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토일드라마 ‘듀얼’ 제8화에서 이성훈(양세종 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사람이 절대적으로 악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 내면의 추악한 이기심을 표현한 말인데, 목적지향적으로만 보였던 이성훈 캐릭터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어쩌면 그 내면에 다른 면을 이미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자신이 납치한 장득천(정재영 분)의 딸 장수연(이나윤 분)의 순수한 모습에 이성훈이 흔들리는 것은 범인이 인질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뜻하는 리나 증후군(리나 신드롬)이 발현됐다기보다는 이성훈 내부에 그런 면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듀얼’ 스틸사진. 사진=OCN 방송 캡처>
◇ 김정은의 연기가 좋아졌다고, 자연스러워졌다고 느껴지는 이유
‘듀얼’이 화차를 거듭하면서 김정은(최조혜 역)의 연기가 좋아졌다고, 혹은 무척 자연스러워졌다고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실제로 드라마 초반과 지금 김정은의 연기가 현저하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엄밀히 따져보면 큰 차이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김정은의 바뀐 연기를 접한다기보다는, 최조혜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초반 정재영을 돕기보다는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고, 절박하게 뛰어다니는 정재영, 양세종과는 달리 현장에 직접 출동하기보다는 상황을 뒤에서 지휘했기에 시청자들이 미워했었다고 볼 수 있다.
<‘듀얼’ 스틸사진. 사진=OCN 방송 캡처>
제8화 방송에서 김정은은 정재영의 요청에 의해 정재영과 만났고, 사건 현장에 직접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정은이 정재영과 협력하면서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듀얼’에서 김정은은 처음부터 최조혜 캐릭터에 맞게 연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캐릭터와 시청자들이 원하는 캐릭터가 처음에 일치하지 않을 때 이런 이견은 종종 생길 수 있는데,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너그럽게 캐릭터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듀얼’ 스틸사진. 사진=OCN 방송 캡처>
◇ 박동술의 딸 박민지를 납치하지 않고도 납치한 것처럼 만든 아이디어
‘듀얼’ 제7화에서 박동술(엄효섭 분)의 딸 박민지를 실제 납치하지 않고도 납치한 것처럼 만든 아이디어는 무척 돋보였다. 실제로 납치했으면 장득천 캐릭터는 심하게 변화해 훼손됐을 것이고, 시청자들은 마음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장득천에 감정이입해 응원하던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감정이입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었는데,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면서 절묘하게 그런 이탈을 벗어난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토요일 방송인 제7화에서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 제8화에 그런 모든 것을 보여줘, 시청자들이 오해하며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듀얼’ 스틸사진. 사진=OCN 방송 캡처>
◇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것이 많이 남아있다
‘듀얼’은 본방사수하는 시청자들로부터 강력한 호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시청률은 제8화 기준으로 1.8%(닐슨코리아 제공), 1.3%(TNMS 제공)이다. 절반이 지나온 상황에서 시청률의 역주행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이스’, ‘터널’ 등 범죄 관련 드라마가 ‘듀얼’ 이전에 지속적으로 방영돼 장르적 희소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보다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느리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답답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듀얼’ 스틸사진. 사진=OCN 방송 캡처>
‘보이스’, ‘터널’에서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화차 혹은 2화 내지는 3화에 걸쳐 해결되는 사건들이 꾸준히 배치돼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진행이 빠르다고 느낄 수 있었고 구성상 영화같이 펼쳐진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 화차의 이야기를 모르면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 수 없는 것은 ‘듀얼’에 신규 시청자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제12화 이전까지 사건 위주의 빠른 전개가 이뤄지고 그 후 더 큰 감정의 격돌이 이어진다면 시청률 역주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