 유진이 이전에 채은을 집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인데, 질주하던 감정을 멈추게 하는 심리적 개연성을 확보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시각적으로 보면 채은의 감정적 질주와 행동이 이뤄지는 곳은 고수부지인데, 중간중간 고수부지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정경이 인서트 돼 관객들의 마음에도 강약 조절, 완급 조절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 연날리기는 사건의 전개를 위한 결정적 요소이자, 심리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연날리기’에서 연날리기는 갈등을 격발하고 진도를 나가는데 무척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연날리기가 가진 상징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연은 하늘 높이 날아야 한다. 더 높이 날수록 더 신난다. 그렇지만, 연 줄이 끊기거나 실패가 풀려 내 손을 떠나 더 멀리 날아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혹시 날아갔다면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연날리기’는 이런 연날리기의 기본이 갈등을 유발하고 확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면서, 그때의 연의 상태가 등장인물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냥 보면 연날리기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지만, 사건의 개연성과 심리적 개연성을 모두 충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날리기의 기본과 본질이 여러 가지 시야로 영화 속에 활용된 점은 무척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연날리기’는 사건의 개연성에 어떤 매개체나 오브제의 기본과 본질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