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영 감독의 <기억 아래로의 기억>은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본선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단편 영화이다. 감독은 ‘기억에 대해 불완전함의 태도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태도는 일반적인 현실에서와 다르게 보인다. 현실에서는 출처와 소유가 확실하지 않을 때 일단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영화 속에서는 반대이다. 이런 설정은 감독의 의지이자 선택일 수 있다.
◇ 기억에 대한 불완전함!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확신!
우리는 살면서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하고 있는데, 나와 다른 사람은 그 기억에 대해 각각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기억 아래로의 기억>은 기억에 대한 불완전함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처음부터 잘못 인지된 기억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왜곡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기억의 재해석과 재조합이 이뤄진 후 왜곡된 기억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출처와 소유에 대해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물건들이 다수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그럴 경우 그런 물건을 일단 본인의 소유로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반대로 내 기억에 확신이 없으면 내 것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박석영(고유준 분)의 태도와 같은 이런 설정은 감독의 의지이자 선택일 수 있다고 추측된다.
◇ 본인은 큰 악의 없이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은주
오랜만에 우연히 이유경(김예은 분)과 윤성현(하성국 분)을 만난 오은주(문혜인 분)는 큰 악의가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공격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은주는 성현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개인전을 하지 않은 석영을 비난하고, 그냥 팩트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유경의 과거를 건드린다. 영화를 보면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 꼭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은주의 대화를 듣고 은주가 뭐 잘못한 게 있냐고 말하는 관객은, 어쩌면 본인도 은주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말과 행동이,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한 번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 내면을 이야기한 유경, 팩트로 방어하고 거부한 석영
언니 집에 두고 간 자기 짐을 정리하다가 유경이 발견한 담뱃갑 종이 뭉치가 유경에게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기보다는 지난날과 현재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더욱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석영은 팩트에 대한 명확한 확인을 통해 방어하고 거부하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다. 기억의 불완전함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이야기는, 기억의 불완전함 속에 분명한 태도를 부여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을 더욱 조명한다.
영화의 제목에 대입해보면 담뱃갑 종이 뭉치가 ‘기억’이었다면, 그 시절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의 마음은 ‘기억 아래로의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기억이 불완전한 게 아니라, 기억 아래로의 기억, 즉 그 안에 있는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억 아래로의 기억>은 보이는 외적 형태에만 집중하면 쉽게 메시지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인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에 집중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관객의 각자 성향과 기억에 대한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