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다던 그 아반떼가 나온 지도 이제 세달 남짓 지났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주 고객층의 거부감이 우려되기도 했던 쏘나타가 그에 아랑곳 없이 급속도로 팔려나갔듯이, 신형 아반떼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차가 됐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시승차를 눈 여겨 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단순히 색상(클린 블루)이 예뻐서는 아닐 것이다.
글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쏘나타로 예방주사를 실컷 맞고 나서 만났건만, 아반떼는 또 다르다. 첫 느낌은 아반떼가 아니라 시빅의 차세대 모델을 보는 듯 했다. 높은 지붕으로 실내공간 확보를 강조했던 HD와 비교했을 때, 긴 휠베이스와 낮아진 지붕을 바탕으로 날렵하게 확대된 그린하우스는 현행 시빅 세단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신선함을 닮았다. 독특한 패키징으로 HD보다 5cm가 길었던 시빅의 휠베이스를, 신형 아반떼(MD)는 결국 따라잡았다.
차세대 시빅을 연상케 하는 또 하나의 단서는 어코드처럼 차체 밖으로 불거져 나온 헤드램프다. 그 입체감이나 안쪽의 디테일은 놀라운 수준이다. 프로젝션 램프를 휘감으며 지팡이처럼 휘어진 안쪽의 장식은 아래 급의 엑센트는 물론 유럽시장의 막내인 i10에까지 이어져있는 패밀리룩. 준중형이면서도 처음으로 HID를 설정한 것 또한 포인트다.
메탈릭한 장식으로 촘촘하게 처리한 하단 흡기구도 혼다의 몇몇 차를 떠올리게 한다. 상상은 거기까지. 아무튼 기존의 현대차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달라진 차 만들기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차가 아반떼다. 예전 같았으면 원가절감이네 뭐네 하며 뭉갰을 디테일들을 어찌 이리 꼼꼼하게 챙겼을까. 범퍼 하단의 흡기구도 그저 까맣게 격자를 치는 것이 보통 아닌가?
동일한 패밀리룩의 6각형 그릴이라지만 아반떼의 것은 차이가 있다. 보닛에서 내려온 캐릭터라인이 한 변으로 이어지면서 헤드램프를 끼고 바깥쪽으로 감기는 형상은 2008년의 컨셉트카 HED-5 ‘i-모드’의 디자인을 응용한 듯싶다. 썩소를 날리는 듯한 표정 때문에라도 첫눈에 반할 인상은 아니지만, 묘하게 매력은 있다. 아기공룡 둘리에 나왔던 고길동씨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살짝 눌릴 듯도 보이는 트렁크, 그리고 생소할 정도의 볼륨감을 만들며 후면으로 이어지는 후륜 휀더는 시각적으로 쏘나타를 능가하는 수준의 와이드한 느낌을 준다. 번호판을 중심으로 한 후면의 인상은 YF보다 되려 NF쏘나타를 닮은 것 같다. 뒷문 개구부의 라인이 그대로 반복되면서 트렁크와 범퍼의 절개선을 하나로 어우르는 부분에서는 디자인의 관록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두 개의 빨간색 반사판을 머금은 범퍼 하단부는 검정색의 별도 도장 처리가 없이도 디퓨저처럼 스포티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사이드미러에 내장된 LED깜빡이는 면발광식으로 광원을 숨겨 세련되게 보인다. 엑센트에도 이방식이 적용됐으니, 이제 점박이식 LED를 쓴 윗급 모델들은 슬슬 부끄러워질 때다. 사이드미러 아래로는 차에 다가갈 때 지면 상태를 살피기가 용이한 LED 조명(퍼들램프)도 달려있다. 그런데, 도어록에 사이드미러 폴딩까지 연동된 것은 아니라서, 미러를 접어놓고 내린 경우에는 그 덕을 보기 어렵다. 도어는 나름 무게감 있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열리는 각도가 아주 큰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사진으로 보고 걱정했던 실내는 다행히 실물이 훨씬 낫다. 현대차는 외관뿐 아니라 실내에 대해서도 ‘윈드 크래프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우선은 진보적이고 하이테크(혹은 SF)한 디자인이 ‘아반떼(‘avant’에서 유래)라는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만, 시각적인 무게감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다. 대시보드는 부드러운 재질이고 무광과 유광으로 구분한 검정색 플라스틱도 효과가 좋다. 내비게이션 화면 아래의 오디오 조작부는 제네시스의 날개마크 형상인 점이 재미있다.
실린더를 찌그러뜨린 것 같은 형상으로 멋을 낸 계기판은 기능도 좋다. LED 수퍼비전 클러스터에다가 4.2인치짜리 컬러액정을 배치했는데, 그래픽 화면은 어지간한 고급차가 부럽지 않다. 스티어링휠에 있는 TRIP버튼(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참을 다른 곳만 찾다가 발견했다.)을 눌러보면 차의 꽤 많은 기능설정을 운전자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게 돼있다. 도어의 자동잠금이나 해제를 어디에 연동시킬 것인지, 웰컴 사운드나 라이트 기능은 쓸 것인지, 평균연비는 자동으로 초기화할 것인지 등등. ‘수입차는 역시 다르구나’ 했던 부분들을 이제는 국산차도 –준중형차도- 막 따라 한다.
심지어 운전석은 요추받침까지 전동조절이 된다. 국산 준중형 최초로 전동조절 시트를 달고 나왔던 뉴SM3(6웨이)를 의식했는지, 아반떼는 10웨이 방식이고, 그래서 또 동급 최초란다. 지붕 높이를 45mm나 낮춘 걸 알고 있어서인지, 시트를 최대한 낮췄는데도 시각적으로는 천장이 낮고 앞유리 끝은 이마에 가깝게 다가온 듯싶다.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 멋을 부린 대가이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스티어링 휠은 각도와 거리 조절(!)이 모두 가능하고, 림의 가죽이나 패드부분 플라스틱의 질감도 나쁘지 않다. 가운데 팔걸이는 앞뒤로 묵직하고 견고하게 거리조절이 되는데, 생긴 것과(혹은 그 무게와) 달리 2단 수납함은 아니다. 대신 안쪽 수납공간은 사진으로 보기보다 꽤 깊다. 촬영용으로 갖고 있던 70-200 렌즈를 무심코 넣어봤는데, 똑바로 세운 상태에서도 팔걸이를 닫을 수 있어서 놀랬다. 넷북도 들어간다고 하는데, 대각선으로 넣으면 충분히 그렇겠다.
센터페시아의 옆구리 부분 포켓도 의외로 깊다. 그런데 무엇을 넣으면 좋을지는 생각을 해봐야겠다. 동반석 쪽에는 전원소켓도 달렸다. 운전석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소켓은 변속기 앞부분의 커버 안쪽에 들어있으니 동반석 것을 탐낼 필요는 없다. 외부기기 연결 단자들도 함께 모여있기 때문에 MP3나 스마트폰 등을 연결한 후에도 뚜껑을 닫아 깔끔하게 가릴 수 있다. 모양 자체는 탐탁지 않더라도 기능적인 부분들은 잘 고려했다.
윈도우스위치는 대체로 팔꿈치를 뒤로 빼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어 편하다. 원터치 기능은 물론 운전석에만 제공하고 있다. 가만 보면 윈도우 스위치의 연장 부분에 포켓 겸용 도어 손잡이가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윈도우 스위치와 도어록 스위치까지는 조명이 켜진다. 하긴 오버헤드 콘솔에 파란색으로 무드조명까지 켜주는 차다. 그런데 글로브박스 조명은 오히려 없어졌으니 속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비상등 스위치는 눈에 잘 안 띌뿐더러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있는 것이 불만이다. 한 세트로 자리한 좌우 독립형 풀 오토 에어컨은 생긴 것과 별개로 조작감이 좋다. 외기유입/내기순환 버튼을 건드려도 자동모드가 유지되는 것도 마음에 든다. 클러스터 이오나이저 기능이 있지만 외부악취 유입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우선은 지독한 새 차 냄새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뒷좌석에 탈 때는 지붕높이를 더 의식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앉아보면 중형택시마냥 꺼진 방석과 젖혀진 등받이가 삼삼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운전석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도 불편 없이 발을 집어넣을 수 있고, 바닥 가운데의 터널이 납작해서 체감 공간이 넓다. 동급 최초로 뒷좌석 방석에 열선을 넣었는데, 대신 뒷좌석용 송풍구는 없다. 도어트림에는 병 홀더를 포함한 포켓을 만들었고, 가운데 팔걸이에도 컵홀더가 있다. 앞좌석 등받이 포켓은 당연하다는 듯 동반석 쪽에만 붙어있다.
스키 스루는 없지만 뒷좌석 등받이는 트렁크 쪽에서 레버를 당겨 접을 수 있다. 트렁크 용량은 420리터로, 골프백 3개를 넣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대용량이지만 엑센트는 더 크다.
시동 거는 소리는 경박스럽다. 엔진이 일정온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떨림도 두드러진다. 하지만 일단 열이 오르고 나면 잦아들고, 저속에서는 천생 1.6 오토다운 건조한 소음을 낸다. 듣기 좋은 음색은 아니지만 고압을 사용하는 GDI엔진의 불리함을 생각하면 선방이다. 가속페달 초기반응이 쓸데없이 예민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동급 최초로 적용된 오르간식 페달의 설정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가속을 원할 때 그만큼 좀더 힘을 줘서 깊게 밟게끔 유도한다. 높은 회전수로 엔진을 갈굴 때의 느낌은 쏘나타2.0보다 차라리 나은 듯도 싶다. 이렇게도 밟아보고 저렇게도 밟아보니 소음과 진동 차단을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을 때도 있어서 알쏭달쏭했다. 정속 주행시의 소음만큼은 이 차급에서 별다른 불만을 말하기 어렵다.
1.6 GDI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는 100km/h 순항시의 엔진 회전수를 2,100rpm으로 유지시킨다. 수동모드에서는 70km/h에 못 미쳐서도 6단으로 달릴 수 있다. 4단으로 충분하다던 비겁한 변명을 거두고 자동 6단 변속기를 채택한 데 대해 –비록 늦었지만-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다. 그와 별개로, 오르막 또는 내리막길에서 적절한 단수를 찾지 못해 헤매는 변속기의 판단력은 종종 수동모드를 활용하게끔 만든다. 60~80km/h의 시내 주행 때 가속페달 on/off에 대한 반응이 변속충격처럼 나타나는 부분도 조금 신경 쓰인다. 변속기 자체는 매끄럽다.
수동모드는 변속레버를 오른쪽으로 빼서 조작하게 되는데, 조작감은 좋지만 팔걸이가 거치적거린다. 수동변속기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 수동모드에서도 레드존 이전에 자동으로 변속이 이루어지는데, 회전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저단에서는 6,000rpm 내외였다가 3,4단에서는 6,300rpm 이 포인트. 이를 기준으로 하면 각 단에서 50, 80, 120, 160km/h을 찍고 5단부터는 가속력이 축 쳐진다.
동일한 코스에서 풀 가속을 시도해본 바에 따르면 체감성능은 i30CW 1.6VGT와 비슷하거나 조금 부족한 수준이다. 수치상 ‘중형차를 위협하는 수준’인 구동계가 보여주는 성능으로서는 아쉽지만 허약체질이 만연한 준중형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자동변속기 차가 16.5km/L의 공인연비를 달성한 것은 사기캐릭에 가깝다. 아반떼HD 디젤과 연비가 같다니, 이건 심하다.
다만, 실제 연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통상적인 시승 조건에서 260km를 주행한 시승기간의 평균연비는 9.5km/L로, 공인연비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능동적으로 연료소비를 줄여주는 기능도 있지만 시승 중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참고로 1.6+6단 수동변속기의 공인연비는 17.5km/L다. 못생긴 AT레버 때문에라도 수동변속기에 관심이 가는데, 일부 사양은 자동변속기 모델에만 적용되니 얄밉다. 어차피 VDC가 달리는 모델이라면 경사로 밀림 방지 기능을 함께 제공해도 좋으련만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차브레이크가 채워진 상태에서 주행할 경우 경고음으로 알려주는 요긴한 기능은 있다.
항간에 이슈가 됐던 고속에서의 안정성 문제를 확인해보기 위해 급차선 변경이나 차선변경 중의 급제동등 나름의 테스트를 해봤지만 별다른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고속에서 기복 있는 노면을 만나면 스프링이 튀듯 가볍게 반응하는 등 분명 무게감 있게 착 달라붙는 고속안정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 급의 대중차에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예전보다 단단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i30처럼 유럽형 설정을 가진 차에서 바로 옮겨 타보면 승차감 위주의 편한 하체. 즉, 국내 시장에는 보편 타당하달 수 있다. 다만 시승차의 경우에는 타이어 (215/45R17) 탓인지 도로이음메나 잔요철 통과시의 충격이 세게 전달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신경 쓰였던 부분은 차라리 조향 계통이었다. 일부러 민감하게 설정했다는 조향장치는 하체의 전반적인 반응과 궁합이 맞지 않는 듯싶다. 주행 중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흔들어 보면 용수철장치마냥 차체가 꺼떡 거리는 데, 뭔가 모자란 아이를 보는 듯 하다.
세상에 없던 중형 컴팩트, 아반떼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준중형차였다. 제원이나 사양만으로는 중형이 부럽지 않은 데, 중형차 대신으로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팀 킬’을 막고자 하는 현대차의 전략일까? 스펙 상으로는 이렇게 잘날 수가 없을 정도이지만, 막상 타보면 경쟁 모델들이 파고들만한 허점들도 보인다. (범퍼 길이가 짧은 것은 허점이 아니다.) 이것 또한 공존과 상생에 대한 메시지라 치자. 그래서 아반떼는 잘났지만, 착하다.
시승차의 가격은 TOP 1,890만원 + 선루프 45만원 + 스마트팩( HID, 수퍼비전 클러스터, 가죽시트 등) 100만원 + (SPAS+ VDC) 70만원 + 7인치 인텔리전트 DMB 내비게이션 110만원 = 2,215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