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제18회는 폐쇄 위기에 몰린 돌담병원 사람들의 불안감과 갈등을 표출했다. 이번 회 제목은 ‘원하든 원하지않든’이다. 제목이 나올 때 책에 그려진 삽화는 인형 뽑기 기계의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누군가가 끌어당기면 올라가고 놓으면 떨어지는 인형 뽑기 기계의 인형처럼, 자신의 의지, 잘잘못과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에 대해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시작하기보다는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깃털의 무게, 김사부가 먼저 내레이션으로 마음을 전했다
이번 회는 시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동주의 내레이션이 아닌, 김사부(한석규 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동주(유연석 분)의 내레이션이 메아리에 대한 화답처럼 이어졌고, 도원장(최진호 분)의 독백 또한 대비를 이뤘다.
“살다 보면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한테 왜 그런 일들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인연을 만난 건지, 왜 그런 우연이 일어났는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길이 되기 시작했다.”
이전 회차에서는 보통 시대에 대한 정의를 통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갔지만, 이번 회는 개인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시대의 모습으로 확장해 들어갔다. 김사부의 내레이션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김사부 자체의 특수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가 오해받고 피해받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해명하면 되는 일을 김사부는 왜 가만히 있어서 오해를 살까 궁금해졌는데, 동주의 내레이션은 이런 의심에 대한 암시처럼 들렸다. “어쩌면 김사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려와 걱정이 한낱 깃털의 무게보다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바로 의심이라는 씨앗이지. 하나만 뿌려두면 지가 알아서 쑥쑥 잘 크거든.”이라는 도원장의 독백은 김사부가 받는 오해와 피해를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해 준다.
특이한 점은 김사부의 내레이션, 동주의 내레이션, 도원장의 독백을 붙여놓지 않고 떨어뜨려 놓아 답을 보여주지만 처음부터 조합해 완성된 정답을 보여주지 않고 진행한다는 점이다. 알려줄 것을 알려주면서도 시청자들이 뻔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게 만드는 점이 돋보인다.
◇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의 마음
‘낭만닥터 김사부’ 제18회는 거대병원 사람들의 시야에서 눈에 뵈는 수익성만으로 따졌을 때 쓸모없는 병원이라고 생각되는 돌담병원을 폐쇄하려는 시도가 펼쳐진다. 돌담병원 사람들은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라고 말한다.
아직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폐쇄하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이고,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면 정말 멘붕이 왔을 것이다.
인생은 원하는 만큼 해피엔딩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해피엔딩을 원하는 것은 대리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를 통해 희망을 품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방에 가까이 다가선 ‘낭만닥터 김사부’가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에 대한 논란은 의외로 크지 않다.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봤을 때 해피엔딩이 더 개연성 있게 생각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가 영원히 엔딩되기보다는 시즌2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엔딩 자체에 대한 궁금함보다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임원희와 장혁진, 그리고 윤나무! 코믹 캐릭터의 묘미
‘낭만닥터 김사부’는 기본적으로 무척 진지한 드라마이다. 시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명분과 정당성을 제시하고, 의학 드라마 특유의 침착함과 집중을 보여준다. 동주와 서정(서현진 분)의 사랑도 무분별하게 질주하기보다는 성숙하게 진행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지루해질만하면 나와서 몸 개그를 하는 캐릭터가 있다. ‘슈렉’의 당나귀 동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진지한 드라마인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갈등과 긴장이 너무 강해지면 등장하는 인물이 임원희(장기태 역), 장혁진(송현철 역), 윤나무(정인수 역)이다.
신회장(주현 분)의 수술을 맡은 김사부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라이브 써저리(Live Surgery; 수술 시연)의 긴장된 순간에 도원장을 포함한 거대병원 의사들 앞에서 임원희는 간식을 나눠주는 재미있는 연기를 통해 긴장을 완화한다.
도원장과 김사부의 피 터지는 만남의 순간에 웬만하면 등장하는 장혁진은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갈등을 부추겨 격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얄밉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코믹 연기를 진지하게 펼치는 장혁진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작은 감정의 갈등을 대변하고 공론화하는 인물은 윤나무가 맡았다. 갑자기 잡히는 연장 근무 지시 앞에 부인과의 약속을 먼저 떠올리는 윤나무의 모습은,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순간 매우 불편해질 수도 있는 시청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제18회는 수술 후 아직 개어나지 못한 신회장을 거대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는 돌담병원 사람들의 격돌하는 시퀀스를 다루는 방법도 주목됐다. 음악과 슬로모션을 통해, 몸싸움을 하는 불편한 시퀀스를 부드럽게 넘기는 방법은 영화 ‘써니’, ‘스물’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됐던 방법이다.
김사부란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김사부가 장현주(김혜준 분)에게 김아무개 선생님으로 불리다가, 감동받은 현주가 앞으로 사부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며 부른 애칭이 김사부라는 것이 밝혀졌다. 김사부에는 스승의 의미, 존경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마지막에 어떤 존경의 여운을 남길지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