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요한 감독의 ‘훌륭한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훌륭한 영화’는 어떤 영화가 훌륭한 영화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데이트 폭력을 영화에 담으려면 리얼하게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실제로 데이트 폭력을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실제로 무자비한 데이트 폭력을 우연히 목격했다면 직업의식을 발휘해 리얼한 사운드를 놓치지 않고 녹음해야 하는지, 데이트 폭력을 멈추게 해야 하는지 관객들은 ‘훌륭한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마음의 선택을 할 수 있다.
◇ 영화 속의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 영화 속 폭력에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관객들
‘훌륭한 영화’가 던진 화두를 논하기 전에 우리 시대의 영화들이 폭력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관객들이 영화 속 폭력에 피해자처럼 아파하거나 가해자가 돼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시대가 있었는데, 점차 영화 속 폭력은 폭력이 아닌 그냥 오락거리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시대가 됐다.
실생활에서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할 때 밉거나 복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장난으로 폭력을 행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면에서 보면, 폭력을 다루는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폭력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은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가면 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 죽지 않으면 에지가 없는 영화라는 것을 당연한 듯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훌륭한 영화’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흥분해 논의할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들
영화에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 간의 첨예한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찍은 배우와 스태프, 배우들 사이, 또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영화 속 스토리보다 더 민감한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영화’는 보여준다.
실력 없다며 감독(박수민 분)을 욕하는 배우들, 발연기를 한다며 여배우(연자해 분)와 남배우(김건우 분)를 욕하는 감독의 모습은, 영화 촬영 현장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데이트 폭력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내면 갈등
‘훌륭한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중의 하나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몰입해 감정이입하는 배우들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면서 받게 되는 심리적 고통이다.
실제 상황에서는 피해자만 심리적 고통을 받을 수 있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가해자 또한 피해자 못지않은 심리적 피폐함을 겪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력을 행해야 하는데, 남의 폭력이 아닌 감정이입한 나 자신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화’는 엔딩크레딧 후 추가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화나게 만들기도 한다. ‘훌륭한 영화’는 영화를 본 후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사랑해서 만나는데 왜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까?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왜 만날까? 직업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먼저인가, 사회적 정의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선시돼야 하는가? ‘훌륭한 영화’의 배역을 나눠 역할극을 해보는 것도 정답을 찾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