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항 감독의 ‘플라스틱 러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이 ‘플라토닉 러브’가 아닌 ‘플라스틱 러브’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휴대폰에서 금속성보다 플라스틱의 성질을 뽑아낸 것은 라임을 맞추기 위함도 있을 수 있고, 휴대폰의 행동이 너무 인공지능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포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말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내레이션의 뉘앙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차가운 가을과 따뜻한 겨울 사이였다”라는 영화 초반의 내레이션이 휴대폰(김진형 분)의 내레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내레이션의 표현은 반어도 아니고, 역설도 아니고, 현실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소한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차가운 가을과 따뜻한 겨울은 휴대폰 매장에 있는 휴대폰의 입장에서는 무척 명쾌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가을에 실내에 있는 금속성의 휴대폰은 차가울 것이고, 겨울에는 난방을 하기 때문에 매장에 있는 휴대폰에게는 따뜻한 계절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주체에 따라 내레이션의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것을 ‘플라스틱 러브’는 보여주고 있는데, 내레이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내레이션을 좋아하지만 사건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매우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내레이션의 경우에도 누구의 목소리로 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다.
◇ 사람이 물건을 느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느낀다면?
‘플라스틱 러브’는 알뜰폰의 시야로 바라본 은수(박수연 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휴대폰이 자신의 주인인 은수와 은수의 사랑을 모두 사랑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휴대폰은 은수 눈가의 점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호감을 가지면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재미있게 생각된다. 이는 영화가 감동을 주려면 관객들이 공감하고 공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하는데, ‘플라스틱 러브’에서 휴대폰을 인격체로 확대해 받아들이면서 영화 속 내용 또한 확대해 해석할 가능성을 관객들에게 열어놓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 휴대폰의 감정이입, 휴대폰 목소리 역의 김진형의 감미로움
‘플라스틱 러브’에서 휴대폰은 짝사랑을 하는 남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재미있게 여겨진다. 관객은 휴대폰에 감정이입해 바라볼 수 있고, 남자(홍성재 분), 대리점 직원(이동현 분), 모텔남(심요한 분)을 모두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잠시나마 가정할 수도 있다.
휴대폰은 은수를 사랑하기로 했던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알뜰폰인 자신이 아이폰에 이은 세컨드라고 자책하는 모습은 웃프게 다가온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플라스틱 러브’의 휴대폰은 단지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휴대폰 목소리 역의 김진형은 라디오 DJ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휴대폰) 나를 쳐다보고 있다, 훔쳐보고 있다는 설정이 무섭기보다는 흥미롭게 전달되는데 김진형의 목소리는 큰 역할을 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