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i와 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을 통해 살펴볼 경우, ‘화유기’에서 이승기(손오공 역), 오연서(진선미/삼장 역)의 조절 유형과 동기가 내면화되는 과정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양상을 띠는데, 차승원(우마왕 역)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승기와 오연서의 동기는 지속적으로 점차 변화를 가져오면서 내재화, 내면화됐다면, 차승원은 처음부터 김지수(나찰녀 역)를 구해야겠다는 확고한 내재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승기와의 관계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김지수와의 관계에서는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확고한 내재동기를 가진 차승원! 이승기, 오연서와는 다른 행보를 걸을 수밖에 없다
‘자율성’이 핵심 개념인 Ryan & Deci의 자기결정성 이론은 인간이 자율적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동기는 외재동기와 내재동기로 나눌 수 있고, 외재동기는 외적동기, 내사된 동기, 확인된 동기, 통합된 동기로 또다시 나눌 수 있다.
자기결정성이 전혀 없는 무동기(amotivation)까지 추가하면, 동기가 내재화되는 순서는 무동기, 외적동기, 내사된 동기, 확인된 동기, 통합된 동기, 내재동기의 여섯 단계로 볼 수 있다.
‘화유기’ 제18회까지의 진행을 보면 이승기는 외적동기에서 시작해 통합된 동기까지 내재화되고 있고, 오연서는 무동기에서 시작해 통합된 동기까지 내재화되고 있다. 그런데, 차승원은 드라마 시즌 초반부터 외재동기가 아닌 내재동기에 의해 움직였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천계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차승원은 매우 분노하는데, 차승원이 거의 천 년의 시간을 동일한 내재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승원은 더 크게 분노해도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차승원의 자율성 욕구, 유능감 욕구, 관계성 욕구를 높이는 사람은 이엘!
Ryan & Deci의 자기결정성 이론은 인간이 역량과 기능을 잘 발휘하려면 자율성 욕구(need for autonomy), 유능감 욕구(need for competence), 관계성 욕구(need for relatedness)의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다고 본다.
자율성 욕구는 행동의 주체가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인데, ‘화유기’에서 차승원은 스스로 많은 것을 결정하지만 실제로 비서인 이엘(마비서 역)이 결정한 것을 이엘은 차승원이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자율성 욕구는 실제 행동의 주체가 됐을 때 충족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느낄 때 진짜 충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엘은 농담처럼 말하는 충신이 아니라 진짜 충신인 것이다.
유능감 욕구는 능력에 맞는 도전을 통해 과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성공하려는 능력에 대한 욕구이다. 차승원의 심기를 거스르게 만드는 대상에 대해 이엘은 습관적으로 “죽일까요?”라고 묻는데, 이는 차승원으로 하여금 자신이 효과적으로 통제를 하고 있고 이엘은 그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엘의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피드백은 차승원의 자존감을 높여 내재동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만약, 차승원이 하려는 것에 대해 이엘이 사사건건 문제점을 제기했으면, 차승원의 내재동기는 훼손 받았을 수 있고 자기결정성 또한 저하됐을 수 있다.
관계성 욕구는 의미 있는 타자와 가깝고 안전한 유대관계를 확립하려는 욕구이다. 관계성이 감정의 연결, 따뜻함과 보살핌의 느낌으로 이어져 내재동기를 증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엘 역시 차승원의 관계성 욕구를 충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의외로 이승기와 오연서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화유기’의 주요 인물 중 차승원, 이승기, 오연서의 동기를 자기결정성 이론에 대입해 3회에 걸쳐 살펴봤는데, 다른 인물 또한 자기결정성 이론으로 행동과 동기를 파악할 수 있다.
본지는 ‘화유기’ 제4회 리뷰 때 본지는 심리학 이론 중 관계성에 중심을 둔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네 가지를 이용해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분석했었다. 이번 자기결정성 이론에 입각한 리뷰에서도 그때와 공통점인 감탄을 하게 되는데, ‘화유기’의 구성과 캐릭터 설정, 갈등 구조와 스토리텔링은 무척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