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르네 킴) 감독의 ‘Director's Cut(디렉터스 컷)’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디렉터스 컷은 개봉판 영화와는 달리 감독이 자신의 의도대로 재편집한 감독판 영화를 뜻한다.
‘Director's Cut’의 감독과 각본은 같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감독의 시야라기보다는 작가의 시야에서 바라본 창작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시나리오 창작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이 작품이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 창작의 과정에 있는 시나리오 작가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Director's Cut’에서 시나리오 작가(윤정로 분)로 보이는 한 남자가 글을 쓰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감독이라고 부른다. 이 남자의 주변에서 갑자기 등장하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현실 같기도 하고, 시나리오 속 구상 혹은 영화 속 장면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장면들처럼 삽입되고 시작되는 장면은 작가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Director's Cut’ 안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은 온전한 하나의 인간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의 수만큼, 캐릭터가 분리된 수만큼 작가의 내면 또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작가는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실제 연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쓴 시나리오를 스스로 시뮬레이션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화장실에 있거나 혼자 운전할 때, 혼자 밀폐된 방에 있거나, 길거리 아무도 없을 경우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자기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있을 때 각각의 캐릭터로 일인 다역의 연기를 하는 것이다.
‘Director's Cut’에서 등장인물들은 감독이 시키는 대로 그냥 따라 하지 않고 왜 나에게 이렇게 했는지를 따지는데, 이는 작가가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연기하는 상태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시나리오 전체를 전지적으로 장악하고 있기도 하고, 각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각 캐릭터를 대변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는 각각의 캐릭터를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을 겹치지 않게 분리할 수 있는데, 캐릭터 분리를 철두철미하게 하는 똑똑한 작가는 정신분열 증세에 시달릴 수도 있다.
역할에 몰입했을 경우 영화 촬영이 끝나도 원위치로 바로 돌아오지 못하는 배우의 이야기를 가끔 들을 수 있는데, 한 캐릭터가 아닌 모든 캐릭터에 분리된 감정이입을 한 작가의 경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더욱 고통이 클 수도 있다.
◇ 내가 창출한 세상에 내가 만족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모두 자신이 창출한 캐릭터인데도 누구는 예뻐 보이고 누구는 미워 보인다는 것에 대해, 창작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현실인지 나의 상상 속 영화 시나리오인지 혼동되는 경험은 어쩌면 능력 있는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겪어야 할 운명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상상의 세계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하다 보면 상상의 세계에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Director's Cut’에서의 갑작스러운 반전과 결말은 그런 작가 내면의 답답함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수정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는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겪을 수 있는 선택이다.
‘Director's Cut’은 창작의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는 무척 현실적인 작품인데, 일반 관객에게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작품일 수도 있다. 김은혜 감독이 차기 작품에서 ‘Director's Cut’에서 보여준 내면의 갈등을 얼마나 공감대 있게 펼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