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제8회에서는 돌담병원 수술실에서의 인질극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진지함을 보여줬다. 윤서정(서현진 분)의 목에 낫을 갖다 대며 수술을 중단하라는 아린 아빠(이철민 분)의 협박에도 김사부(한석규 분)는 수술을 중단하지 않으려 칼을 잡는다.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 누군가는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살려내야 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아내와 딸의 강간범을 살려야 하는가?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8회 방송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에게는 당장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는 나쁜 사람인데, 누군가에게는 당장 내 눈앞에서 살려내야 하는 환자이다.
이철민은 억울한 마음과 아버지의 사랑을 정말 처절하게 표현했다. 처음에 거친 행동과 말투로 2류 건달처럼 등장한 이철민은 뻔한 캐릭터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절규를 하며, 자신의 아내와 딸이 겪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을 토로하는 이철민은, 아린 아빠의 행동에 대한 개연성을 넘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과 응원을 이끌어 냈다.
제8회의 주인공은 이철민이다. 울부짖는 이철민을 있는 그래로 바라보던 카메라는, 이철민의 절규에 따라 흔들리며 그의 모습을 담았다. 감정에 격한 연기를 하면서도 연극적이지 않게 미세한 톤을 조정했고, 그렇다고 절제함으로써 캐릭터를 희석하지 않은 점도 돋보였다.
이철민이 칼이 아닌 낫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학 드라마이기 때문에 칼에 의사가 아닌 다른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사부가 남도일(변우민 분)과 있을 때 식재료를 손질을 위해 칼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협박의 도구로는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낫은 칼과는 다르게 영상 속에서 덜 혐오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할 수 있다. 과도한 거부감을 줄이고, 장면의 험악함보다는 이철민과 서현진의 내면 표현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낫이 선택됐을 수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 대해 뻔한 의학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감동을 미리 정해놓은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철민은 의학 드라마를 휴먼 감동 드라마로 한층 더 승격시켰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줬던 의학 드라마로서의 감동은 이번 회차에서 열연한 이철민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영화에서 사람을 너무 잘 죽이는 경향이 있다. 생명의 소중함, 인간존중의 정신을 부르짖으면서도 드라마와 영화, 특히 영화에서는 사람을 너무 잘 죽이고 관객들도 그것을 원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병원에서도 한 명의 생명을 살리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지만 이런 모습은 일반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미디어 예술에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은 너무도 쉽게 일반 사람들에게 노출된다.
그렇기에 사람이 죽어도 별 반응이 없기도 한다는 점은 씁쓸하다. 영상의 인물이 누군가를 죽였을 때 대리만족,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디어 예술이 만든 세계 속에 관객들이, 시청자들이 끌려들어 갔기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뻔한 감동을 준다고 이 드라마를 절대 폄하할 수 없다. 인간존중의 정신,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대정신의 가치는 무척 중요하다.
◇ 김사부, 누가 맡았어도 멋있는 캐릭터일까?
서정의 목에 낫을 대 서정의 목숨이 위급하고, 또 한 편으로는 수술대 위에 있는 환자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급한 시간이다. 이때 김사부는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김사부의 정체성은 평정심인가, 냉정함인가?
그때의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위험하고 도발적이었다는 것은 직접 본 시청자들은 모두 알지만, 송현철(장혁진 분)의 입을 통해 부연된다. 김사부처럼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김사부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 김사부처럼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청자들도 성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한석규가 맡은 김사부 역에 대해 누가 했어도 멋있는 캐릭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한석규이기 때문에 특별히 멋있고, 한석규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훌륭하게 소화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까? 이전부터 보여준 한석규의 뛰어난 연기력에 익숙해진 시청자는 그가 연기를 잘한다고 느끼기보다 캐릭터가 멋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에 연기력이 떨어진 배우가 김사부를 맡았으면, 사람들은 김사부 캐릭터는 좋은데 배우의 연기력이 문제였다고 했을 것이다. 멋진 김사부 캐릭터를 대단한 배우가 맡았기 때문에 ‘낭만닥터 김사부’가 빛나고 있는 것이다.
◇ 서현진과의 밀당인가, 서현진과의 케미인가?
이번 회에는 이철민 못지않게 서현진도 색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서현진과 유연석(강동주 역)의 밀당, 서현진과 한석규의 밀당, 서현진과 양세종(도인범 역)의 밀당은 모두 각기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세 명과의 밀당은 세 명과의 케미로 연결되는데, 서현진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철민과도 뛰어난 케미를 보여줬다. 제8회의 제목은 ‘휴머니즘의 발로’인데, 각기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서현진은 보여준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야가 점점 드라마를 보는 다채로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병원에서 파견 나와 돌담병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메모해 보고하는 지간호사(이채은 분)의 감시와 미스터리한 여인 우연화(서은수 분)의 관찰이 어떻게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궁금해진다.
장혁진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장난기 있고 코믹한 목소리로 연기를 펼쳐 이중성을 가진 송현철 캐릭터를 소화한다. 표정과 목소리의 이중적 표현은 진지함과 유머스러움을 넘나든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조연들의 활약도 돋보이는 드라마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