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영 감독의 ‘오! 나의 말숙(OH! My malsuk)’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오말숙(옥주리 분)은 생일인데 늦은 밤까지 들어오지 않는 남편 고순동(박노식 분)과 딸 고종희(박수연 분)를 기다리다 봄맞이 커튼 세일 홈쇼핑 광고를 본다.
영화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주부의 설움과 억울함을 무겁지 않게 표현하고 있는데, 남편과 딸은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철천지원수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 vs.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것
‘오! 나의 말숙’에서 남편과 딸은 부인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남편, 최고의 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또한 아니다. 부인과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자신들 각자의 술자리를 모두 가진 후 들어오고, 욕먹을 방법을 사용했긴 하지만 선물을 사 가지고 들어온다.
문제는 작은 선물일지라도 엄마가 원하는 선물을 해드리는 것이 좋은데, 자기의 입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남편과 딸은 모르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인지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엄마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가 아닌 자기의 감정에 취해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아빠 또한 딸과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는데,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깨우는 장면의 성인판이 ‘오! 나의 말숙’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설움과 억울함으로 점철된 인고의 세월
‘오! 나의 말숙’에서 말숙은 욕구불만에 따른 홈쇼핑 지름신이 강림했지만 마음껏 선택하지도 못한다. 홈쇼핑 장면에서 쇼호스트의 목소리가 유혹녀 목소리(김보영 분)로 변해 맞춤 유혹을 하는 것은, 실제로 구매를 정당화하려는 내면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이 장면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커튼 한 번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억울함은 지난 세월에 대한 설움으로 이어지는데,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은 엄마에게 감정이입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딸에게 감정이입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아빠와 딸의 소통, 그들의 내면이 궁금하다
‘오! 나의 말숙’에서 아빠와 딸은 철부지 오빠와 철부지 딸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그 둘 사이는 공감대가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어린 딸이 아니라 어른이 된 딸과 아빠가 친구처럼 지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와 딸이 엄마의 생일에 둘 다 각각 술을 마시고 들어온 이유는, 매일 그런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와 딸은 둘만의 이야기를 작게 말하는데, 영화에서 표현되지 못한 무언가 중요한 포인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아빠와 딸은 행동과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면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어떤 내면 심리를 가졌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감독과 배우에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