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해무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진행된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시승회’에서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지난 2011 서울모터쇼에서 국내 발표 무대를 가진데 이어 5월 1일부터 시판에 들어간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먼저 시장에 나온 아반떼 하이브리드와는 달리 전기모터의 힘만으로도 주행이 가능해 그간 발전한 기술 수준의 차이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물론 LPG를 연료로 하는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달리 휘발유를 사용한다는 점은 국내 시장의 선호가 높은 중형차라는 사실과 함께 하이브리드 카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현대차의 표현을 빌자면 외관은 “철판 빼고는 다 바꿨다.”고 할 만큼 일반 쏘나타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하면 형제차인 K5 하이브리드는 일반 모델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터라, 소비자들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친환경적인 쏘나타는 가장 스포티한 외관을 뽐낸다. 아닌 게 아니라, 효율을 가장 중시하게 되는 친환경차, 특히 기존 차량의 가지치기로 등장하는 친환경차들은 공기역학 성능을 높여 효율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원래보다 날렵하고 낮아 보이는 외관을 얻게 되곤 한다.
차체와의 일체감이 강조된 앞뒤 범퍼를 위시한 하이브리드 버전만의 외관은 일반 쏘나타의 오너들도 눈독 들일만 하다.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범퍼의 흡기구에는 전동식 셔터가 달려 있어서 필요할 때만 열리도록 되어있다. 그 외에는 닫아둠으로써 공기저항을 줄이는 것이다.
LED 라이트 가이드가 포함된 새 헤드램프와 안개등, 뚜렷한 육각형 그릴 등의 요소는 유럽형 쏘나타인 i40와 닮은 꼴인 점이 재미있다. 새 테일램프는 입체적인 안쪽의 구성요소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러한 차별점들은 일반 모델보다 비쌀 수 밖에 없는 가격을 정당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실내의 경우에는 대시보드 등의 기본 형상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죽 시트에 파란색 실로 스티치를 넣은 것과 상위 모델의 것을 연상시키는 메탈 소재의 장식이 나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하이브리드 버전다운 요소는 계기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친환경 운전 게임(?) 기능을 내장한 4.2인치 TFT 전용 화면 내장 계기판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역시 ‘HYBRID’ 버튼을 이용해 에너지 흐름도나 연비 모니터 등 친환경 차에 어울리는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친환경차라고 하면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1열 시트 통풍 기능과 전동 조절 기능, 운전석 메모리 기능, 파노라마 선루프 등 편의사양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이런 것들을 모두 덜어낸다면 연비와 효율을 한결 높일 수 있겠지만 판매 목표는 한참 낮춰야 할 것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는 기존 쏘나타의 쎄타 엔진 대신, 새로 개발한 누우 엔진을 탑재했다. 누우 엔진들 중에서도 하이브리드 전용으로 개발된 버전이라, 일정 조건에서 뛰어난 효율을 자랑하는 앳킨슨 사이클로 움직인다. 배기량은 2.0리터 버전과 2.4리터 버전으로 나뉘어 각각 국내시장과 북미 시장에 투입된다.
국내 시장용 2.0 버전은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이 150마력이고, 30kW 전기모터가 힘을 더한다. 토요타의 복합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과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 각자의 최고출력을 산술적으로 더한 191마력이 바로 시스템의 최고 출력이 된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한 전기모터는 혼자서도 차를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전기 역할까지 겸한다.
변속기로는 하이브리드 카에서 흔히 예상되는 CVT대신 기존 쏘나타의 6단 자동변속기를 활용했다. 하지만 토크 컨버터를 없앤 것이 결정적인 차이로, 현대차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전용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것이다. 개발 초기만 해도 토크컨버터를 배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현대차는 비용효율적인 면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새로운 생각’을 현실에 옮겼다.
변속기에는 습식 다판 클러치가 그대로 사용되었고 엔진과 모터 사이에도 단속용 클러치가 들어있다. 토크컨버터 없이도 부드러운 제어를 해내는 것이 포인트다. 덕분에 간단한 구조와 상대적으로 적은 모터 용량으로도 구동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는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기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큰 차이는 이 부분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기모터는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마찬가지로 리튬이온 폴리머 전지로 가동된다. 트렁크와 뒷좌석 사이에 탑재돼 적재공간을 일부 잠식했지만 뒷좌석의 각도 등은 일반 쏘나타 그대로 유지했다. 차체 바닥 면에는 배터리 부의 다중 보호를 위해 강화플라스틱 덮개를 씌웠다.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버튼을 누르면 계기판에 ‘READY’ 표시가 켜질 뿐 엔진 시동은 걸리지 않는다. 출발할 때의 기동은 전기모터 담당이기 때문에, 배터리 잔량이 부족하다거나 하지 않다면 굳이 엔진을 가동시키지 않는 것이다. 전기모터 만에 의한 저속 주행은 30km/h 정도까지 가능하다. 마침 계기판에 표시된 어린이 보호구역 제한 속도 눈금과 겹친다. 전기차와 다를 바 없이 무소음에 가깝게 움직이므로, 보행자 보호를 위해 가상의 엔진소리를 내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막상 운전을 해보면 60km/h 정도까지는 물론 100km/h가 넘는 속도에서도 EV(전기차)모드임을 알리는 계기가 켜지는데, 실제로는 이것이 전기모터 구동 주행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엔진의 시동이 꺼진 상태임을 나타낸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차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면 수시로 엔진을 켜고 끄는데, 주행 중에는 그 시점을 알아채기가 어렵다. 시동이 꺼지거나 켜질 때 신경 쓰이는 진동을 수반했던 벤츠의 S400 하이브리드와 비교하면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훨씬 뛰어나다.
191마력의 합산 출력은 ‘폭발적’이라는 현대차의 표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실 주행에서 충분한 성능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탑재로 인한 무게차이가 의외로 크지 않은데다가 일반 소비자들이 위화감을 갖기 쉬운 CVT대신 친숙한 주행 패턴의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점이 여기에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내리막 길에서 가속페달을 떼면 EV모드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옮겨 엔진 브레이크를 작동시켜도 EV모드가 유지된다. 즉, 엔진 시동은 걸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때의 소음은 일반 엔진 차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변속기의 수동조작 모드가 있는데도 계기판에서 엔진회전수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연구원에 따르면 그보다 우선해서 보여줘야 할 다른 정보도 많기 때문에 회전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RPM게이지가 배치됐을 법한 자리는 에너지 가이드라는 계기가 차지하고 있는데,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양새가 RPM게이지를 연상시켜 재미있다. 시동(전원)을 켜면 READY 위치로 이동하고, 100km/h 정속 주행 때는 두 번째 눈금을 가리킨다.
엔진 회전수가 표시되질 않으니 기어변속 시점을 체크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상황이지만, 소리로 미루어 짐작하면 50, 80, 120, 155(km/h) 정도다. 이후로는 몹시 더디게 190km/h까지 가속됐다.
급 가속 시에는 엔진과 모터가 함께 돌아 최대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출발 때는 우선 모터만으로 초기 움직임을 만든 뒤 엔진이 합세하는 형태가 된다. 따라서, 초기에는 모터소리만 나다가 엔진음이 뒤늦게 더해지기 때문에 체감 가속은 실제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수치상) 실 가속성능은 2.0 가솔린 엔진의 쏘나타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추월가속을 위해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는 경우에는 반응이 일반 차량보다 한 템포 늦게 나타나는 편이다. 이는 힘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변속기의 의도적인 설정 탓으로 보인다.
몸놀림은 운전 재미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쾌함을 가졌다. 핸들링도 좋고 조향 반응이 일반 모델 보다 낫게 느껴졌다. (동승한 연구원은 ‘새 차라서 그렇겠지요.’라고 말하긴 했지만…) 구동용 배터리 외에도 일반 전원용의 배터리까지 트렁크 한쪽 면에 배치했으니 무게 배분은 일반 쏘나타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일부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차고를 낮추고 달라진 무게배분에 맞게 다시 설정한 하체가 지나치게 단단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차고를 그대로 유지했고 서스펜션도 단단해진 느낌이 없다. 일반 차에만 익숙한 운전자라 할지라도 거부감을 느낄 요소가 거의 없어 보인다. 타이어로는 신차출고용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금호 솔루스 KH25를 장착했다. 특정 브랜드의 친환경 컨셉 제품이 아닌 것은 조금 의외인데, 17인치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엄살은 심한 편이다.
정속 주행 중에는 노면 소음이 두드러진다. 차체 방음은 부족하지 않지만 엔진 소음이 상대적으로 줄면서 오히려 다른 부분의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것이다. 회전수를 심하게 높이면 엔진-혹은 모터의 소음에 약간의 진동이 뒤따르지만, 일상적인 용도에서 크게 거슬릴 수준은 아니다. 제동 때의 소음이나 브레이크 에너지 회생 기능이 작동할 때의 이질감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르막에서는 밀림방지기능도 작동한다.
시승은 양양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정동진까지 갔다가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총 134km 코스에서 이루어졌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상품이 걸린 연비 대회가 벌어졌지만,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여느 시승 때처럼 다양한 패턴의 운전을 해봤다. 그 결과, 국도 구간에서는 12.3km/L,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10km/L의 평균연비가 나왔다. (실수로 바꿔 쓴 것이 아니다.) 국도구간에서도 차량 정체나 신호대기는 거의 없었는데, 대신 사진촬영을 위해 코스를 여러 차례 이탈했었고 에어컨과 통풍시트는 늘 켜두었다.
이와 달리 연비 대회에 충실히 임했던 다른 기자들은 국도에서 23.4km/L, 고속도로에서 26.5km/L라는 출중한 기록을 뽑아내기도 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공인 연비는 21km/L다. 참고로, 양양에서 민통선 너머 두타연까지 편도 100km를 왕복한 시승 구간에서는 갈 때 14.2, 올때 17km/L의 평균연비가 나왔다.
현대차에 따르면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동급 2.0 가솔린 차(SM5)와 비교했을 때 공인연비 기준으로 2년간 유류비가 250만원 절감되기 때문에, 차값의 추가 부담은 2년 6개월이면 회수 가능하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구입 때 보조금 지원을 받게 되고, 서울의 경우 혼잡통행료 면제, 공영주차장 50% 할인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모터와 배터리 등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해서는 6년/12만km의 보증이 제공되는데, 실제 내구성 테스트에서는 30만km까지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올해 국내 판매 목표는 11,000대이고, 내년부터는 연간 18,000대 이상을 내다본다. 2010년 한 해 동안 2,270대가 팔렸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올해 들어서는 4월까지 이미 1,500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분위기가 좋다는 것도 현대차가 가진 자신감의 근거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