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요한 감독의 ‘기허풍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2022년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영화 초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생소화 효과를 만든다.
한참 예전으로 느껴지는 영상의 톤에, 인서트 된 장면은 오류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이목을 집중한 뒤, 등장인물의 스틸사진을 통해 마치 영화사의 로고처럼 만든 시작은 시선을 끌며 호기심을 집중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내레이션과 자막
“하고 싶은 게 정말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을 뿐이다”라는 내레이션 뒤 이어지는 “평화통일합의 선언 후에도 남북은 여전히 대치 중이다. 특히, 평양은 내전이 일어나고, 도시는 봉쇄된다.”라는 자막은 ‘기허풍우’가 단편영화가 아닌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감독은 실제로 이런 소재로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내레이션과 자막 또한 일종의 낯설게 하기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할 수도 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기허풍우’가 단편영화라는 것을 알고 영화관을 찾았을 것인데, 예상하지 못한 깜짝 이벤트처럼 장편영화가 상영될 것이라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 스토리보다 분위기와 뉘앙스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영화
‘기허풍우’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건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출 것만 같지만, 스토리보다 분위기와 뉘앙스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영화이다. 휘휘휙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과 순간 멈춤 장면, 스크린 속에 시간의 왜곡을 주면서 이미지적인 느낌을 강조해 전달한다.
자동차 정비센터에서의 시퀀스 또한 사건을 위주로 바라보면 빈 공간과 점핑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분위기와 뉘앙스로 바라보면 꽤 적절한 배치와 흐름이었다는 것을 직접 관람하면 느낄 수 있다.
휴대폰 충전은 2017년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서도 위협을 무릅쓸만한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점은 충분히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에피소드이다.
◇ 웃을 것인가? 진지하게 몰입할 것인가?
‘기허풍우’에서 결투 장면은 한 쪽은 코믹하고, 다른 한 쪽은 진지하기에 더욱 재미있게 느껴진다. 진지한 배경음악조차 코믹한 반전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기허풍우’는 새로운 코믹 코드를 생성하고 있다.
‘기허풍우’는 엔딩크레딧에 등장인물의 사진과 이름을 바로 연결해 보여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 특별한 이름이 없는 등장인물들이 많았고, 엔딩크레딧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로 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슬라이드식 배치가 아닌 만화적 구역 분리를 선택했다는 점은 인상 깊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