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원, 김정현 극본, 신용휘, 윤라영 연출, tvN 금토드라마 <보이스4: 심판의 시간>(이하 <보이스4>) 제3화는 ‘저승개가 사는 길’이다. 드라마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극단으로 나눠 표면적 위험과 분노를 전달하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어린 시절 가정 내 결핍이라는 아픔을 가졌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피해자로 살 수 없어 더 가혹한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마음 아픈 일인지 보여주는데, 더욱 공감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마음이 더욱 불편해진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어린 시절 가정 내 결핍의 아픔을 가졌다
<보이스4> 제3화는 지금까지 <보이스> 시리즈가 상처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잇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가해자는 극악무도하고 피해자는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의 결핍, 가정 내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동물망상증을 가진 가해자는 어린 시절 양부모 밑에서 학대를 받았다. 가해자에게 납치당한 피해자는 다른 학생들에게 따돌림과 공격을 받았던, 학폭을 당한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에게는 세상에 나를 온전히 나로 받아들인 사람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고, 자신을 업신여기고 이용하는 사람만 있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사는 엄마는 자신의 이런 찢어지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위로받은 적이 없다.
<보이스4>는 극악무도한 외적 사건에 더욱 집중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서는 문제라는 화두를 던진다. 어떤 누구나 두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온전한 지지를 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확실하게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그의 세상은 안전한가? 나의 세상은 안전한가? <보이스4> 제3화는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은유적으로 던진다.
<보이스4> 제3화는 마지막에는 등장인물과 시청자를 위한 제작진의 따뜻한 노력이 들어 있다. 피해자를 구한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이하나(강권주 역)와 송승헌(데릭조 역)은 자신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한다. 외적인 구출뿐만 아니라 내적인 방어가 추가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스4>는 무척 고급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 피해자로 살 수 없어서 더 큰 가해자가 된다? 이게 말이 돼?
<보이스4> 제3화는 피해자로 살 수 없어서 더 큰 가해자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게 말이 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피해자는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지 아는데 그걸 알면서 더 나쁜 가해자가 될 수 있냐며, 그런 게 가당키나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질문조차 피해자가 얼마나 힘든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피해자는 피해자인 채로 도저히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러면 더욱 소극적이 돼 웅크리게 되거나 혹은 움직이지 못하는 동결 반응에 걸릴 수도 있고, 피해자 진영에 더는 있을 수 없어 가해자 진영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원래 가해자보다 더 악랄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피해자였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처음부터 피해자인 적이 없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절대 이해나 공감을 하지 않겠다는 식의 잘못된 회피 전략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식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보이스4> 제3화에서 동물들은 주인의 폭력에 길들여져 더욱 폭력적이 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 있다. 열등감으로 인간을 물어뜯는 가해자의 모습은, 피해자가 더 큰 가해자가 된 안타까운 사례이다.
<보이스4> 제3화를 보면, 동물망상증 자체에 대한 고찰도 중요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당했던 학대와 고통의 시간, 살기 위해 개 사료를 먹으며 버텼던 시간을 거치면서, 개가 되는 게 더 살아남기에 더 편하다고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차마 자기 자신에게는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한,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보이스4> 제3화에서 이하나와 송승헌이 각각 피해자를 위로하면서 했던 말은, 어쩌면 드라마 속에서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다. 차마 자기 자신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말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으로 살고 싶었으나 인간으로 살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족의 노력,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자책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마진원 작가의 따뜻한 위로의 마음일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