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감독의 ‘복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신입사원 홍석현(김건우 분)은 한때 힙합전사 선배였던 과장 박준태(정우영 분)와 함께 거래처 전무 민상수(김정수 분)를 만나러 간다.
‘복어’는 직장인의 비애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신입사원이 겪는 시행착오와 신입사원에 대한 까칠함은,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와 군대에 처음 갔을 때 등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 흔히 겪게 되는 경험이다.
◇ 회식 자리에서 점수를 얻는 사람과 점수를 잃는 사람
회식 자리에서 점수를 얻는 사람과 점수를 잃는 사람이 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술자리에서 점수를 얻는 사람과 점수를 잃는 사람이 있다. 회사가 아닌 친구들 사이에서도 술 마시면서 친해지는 사람이 있고 술 마시면서 멀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윗사람 또는 거래처와 술을 마실 때는 기본 예의를 끝까지 지키는 것과 서로 벽을 허물고 친해지기 시도하기,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데, 시간에 따라 조화와 균형의 접점과 포인트가 달라진다.
‘복어’에서 상한 소라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석현은 “내 동생이 될 충분한 자격”이라는 타이틀을 민전무로부터 얻고 싶어 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사람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시험을 봐야 하는데, 문제는 상대가 정답인 시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맞는 것 같아도, 내가 맞는 것이 분명해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선 상대가 원하는 답을 선택해야 한다. 내 소신과 상관없는 답을 선택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선택이 무척 어려운 사람도 있다. ‘복어’는 마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보도록 만들기도 한다.
◇ 중의적인 표현이 주는 압박감
“복어를 먹기에는 핏덩이야. 이 맛이 주는 의미를 진짜 모른단 말이야”라고 민전무가 석현에게 한 말은 ‘복어’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중의적인 표현 중의 하나이다. 민전무는 종업원(유지민 분)을 바라보며, 석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두 사람에게 각각 적용해 해석이 가능한 대사이다.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신입사원 시절을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민전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는 압박감과 무게감을 남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중의적인 표현이 더욱 압박감을 준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중의적인 표현이기에 상황에 따라 말하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직설적인 공격보다 중의적인 표현의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 영화의 뉘앙스를 보여준, 첫 장면의 카메라 워킹
‘복어’의 첫 장면에서 한강과 고수부지, 도로의 모습이 원경으로 보인다. 김과장과 석현이 숙취해소 음료를 건배하는 손이 그 앞에 나타나는데, 원경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시야를 근경 쪽으로 약간 옮기기는 하지만, 카메라가 바라보는 초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두 사람이 기존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민전무에게 힙합전사였던 김과장과 석현의 독창성은 개인기 정도로만 여겨지고, 민전무가 만든 회식 장소, 미리 주문한 음식 등 민전무의 세상에 철저하게 적응하도록 만드는데, ‘복어’의 첫 장면의 뉘앙스와 오묘하게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자체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알려준다는 것도, 김과장과 석현의 의미가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에서의 역할과 행동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복어’는 감정에 치우진 작품이 아니면서도 일정한 감정선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