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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원더랜드’(4) 딸인 준의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

발행일 : 2019-08-09 08:12:40

딜런 브라운 감독의 <원더랜드(Wonder Park)>에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을 적용하면, 딸인 준과 엄마와의 관계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딸이 원더랜드에 대해 가지는 마음은 딸이 엄마에게 가지는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엄마에게 밀착하고 의지할 때는 원더랜드가 한없이 가까운 존재로 느껴졌는데, 엄마가 병원으로 간 후 원더랜드는 거리를 둬야만 할 것 같은 존재가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로날드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
 
로날드 페어베언은 삶의 목적은 본능의 충족이 아니라 관계라고 했다. 페어베언의 분열성 양태 모델의 핵심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다. 용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쾌락 추구였다면, 페어베언에게 리비도는 대상 추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한다고 전제한다. 대상과의 완벽한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아는 스스로 견딜 수 있는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와 견디기 힘든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리되는데, 이는 각각 대상이 되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 ‘거부의 대상’과 연결된다.
 
즉,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된다.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 또한 같이 형성되는데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이때 사용되는 리비도는 쾌락 추구가 아닌 대상 추구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와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도적 자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 흥분시키는 대상, 거부의 대상이 모두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나이자,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다.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 역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다른 면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딸인 준의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
 
<원더랜드>에서 딸인 준에게 엄마는 완벽한 존재였다. 완벽하게 밀착할 수 있고, 완벽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상상력을 발휘할 때 충분히 인정하고 포용해줬던 대상이었다.
 
그러던 엄마가 병으로 집을 떠나게 되면, 딸의 입장에서는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존재였던 엄마가 더 이상 완벽한 존재가 아니게 됐기 때문에, 딸의 무의식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과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대상을 나눈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에서 준은 엄마가 없으니 집에 설치했던 원더랜드 모형을 깨끗하게 치워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든다. 준과 엄마, 원더랜드는 강력하게 연결돼 있던 관계였는데, 엄마가 없는 현재, 준은 원더랜드를 이전처럼 가까이 두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반리비도적 자아가 커진 준은 원더랜드가 싫어졌고, 원더랜드를 가짜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준이 원더랜드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페어베언의 모델을 적용하면 준에게는 원더랜드를 엄마와 같이 있을 때처럼 보고 싶은 리비도적 자아와 이제는 보는 것조차 힘든 반리비도적 자아가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준의 반리비도적 자아는 엄마가 없는 원더랜드를 거부하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은 원더랜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마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게 될까 무서워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준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피넛을 구하겠다는 용기를 내는데, 다른 대상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구하겠다는 것과 같다.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준의 리비도적 자아를 강하게 만들고, 리비도적 자아가 더 강해진 준은 피넛에게 엄마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준은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가 그 접었던 마음을 다시 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페어베언의 모델을 적용하면 어느 한쪽으로는 마음을 닫았지만 아직 열려 있던 마음이 공존했었다고 볼 수 있는데,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의 공존이 준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더 큰 개연성을 부여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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