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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머는 가라! 오프로드 드림카, 짚 랭글러 루비콘

발행일 : 2010-04-20 18:01:08

수억 원에 이르는 수퍼카만 드림카가 되라는 법은 없다. 여기 또 다른 영역에서 오랫동안 드림카로 군림해온 멋진 녀석이 있다. 오로지 오프로드 만을 위해 차를 만드는 지구상 단 두 개의 브랜드 중 하나인 짚 모델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적자, 바로 랭글러 루비콘이다.

글,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허머는 가라! 오프로드 드림카, 짚 랭글러 루비콘

가장 순수한 아메리칸 오프로더인 랭글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커진 차체와 디젤 엔진을 얹고 우리 곁에 찾아 온 것은 지난 2007년. 거기다 롱 휠베이스의 4도어 모델까지 데리고 돌아왔다. 디젤 랭글러를 그렇게 기다렸건만 정작 우리 곁에 다가온 그 랭글러 루비콘이 여러 번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정식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새로운 랭글러 루비콘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역대 랭글러의 모습 그대로인 듯 보인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곁으로 다가서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집으로’의 그 귀여웠던 꼬마 상호(유승호)가 어느덧 훌쩍 커서 태왕사신기의 소년 담덕으로, 그리고 공신의 백현으로 다가온 것처럼, 외모에서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 아담하고 단단했던 랭글러는 훌쩍 키가 커졌다. 키와 함께 모든 부분이 함께 커지다 보니 멀리서 보면 여전히 똑 같은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다.

허머는 가라! 오프로드 드림카, 짚 랭글러 루비콘

그런데 사이즈를 확인해 보면 사실 그다지 놀랄 만큼 큰 것은 아니다. 휠베이스가 2,420mm인 2도어의 숏 휠베이스 모델이다 보니 길이는 4,160mm에 불과하다. 하지만 폭은 무려 1,880mm에 이른다. 에쿠스보다는 살짝 좁지만 벤츠 S클래스보다 넓다. 덩달아 키도 훌쩍 커졌는데, 큰 키 때문에 가장 놀랍게 다가오는 부분은 엄청 높은 지상고다. 아쉽게도 시승차에는 사이드 스텝이 없다 보니 웬만큼 키 큰 사람이 아니고서는 타고 내리기가 수월치 않다.

스타일은 오랫동안 봐 왔던 랭글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그란 헤드램프, 폭포수 그릴, 플라스틱 범퍼. 거친 타이어, 완전히 각진 차체 등등. 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랭글러를 선망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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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간단하게 랭글러의 역사를 살펴보면, 1941년 윌리스가 생산하기 시작한 MA, MB에서 시작된 랭글러의 역사는 짚(Jeep)으로 넘어와서도 군용으로 계속 생산된 M 시리즈와 민수용으로 생산된 CJ 시리즈로 나뉘었다. 이후 1987년에 헤드램프가 직사각형인 YJ 모델이 데뷔했고, 1997년에는 다시 동그란 헤드램프의 TJ 모델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랭글러 루비콘 모델은 2007년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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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를 열면 여는 중간에 도어를 잡아 주는 스토퍼가 없다. 그냥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첩 부분의 나사를 풀고 쉽게 도어를 떼 내기 위함이다. 도어 떼 내고, 지붕 떼 내고, 앞 유리창 눕히면, 2차 대전 때 전장을 누볐던 윌리스 지프의 터프한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 유리창은 A필러 하단 좌우의 커버를 풀어 내면 간단하게 눕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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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커진 차체만큼이나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간단하고, 호흡이 거칠다. 데시보드는 앞뒤 길이가 극도로 짧다. 데시보드 위에 무언가를 올려 놓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센터 페시아는 계단식인데, 예전 모델들처럼 윗부분이 더 돌출된 방식이다 보니 마치 헤리포터에나 나옴직한 거꾸로 매달린 계단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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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은 과거 PT 크루저부터 시작된 레트로 풍의 4스포크 스티어링 휠로 이제는 크라이슬러의 패밀리 룩이 되었다. 그 속으로 보이는 계기판도 과거 4각형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깔끔해졌다. 창문은 전동식으로 오르내리지만 작동 버튼이 센터페시아 중앙에 위치해 있다. 도어에는 도어락 버튼이 좌우에 모두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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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플라스틱은 질감이 많이 떨어진다. 카본 느낌이 살짝 나도록 처리한 패턴도 싼 티가 너무 많이 난다. 하지만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과연 우리가 랭글러에 고급스런 실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하는 것이다. 거친 호흡이 어울리는 랭글러라 하더라도 기왕이면 고급스럽게 꾸며진 쪽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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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바닥은 물청소가 가능하도록 했고, 시트도 관리가 쉬운 투톤 직물로 마감했다. 헤드레스트는 신기하게도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는데, 아주 조금의 쿠션이 있을 뿐이어서 머리를 기대면 마치 목침에 머리를 누인 것 같은 느낌이다. 2열 시트는 더블 폴딩이 된다. 그리고 2열 시트 역시 예전에 비하면 꽤나 넓어졌다. 더군다나 아예 2열을 정식으로 확보하고 있는 4도어 랭글러도 준비되어 있으니 이제 랭글러를 패밀리 SUV로 사용하는 데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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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들은 스페이스 프레임에 장착되어 있는데, 트렁크에는 인피니티 서브 우퍼까지 장착되어 있어 생각보다 오디오의 음질은 좋은 편이다. MP3가 지원되는 CDP와 AUX를 갖추었다. 탑을 다 열고 야영하면서 음악을 즐기는 기분도 좋을 듯하다.

탑은 탈착식이다. 실내에서 잠금 레버를 풀면 쉽게 분리가 된다. 하지만 무게는 조금 나가는 편이어서 뒤쪽 큰 덮개는 두 명이 들어야 한다. 트렁크에는 소프트탑이 수납되어 있어, 오픈 탑에서 쉽게 소프트 탑으로 변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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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아쉽게도 V6 3.0CRD가 아니고 직렬 4기통 2.8CRD다. 2.8CRD는 체로키에 장착되었던 것의 개량형이고, 3.0CRD는 그랜드 체로키에 장착되는 것인데, 사실 배기량 200cc의 차이 외에 정숙성과 소음 등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2.8CRD도 초기형 커먼레일 디젤에서 개량된 피에조 인젝터 방식의 2010년 형이다.

4기통 2.8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77마력/3,800rpm과 최대토크 40.8kg.m/2,000~2,600rpm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오토 스틱 자동 5단이다. 오토 스틱은 스텝트로닉과 같은 방식으로 크라이슬러 그룹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작동 방식에서 기어 레버를 좌우로 밀면서 변속하는 점이 다르다. 구동 방식은 파트 타임 4WD로 평소에는 2륜 구동(2H)으로 주행하고, 주행 중 4륜 하이(4H)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4륜 로(4L)모드로 전환 하려면 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N)에 넣은 후 전환을 해줘야 한다. 4L로 전환되면 자동으로 ESP가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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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쩍 뛰어 오르듯 높은 시트에 올라 앉으면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진다. 유리는 평평한 직사각형이고 센터페시아가 짧아 유리창은 운전자에 바짝 다가와 있으니, 거의 파노라마 풍경이 펼쳐진 듯하다. 거기다 시트포지션이 높아 그야말로 시야 확보는 확실한 셈이다.

그런데 복병이 있다. 차체에 비해 바깥으로 많이 돌출된 펜더 덕분에 차 폭을 가늠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따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차 폭도 워낙 넓다 보니 좁은 골목을 주행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주차장에서는 특이하게도 폭만 신경 쓰면 되고, 길이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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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걸면 기대보다 시끄럽고 진동이 큰 엔진이 랭글러의 야성을 깨운다. 랭글러를 척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차는 꼼꼼하게 방음을 하고 타는 차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피에조 인젝터까지 장착된 최신 커먼레일 디젤 엔진인데도, 옛날 디젤 엔진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긋이 엑셀을 밟으면 거동도 요즘 디젤 차량들과는 달리 살짝 굼뜨게 움직인다. 작아 보여도 차체 중량이 거의 2톤에 육박하는데다 엔진과 변속기 반응이 살짝 더딘 편이어서 초반 가속 느낌은 과거 쌍용 뉴 코란도 정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힘의 절대치가 훨씬 큰 만큼 가속에 여유가 배어 있다.

랭글러의 오프로드 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과연 온로드 실력은 얼마나 좋아졌는지가 먼저 궁금하다. 엑셀을 끝까지 밟으면 기대 이상으로 밀어주는 힘이 좋다. 가속도 잘 이어진다. 변속은 40, 78, 128, 150km/h에서 각각 이루어지며 5단 3.800rpm 부근에서 180km/h에 살짝 못 미치는 속도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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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80km/h까지 달릴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가속은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의 직진 안정성도 상당히 좋다. 키가 크고 바람의 저항을 온 몸으로 받는 상태에서 이 정도의 안정감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랭글러로 100km/h 이상으로 주행 하는 것은 특별히 필요할 때 아주 잠깐씩이면 족하다. 평소엔 유유자적 주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속 주행을 권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엄청난 공기 저항으로 인해 연비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공인 연비는 9.6km/L로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동급 디젤 엔진을 생각하면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차체 중량과 공기 저항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에 틀림없다. 직렬 6기통 4리터 휘발유엔진에 자동 3단이던 시절에 연비는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온로드에서의 주행 감각은 상당히 딱딱한 편이다. 덕분에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높지만 작은 요철에도 반응이 크게 전달된다. 처음엔 이렇게 키 큰 차에 이렇게 딱딱한 승차감이 많이 어색했는데, 며칠 타고 다니는 사이 많이 익숙해지기는 한다. 아마 오프로드 매니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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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글러는 역시 오프로드를 달려야 제 맛이다. 오프로드를 위한 강력한 무기 중 첫 번째는 높은 지상고다. 배가 닿지 않으니 웬만한 곳은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험한 바위를 오르는 매니아들은 이 정도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차고를 더 높이기도 하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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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무기는 앞과 뒤 디프렌셜을 선택적으로 잠글 수 있는 액슬 락 기능이다. 앞 뒤 디프렌셜을 모두 고정시키면, 소위 한 바퀴만 땅에 붙어 있어도 차는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무기는 차체가 심하게 기울어지면서 한쪽 바퀴가 허공에 뜰 상황에 처했을 때 스웨이바를 분리시켜 바퀴를 접지 시킬 수 있는 스웨이바 분리 기능이다. 이 정도면 순정 상태에서도 거의 괴물에 가까운 오프로드 성능을 확보했다고 봐야 하겠다.

허머는 가라! 오프로드 드림카, 짚 랭글러 루비콘

솔직히 기자는 오프로드 매니아가 아니어서 이 정도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즐겁게 랭글러를 탈 수 있다. 부드러운 모래가 깊게 깔린 백사장이나 서해안의 뻘에 한 두 바퀴쯤 빠져도 겁날 게 없다. 아마 네 바퀴가 다 빠져도 배만 닿지 않았다면 어디든 다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은 산일지라도 바위를 타 넘고 언덕을 기어올라 정상에 서면 랭글러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겠다.

랭글러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최강의 오프로더로 자리매김하면서 수퍼카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던 허머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졌던 허머가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이치를 생각할 때, 넉넉해진 차체와 보다 실용적인 성능을 갖춘 랭글러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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