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감독의 <낯선 자>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새로운선택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되는 단편 영화이다. 미세먼지와 모래바람에 지선(배영지 분)과 정환(김현우 분)은 집 안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창문 밖의 거지(김해준 분)가 자신의 집을 보고 있다는 것을 혼자 알게 된 지선은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데, 정환은 이런 지선이 미쳐간다고 생각한다.
<낯선 자>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정환은 왜 지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미쳤다고만 생각했는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물어보지도 않고 보호해주지도 않았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난다.
◇ 불안감을 주는 미세먼지, 공포감을 주는 낯선 사람
불안감과 공포감은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다른 디테일과 성격을 가진 감정이다. 불안감은 어떤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느낌이고, 공포감은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극렬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이다. 즉, 불안감은 일어나기 전의 감정이고, 공포감은 실제로 마주쳤을 때의 감정이다.
<낯선 자>에서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만드는 미세먼지와 모래바람은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지선에게 가해를 해 수감돼 있는 어떤 사람은 3년 후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 또한 지선에게는 강한 불안감을 주고 있다.
미세먼지/모래바람, 과거의 가해자, 이 둘은 지선의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만드는데, 창문 아래서 발견한 거지는 불안감으로 가득 찬 지선의 공포감을 폭발시키는 존재이다. 영화 속 피아노 소리가 불안감을 조성한다.
◇ 지선의 불안감을 정환이 인정하고 보호했다면?
지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불안감을 준 미세먼지/모래바람, 풀려날 경우 지선에게 다시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불안감을 준 가해자, 창문 아래서 지선의 눈에만 발견돼 과거의 가해자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준 거지. 하나도 아닌 세 가지 불안감에 떨고 있는 지선이 미친 것처럼 공포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선과 같은 상황에서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평정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지선의 강박적 행동은 극한의 두려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지선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정환이 인정하고 보호했다면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 미쳐간다고 취급하기 전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지선의 입장에 설 수는 없었을까?
감독은 지선의 공포감이 폭발하는 순간의 공포를 다 잡아내려고 집중했을 것인데, 그런 와중에 정환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는 건 지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은 정환의 모습이 단지 영화 속 모습이 아니라 끔찍한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