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7시리즈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더불어 럭셔리 대형 세단 시장의 터줏대감이다. 1977년 처음 태어난 이후 현재 6세대 후기형 모델까지 진화했다.
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3세대(E38)의 후기형 모델이다. BMW 본사에서는 100년 역사를 기념하는 모델 중에 하나로 2세대(E32) 모델을 꼽기도 했지만, 내 취향에는 3세대 모델이 최고다. 1990년대 후반 이 차가 시판됐을 때는 벤츠 S클래스와 다른 BMW 특유의 스포티함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나온 7시리즈 중에 각종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모델이기도 하다.
높은 가격 때문에 꿈으로 그칠 줄 알았지만, 2015년 2월의 어느 날 E38을 덜컥 지르고 말았다. 중고차 사업을 하는 동창친구가 소개해준 모델인데, 첫 주인에게 13년 동안 봉사한 후 중고차 매매업소에서 1년 동안 잠들어 있던 차였다.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역시 BMW 7시리즈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다. 긴 차체에서 대형 세단의 웅장함이 느껴졌고, 운전을 할 때면 안락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저녁 술자리가 잡힌 날에는 다른 차를 제쳐두고 7시리즈를 몰고 나갔다. 술자리 후 뒷좌석에 앉아 대리기사가 모는 차에서 느껴보는 ‘회장님 코스프레’는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점점 늘어가는 수리 목록은 봉급쟁이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부터 내가 관리하지 않은 차여서 부품 교체 주기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하나를 고치면 다음에 또 다른 게 고장 났다. 여러 날 고심 끝에 나보다 이 차를 더 잘 챙겨줄 수 있는 주인에게 넘겼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7시리즈는 올해 6월, 6세대 후기형으로 국내 시장에 등장했다. 환상적인 물안개를 배경으로 등장한 신형 7시리즈는 더욱 웅장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 차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자 키드니 그릴이 지나치게 커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런 지적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 차를 사진으로만 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릴 위쪽이 보닛 쪽으로 꺾여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는 작아 보인다.
보닛은 레버를 두 번 당겨서 여는 방식. 때문에 보닛을 닫을 때는 힘이 좀 많이 들고, 서서히 닫으면 양쪽에 있는 걸림쇠 중 하나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보닛을 열면 웅장한 V12 엔진이 눈에 들어온다. 엔진이 큰 만큼 엔진룸에는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
인테리어는 전기형 모델을 기본으로 세부적인 디테일을 다듬었다. 가죽 시트의 퀼팅 면적을 넓혔고, 760Li에는 메리노 가죽을 덮어 고급스러움을 높였다. 대시보드는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클러스터를 완전한 디지털 방식으로 바꿨다. 이 부분은 BMW의 다른 최신 모델들과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공유돼 패밀리룩을 이룬다.
뒷좌석 안락함은 흠 잡을 곳이 거의 없다. 내장재가 구형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진 덕에 손에 닿는 촉감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뒷좌석을 눕히면 시트 쿠션도 올라가는데, 이 때 약간 붕 뜬 기분이 느껴진다. 시트가 올라가지 않고 앞으로만 움직이면 좋겠는데, 뒷좌석 구조상 한계로 보인다.
최고출력 609마력의 V12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로 컨트롤하도록 했다. 차의 특성은 강력한 파워와 부드러운 승차감. 최고의 정숙성으로 요약된다. 시승회 때 잠깐 타본 740Li 퓨어 엑설런스 모델에 비하면 힘이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이 차의 주 사용자가 뒷좌석에 주로 타는 ‘쇼퍼 드리븐’이기 때문에 패들 시프트 따위는 없다. 그래도 가끔은 오너 드라이버가 되어 운전을 즐길 수도 있을 텐데, 패들 시프트가 없는 점은 아쉽다.
반자율주행 기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막다른 골목길이나 일방통행로에서 후진해서 나와야 할 때 유용한 ‘후진 어시스트’도 그 중 하나다. 후진 기어를 넣고, 디스플레이에서 후진어시스트를 누르면 그 직전까지 저장된 50m의 경로로 그대로 후진을 진행한다. 이러한 기능은 벤츠 S클래스에 없다.
뒷좌석 만족도는 S클래스와 큰 차이가 없지만, 운전할 때의 감각은 두 차가 꽤 다르다. 7시리즈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부드러움이 더욱 강해지는 데 비해, S클래스는 점점 더 스포티해진다. 주행모드에 따른 승차감의 변화도 S클래스가 조금 더 크다.
이런 특성 때문에, 3시리즈나 5시리즈를 직접 몰던 이들이 7시리즈로 넘어갈 나이가 됐을 때 선택의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펄펄 날던 BMW 특유의 감각이 무뎌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760Li의 연비는 신호가 많은 시가지 위주로 달렸을 때 리터당 3.7~3.8㎞ 수준이다. 엄청난 배기량과 기통수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760Li는 몇 가지 과제도 남겼다. 우선 차체 크기에 비해 트렁크가 크지 않다. 전동식 뒷좌석이 장착된 탓인데, 그 점을 감안해도 후속 모델에서는 트렁크를 키우는 게 좋겠다.
계기반에 나오는 한글 서체는 아직도 어색하다. BMW의 영문 서체는 상당히 예쁘고 독특한데, 한글 서체도 새롭게 개발하면 좋을 듯하다. 디지털로 표시되는 내용 중 토크 단위가 유럽 기준(Nm)으로 표시되는 것은 우리 기준에 맞게 ㎏·m로 수정되어야 한다.
뉴 7시리즈의 가격은 뉴 730d xDrive, 740d xDrive, 745e sDrive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 모델이 각각 1억3700만원, 1억4680만원, 1억4670만원이며,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이 1억3950만원, 1억4930만원, 1억4920만원이다. 롱 휠베이스 모델인 뉴 730Ld xDrive, 740Ld xDrive, 745Le sDrive, 740Li xDrive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 모델은 각각 1억4800만원, 1억6290만원, 1억6210만원, 1억6200만원이며,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은 1억5050만원, 1억6540만원, 1억6460만원, 1억6450만원이다.
상위 모델인 750Li xDrive의 가격은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 모델이 1억9700만원,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 프레스티지 모델이 1억9850만원,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이 1억9800만원이며, 강력한 M 퍼포먼스 모델인 M760Li xDrive는 일반 모델과 V12 엑셀런스 모델 모두 2억3220만원이다.
760Li와 함께 한 며칠 동안은 아주 행복했다. 뒷좌석에 타지 못하고 내내 운전만 했지만, 운전기사가 몰도록 놔두기엔 아까운 차라는 생각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뒷좌석에만 앉아있기에는 아까운 최고의 세단.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