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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국립오페라단 ‘마농’(5) 마농이 데 그리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자기대상이기 때문

발행일 : 2018-04-09 07:47:02

국립오페라단 <마농(Manon)>에 대한 마지막 리뷰로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적용한다.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기준으로는 마농(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 손지혜 분)이 데 그리외 기사(테너 이즈마엘 요르디, 국윤종 분)(이하 데 그리외)를 다시 찾아간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는데 데 그리외가 마농의 ‘자기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아는 강하지만 자존감은 부족한 마농은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신을 세우고 연결하려는 마농의 욕구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대상관계이론,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하인즈 코헛은 개인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공감이라는 측면과 관계성이라는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 용어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코헛은 좁은 의미의 자기는 ‘마음 또는 성격의 한 특정 구조로서의 자기’이고 넓은 의미의 자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표현된 자기’라고 말했다. 자기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자기에 대한 개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코헛은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고 봤다. 즉,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상대방이지만 나와 아예 관계가 없는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를 반영하는 의미 있는 타자(상대방)를 뜻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살면서 자기를 비춰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이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만족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자기대상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통해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 심리적 안전감을 얻을 때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무척 강한 사람은 자기대상이 필요 없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자기대상 이론을 적용하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확실한 자기대상이 있는 것이다. 밀접도와 영향력에서 긍정적인 자기대상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대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아티스트에게는 팬이 자기대상일 수 있고, 팬에게는 아티스트가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자기대상은 일방향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양방향의 관계일 수도 있다. 아티스트가 스스로의 예술성으로 인해 존재 가치를 세우는 것도 맞지만, 의미 있는 사람들이 자기대상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예술성이라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자기대상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자기대상의 종류(1) : 거울 자기대상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자기대상이다. 내가 이뤄낸 성과나 성취도 내게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드디어 완성됐다고 느끼며, 자아의 존재감을 높이게 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오늘따라 화장이 잘 받았다고 생각되면 그 자체만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거나 반응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마음은 위축될 수 있다.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 화장을 한 것이 아닐지라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특히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는 반응조차 얻지 못한다면 화장이 잘 돼 얻은 성취의 욕구는 줄어들 수 있고 의욕 또한 상실될 수 있는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자기대상의 종류(2) : 이상화 자기대상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은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대상이다. 이때 대상은 안정되고 이상화된 완벽한 이미지(이상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와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와 융합될 수 없으면, 자기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혹은 한때 있었더라도 사라질 경우, 그 사람은 이상화 자기대상을 평생 찾으며 헤맬 수도 있다. 더 이상 자기에게 그런 대상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 스스로를 더욱 보호할 수 없도록 문란한 성적 행동을 하거나 마약이나 약물,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회피를 자기도 모르게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이상화 자기대상의 개념에서 추론하면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특히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끔한 벌을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자아를 융합할 수 있는 이상화 자기대상을 찾아줘야 하는 것이다.

◇ 자기대상의 종류(3) : 쌍둥이 자기대상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은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자기대상을 지칭한다. 이때 부모는 자기를 반영하고 인정하고 보호하는 부모를 뜻한다. 자기가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쌍둥이 자기대상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쌍둥이 자기대상에 대한 욕구는 전 생애에 걸쳐 유지되는 욕구로 알려져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자신을 반영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농이 데 그리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자기대상이기 때문이다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 거짓 자기’의 개념으로 볼 때 마농은 참 자기로 화려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데 그리외를 찾아간다. 마농이 데 그리외를 찾아간 것은 데 그리외를 잊지 못하고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데 그리외가 마농의 거울 자기대상이기 때문이다.

마농은 데 그리외 외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는 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마농의 자기대상이 되지 못한다. 마농은 데 그리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반영받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감각적인 외모로만 평가받는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은 “나 예쁘냐고 매력적이냐고”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자기대상이 되는 의미 있는 타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마농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본인이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마농은 자기가 예쁜지 너무 잘 알고 있는 프리마돈나가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자기대상이 절실하게 필요한 인물인데, 데 그리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물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데 그리외가 자신과 헤어진 후 자신을 그리워했는지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묻는 것은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울 자기대상을 통해 마농은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빛나고 아름다웠던, 존재 가치가 확실했던 자기의 모습을 찾고 싶어서일 수도 있는데, 애정과 자기대상은 같이 존재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난 후에 별개로 남아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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