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화유기’에서 이승기(손오공 역)를 눈앞에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인물은 오연서(진선미 역)이고, 차승원(우마왕 역)이 신선이 되기 위해 꾸준히 매진하는 이유는 김지수(나찰녀 역) 때문이다.
제6회까지 방송된 ‘화유기’에서 요괴가 아니면서 현재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인물은 김지수와 이세영(좀비 소녀 역)이다.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이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별개로 진행되지만 결국 연결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 이세영은 환생한 김지수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할 수도 있다. 이런 가정이 맞을지 여부는 회차가 진행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추측의 근거와 이유, 그에 따른 예측을 하는 것만으로도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김지수가 현생에 환생한 사람이 이세영이라면?
‘화유기’에서 김지수는 비참하게 살다가 잔혹하게 죽는 것을 반복한다. 천계로부터 환생할 때마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 운명을 벌로 받고 있는 것이다. 제4회 방송에서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간 차승원은 죽기 1년 전의 김지수를 만나는데, 김지수는 차승원을 알지 못한다.
현생에서 이세영도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환원시의 좀비 소녀인 이세영에게 차승원은 어딘가 모르게 신경을 쓰고 있다. 김지수와 이세영의 운명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고, 살리고 싶은 차승원의 마음은 김지수뿐만 아니라 이세영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특급 반전이 나타날 경우 ‘화유기’는 자기가 찾고 있는 정말 중요한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있다는 메시지 또한 수반하게 된다. 그렇지만, 김지수에서 이세영으로 얼굴이 바뀐 이유와 차승원이 왜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제5회 방송에서 과거 영화 속 한 시간의 세상을 없앴는데, 그로 인해 김지수의 얼굴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시 찾아가진 못하겠네.”라고 말하는 차승원의 대사는 연속된 것에 단절과 변형이 이뤄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세영은 액자에 그려진 김지수의 그림을 보고 무척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는데, 만약 이세영이 김지수의 환생이라면 이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섬뜩한 암시의 장면일 수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과 그로 인한 존재감 소급 확보의 암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세영이 기억을 찾을 때 뭔가 나올지 모른다고 말한 이홍기의 암시
‘화유기’에서 이홍기(저팔계 역)는 이세영이 기억을 찾을 때 뭔가 나올지 모른다고 말하는데 이는 엄청난 암시일 수 있다. 만약 김지수가 이세영으로 환생한 것이라면, 이세영이 기억을 찾을 때 자기를 죽인 사람을 특정하면서 일단의 갈등이 해소됨과 동시에 더 들어간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소급해 론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세영이 김지수의 환생이라면 이세영이 기억을 되찾는 것은 드라마가 한참 진행될 후일 가능성이 있다. 비참하게 죽어가던 이세영이 현재 중간 과정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의 개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큰 그림 속의 과정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때 차승원이 김지수와 이세영에게 위해를 가한 이들에게 복수와 응징을 해 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인지, 김지수와 이세영 삶의 고통의 고리를 끊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둘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 차승원이 오연서를 살린 이유도 결국 환생한 이세영 때문?
‘화유기’ 제6회에서 이엘(마비서 역)은 차승원을 위해 오연서를 죽이려고 계획하는데, 이홍기가 알려줘서 차승원과 이승기가 몸으로 둘 다 막으려고 하다가 차승원이 대신 칼을 맞으면서 막는다.
오연서의 피로 이세영이 살아났기에 오연서가 죽으면 이세영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홍기의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국 차승원이 오연서를 살리면서 이세영을 살린 셈이다.
이세영이 김지수의 환생이라면 차승원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이세영을 구해주고 있는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많이 하는 이승기가 이세영을 데려왔기 때문에 그냥 다 이승기에게 떠넘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박을 계속하면서도 이세영을 위해 차승원이 노력하는 것도 결국 의식의 세계에서는 알지 못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와 감각기관을 비롯한 세포의 기억 속에서 이세영이 김지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화유기’에서 요괴들 사이의 대화에는 냉족발 같은 냉정함이 느껴진다. 주고받는 섬뜩한 말들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고, 잔인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 인간의 감수성을 가지고 반응하는 유일한 존재가 이세영인데, 좀비 소녀인 이세영은 때로는 인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이 또한 김지수의 환생이기 때문에 생긴 캐릭터라고 보면 무척 놀라게 된다.
◇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김성오와 이승기! B급 코드를 고급스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화유기’의 디테일!
김성오(이한주 역)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화유기’에서 인간 모습의 요괴가 마구 던지는 판타지로부터 시청자들을 중심축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김성오에 대한 시청자들의 존재감은 더욱 각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디서 얼굴만 보고 날제비 같은 놈을 뽑아서 써먹지도 못하고”라고 말하는 김성오에 대해, 이승기는 “건방진 부동산! 어쩐지 귀 간지럽더라니. 누구에게 날제비래? 난 원숭인데”라고 말하며 원숭이 표정을 짓는다.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진 시청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김성오와 이승기의 입을 통해 대신 전달하는 디테일과 재미, 해학은 무척 흥미롭다. B급 코드를 고급스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유기’의 디테일이다.
이승기와 차승원의 백허그 장면에서 사용된 배경음악 또한 짓궂은 장난처럼 생각될 수 있고, 부작용으로 인한 수전증인 것처럼 하면서 이승기에게 잔의 물을 뿌리는 차승원의 소심한 복수 또한 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엘과 오연서가 동시에 눈물을 흘리게 해 시청자들도 갑자기 같이 울게 만드는 점은 B급 정서를 잘 살리고 있음에도 드라이하지 않고 촉촉하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마치 내부 마감을 끝까지 하지 않고 그것을 인테리어로 승화해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는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느낌을 ‘화유기’가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A급 정서와 B급 정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게 ‘화유기’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