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브라운 감독의 <원더랜드(Wonder Park)>에 관계성에 중심을 둔 심리학 이론인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적용하면,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 동물들과 준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어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멜라니 클라인은 투사(projection)가 투사적 동일시로 이어지는 원리를 정립한 학자이다. 투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것을 뜻한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으로 돌리려는 것인데,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 직면하기 어려운 면들이 투사된다.
실제로는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데, 자신감 부족, 사회적 제약 등의 이유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투영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투사이다. 투사는 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내가 감당할 수 없기에 무의식이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투사한 대상을 내 마음이 투사한 상태로 그냥 두지 않고 투사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투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클라인은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했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데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감정을 전이한 것이 투사라면, 전이된 상태로만 있으면 불안하고 안전감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투사적 동일시인 것이다.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는 모두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로 행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알지 못한다.
만약, 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유혹했다면 그것은 투사적 동일시가 아니다. 투사적 동일시는 실제적으로 시작한 것은 나이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고 자기 스스로도 착각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 투사적 동일시의 대표적인 네 가지 종류 :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투사적 동일시는 수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네 가지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이다.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무의식적 상태에서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의존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가해 상대방이 나를 도와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힘 투사적 동일시는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힘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해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힘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며,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를 불완전한 존재로 본다.
성적 투사적 동일시는 나도 모르게 표현하는 유혹적인 몸짓과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을 완벽하게 성적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적 투사적 동일시를 당한 상대방은 스스로의 자발적 선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투사적 동일시를 행한 사람을 유혹했다는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헌신과 공로를 상대방이 인지하게 한다. 상대가 자기에게 빚진 마음으로 늘 미안해하게 만드는데, 많은 자기희생적 행동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
◇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 동물들에게 힘 투사적 동일시,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사용하는 준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기작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 동시에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를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마음과 나를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마음이 공존하고, 그 두 가지를 스스로 견디기 힘들 때,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가 같은 사람에게 같은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
<원더랜드>에서 준은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 동물들에게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사용한다. 영향력을 남용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원더랜드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원더랜드에 의존하지 않으려 하면서 의존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 동물들에게 준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영향을 받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직접적인 힘과 의존이 아닌,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관계가 이뤄지기 때문에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각각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 엄마에 대한 준의 마음과 행동은 의존일까?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일까?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의 개념을 알게 되면 <원더랜드>에서 엄마에 대한 준의 마음과 행동은 의존일까,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일까 궁금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라기보다는 그냥 의존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겉으로는 의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면서 투사를 통해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가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준은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의존하려고 했던 투사적 동일시가 아니라, 그냥 의존했던 것이다.
◇ 준에게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사용하는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 동물들
<원더랜드>에서 피벗을 비롯한 원더랜드의 동물들은 준에게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와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자신들을 이끄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원더랜드에 헌신적으로 공헌을 했는지 스스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으면서 준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피벗을 비롯한 동물들에 대해 준이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고, 꼭 그렇지는 않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의식의 영역에서 표현하는 의존과 환심사기가 아니라, 의식의 영역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무의식이 선택하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가 사용되기 때문에 관객은 어떤 측면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