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정 감독의 ‘으리으리한 의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영화 제목은 의리가 무척 강하다는 강조의 의미가 떠오르기도 하고, 코믹하면서도 작은 반전이 있는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한다.
경쾌함과 코믹함을 만드는 영화의 음악과 분위기는 ‘으리으리한 의리’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영화학도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부유하지 않은 일반 대학생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 자신이 만든 작품을 숨기고 싶은 마음
‘으리으리한 의리’에서 학생인 영화감독 리한(박종현 분)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숨기고 싶다. 꿈꾸고 바라는 예술세계와 자신의 현실 사이의 거리감에서 오는 이런 마음을 가진 미래의 영화감독들은 많을 것이다.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과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면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내 작품을 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과 아직 때가 아니다,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기성 아티스트들도 느끼는 마음일 수 있다.
서둘러 알고 싶은 마음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리한뿐만 아니라 사회에 발을 디디는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될 수 있다. 그 발이 첫 발이든 다시 시작한 도전이든지에 상관없이 열정 속에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으로 그만두기에는 아직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있는 것이다.
노페이로 출연한 배우에 대한 마음의 짐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은 기성 제작자들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으리으리한 의리’를 보며 웃어넘기는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 소리도 못 고 우는 사람들도 분명히있을 것이다.
◇ 영화과와 연기과가 분리된 한예종의 미묘한 관계
‘으리으리한 의리’는 영상원 영화과와 연극원 연기과로 분리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학생들의 미묘한 관계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다른 학교들의 영화과는 달리, 같은 학교이지만 다른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아는 관객들은 그 차이를 느끼며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회사로 따지면 다른 본부의 다른 부서인데, 같은 회사 일이지만 타 부서에 협조요청을 해야 하고 업무적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친분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배우와 스태프의 흥미로운 관계를 ‘으리으리한 의리’는 담고 있다.
다른 작품의 영화 후원금을 원하는 주석(윤종석 분)의 요청에 갈등하는 리한의 모습은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폼 잡으며 영화 찍고 사람 만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리한은 영화감독 이전에 우리 시대를 사는 청춘의 단면이다. ‘으리으리한 의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 청춘들의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 만화같은 화면 분할, 시트콤 같은 재미
‘으리으리한 의리’는 만화같이 화면을 분할하기도 하고, 영상 속 자막을 활용하기도 한다.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양심의 가벼움’이라는 것에서 감독의 재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스태프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스타들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 뒷이야기를 하면 많은 관객들이 흥미로워할 것 같지만, 사실상 영화제에서 밤새 줄 서서 티켓팅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GV; Guest Visit)에 참여하는 일부 소수 관객들만 영화 뒷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영화 뒷이야기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강한 반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스태프들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찍을 때 스타들의 뒷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으리으리한 의리’는 스태프들의 일상을 다루면서도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엔딩크레딧 후 추가 영상도 볼 수 있는데, 리한에 감정이입했던 관객이라면 여운을 길게 가질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