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감독의 <굿바이 썸머(Goodbye Summer)>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FF) 한국경쟁 섹션 상영작이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정제원 분)는 수민(김보라 분)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친구인 지훈(이건우 분)에게 절교 선언을 듣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재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럴 수 있냐고 느끼는 관객이 있을 것인데, 실제로는 더한 사람들도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대접을 받게 됐을 때의 서운함과 서글픔 또한 영화는 주목하는데, 소외받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대접을 받게 됐을 때의 서운함과 서글픔
<굿바이 썸머>에서 현재는 친구인 지훈에게 절교 선언을 듣는다. 현재가 정말 싫어져서가 아니라, 자신은 현재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대접을 받게 돼 서운함과 서글픔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와 지훈은 사귀는 남녀관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점적인 지위, 독점적인 소유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훈이 서운하고 서글픈 이유는, 현재가 본인을 특별하게 대해주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친구와의 관계성을 설정할 때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친구의 반응에 따라 좌우될 정도로 지훈은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만약 현재가 아프지 않다면, 지훈의 자존감 부족은 두 사람의 친구 관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자신에게 당면한 상황을 감당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지훈의 부족한 자존감을 메워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굿바이 썸머>에서 지훈이 더 이기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재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아픈 상황에서 고백한 현재에게 수민은 “남은 사람은 어떡하라고 이기적으로 너만 생각해?”라고 되묻는다. 누가 이기적일까? 수민의 말대로 현재가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상대방이 아프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수민이 이기적인 것일까?
만약 둘 다 이기적이라고 본다면, 누가 더 이기적일까? 수민이 현재에게 한 말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수민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 아닌 것이다.
남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죽는 사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남은 사람을 걱정하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매우 많다. 장례식장에서 많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돌아가신 분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보다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우린 어떻게 살라고?”라는 말을 하면서 통곡하는 경우가 많은데,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위로와 슬픔의 공감이라기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말하기 싫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이 정도 아프면 말하기 싫어”라는 현재의 말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픈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화내는 사람들도 많다. 현실에서도 수민과 지훈이 꽤 많은 것이다.
◇ 이질적인 병재 캐릭터! 병재는 이상한 사람일까, 아니면 현재에게 다시 중심을 찾아주는 인물일까?
<굿바이 썸머>에서 전학 온 학생 병재(이도하 분)는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이 뛰어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병재와 현재의 케미는 의외인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는데, 생각과 스타일이 딱딱 맞는다.
말할 때 발음도 이상한 병재가 변수를 주는 캐릭터인 것은 확실하다. 그냥 툭 튀어나온 캐릭터 같지만, 수민과 지훈 때문에 엉킨 현재에게 다시 중심을 찾아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누구의 시점인가?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를 확인하면서 <굿바이 썸머>를 관람하면 관객은 감정이입할 때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 시점과 초점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감정이입한 인물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에 대해서도 약간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