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의 생산차종 중에 가장 잘 팔리는 차는 쉐보레 트랙스다. 특히 수출시장에서는 수년째 최다 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그러나 최근 실적은 하향세다. 2012년 파리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수많은 경쟁 모델이 등장하면서 신선한 느낌은 많이 사라진 상태. 한국GM은 새로운 ‘트레일블레이저’를 개발했고, 2019년 상하이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였다.
지난 16일,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데뷔한 트레일블레이저는 이 모델의 한국판이다. 지난해 상하이모터쇼 현장에서 봤던 모델보다는 한층 더 화려하고 세련되게 다듬은 인상이 눈에 띈다.
앞모습은 먼저 북미 시장에서 데뷔한 ‘블레이저’와 판박이다. 블레이저는 스포츠카 카마로의 앞모습을 가져와서 완성했으니, 카마로와 블레이저, 트레일블레이저는 완벽한 패밀리룩을 이루는 셈이다.
차체 크기는 길이 4425㎜, 너비 1810㎜, 높이 1660㎜, 휠베이스는 2640㎜다. 길이만 보면 트레일블레이저는 현대 투싼보다 55㎜ 짧고 코나보다는 260㎜ 길다. 높이는 투싼보다 10㎜ 높고 코나보다는 95㎜ 높다. 또한 휠베이스는 투싼보다 30㎜ 짧고 코나보다는 40㎜ 길다. 전체적으로 코나보다는 투싼에 좀 더 가깝고, 차체 높이가 세 차종 중 가장 높아 사이즈보다 더 커 보인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기아 셀토스와 비교하면, 트레일블레이저의 길이가 50㎜ 길고 휠베이스는 10㎜ 길다.
휠베이스가 긴만큼 뒷좌석 레그룸도 동급에서는 가장 넉넉하다. 트랙스에서 실내공간이 아쉬웠던 고객이라면 이 부분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한 동급에서 차체 높이가 가장 높은 덕에 헤드룸도 꽤 여유가 있다. 키 177㎝인 기자가 탔을 때 머리 위로 주먹 두 개를 넣고도 남는 정도. 트렁크 용량은 기본 460ℓ이고 2열 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1470ℓ까지 확장된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느낌의 트랙스보다 한층 세련되게 변신했고 조작성도 향상됐다. 특히 애플 카플레이를 무선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돋보인다. 다만 변속기의 조작성은 아쉽다. 9단 자동변속기는 D에서 L 레인지로 바꾼 후 변속 레버에 달린 버튼으로 수동 조작을 할 수 있는데, 이때 손목을 아래쪽으로 많이 꺾어야 버튼에 손가락이 닿는다. 즉, 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변속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는 다소 높게 설계된 센터콘솔박스 때문이기도 하다. 콘솔박스 위쪽을 분리해 슬라이딩 기능을 넣는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엔진 라인업은 1.2ℓ와 1.35ℓ 가솔린 터보 두 종류를 준비했다. 트랙스가 1.4ℓ 가솔린 터보와 1.6ℓ 디젤 터보를 갖춘 것에 비하면 디젤을 없애고 가솔린 모델에만 주력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성능은 더 좋아졌다. 1.2ℓ 모델은 최고출력 139마력, 최대토크 22.4㎏·m로, 트랙스 1.4ℓ 모델의 140마력, 20.4㎏·m보다 높고, 1.35ℓ 모델은 156마력, 24.1㎏·m로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면서도 트레일블레이저 1.2 전륜구동 모델은 트랙스 1.4 모델보다 공차중량이 20~25㎏ 가볍다. 트레일블레이저 4륜구동 모델은 전륜구동보다 95~110㎏ 무겁지만, 출력과 토크가 충분해 부담될 수준은 아니다.
시승 모델은 1.4 4륜구동 모델이 준비됐다. 출발은 경쾌하고 가속은 부드럽다. 현대 코나, 기아 셀토스, 쌍용 티볼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차감이 말랑말랑하다. 과속방지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환영 받을 만한 세팅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출렁거리지는 않는다. 시승 도중 급차선 변경을 여러 번 시도해 봤는데, 하체가 끈끈하게 버티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안정된 주행성능은 시승차에 장착된 225/55R18 타이어의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타이어 제품인 시승차의 타이어는 과격한 주행에서도 상당히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트레일블레이저는 기본형에 16인치 한국타이어를, LT와 프리미어, 액티브는 17인치 한국타이어 또는 콘티넨탈을, RS에는 18인치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한다. 하위 트림에서 상위 트림의 타이어를 선택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차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트림을 선택할 때 타이어도 같이 고려하는 게 좋다.
한편, 엔진룸을 통한 소음은 거의 없는데, 하체 어딘가에서 소음이 살짝 올라온다. 이는 엔진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하체 방음을 조금만 더 꼼꼼히 하면 아주 좋을 듯하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전륜구동에 무단변속기를, 4륜구동에는 9단 자동변속기를 조합시켰다. 시승 모델인 4륜구동만 본다면 변속은 아주 민첩하고 부드럽다. 다만 스포츠 모드를 작동시켜도 별로 스포티해지지 않는 건 ‘옥의 티’다. 스티어링 휠 답력과 변속 패턴이 달라진다는데 큰 변화는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서스펜션에는 스포츠 모드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극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인증 연비는 17인치 기준으로 도심 10.9~12.5㎞/ℓ, 고속도로 12.6~14.2㎞/ℓ, 복합 11.6~13.2㎞/ℓ를 기록한다. 재미있는 건 1.2ℓ 모델보다 1.35ℓ 모델 전륜구동이 더 좋은 연비를 보인다는 것. 시승 모델인 RS는 이번 시승회에서 10.5㎞/ℓ를 기록했다.
트레일블레이저에서 놀라운 것 중 하나는 가격이다. 기본형이 1995만원부터 시작하는 매력적인 가격은 예전 쉐보레 라인업에서 기대할 수 없는 수준. 각 트림별로 다양한 선택사양이 마련돼 만족스러운 옵션 구성이 가능하다. 특히 현대 코나나 기아 셀토스에서는 불가능한 투톤 컬러+선루프 조합이 가능한 것도 트레일블레이저의 매력이다. 최고급형 RS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가격은 3320만원으로 올라간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한국GM이 개발을 주도한 제품으로, 차체 곳곳에서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상품성이 돋보였다. 높은 완성도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향후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쉐보레에서 아쉬웠던 점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타일, 성능, 가격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게 없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