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남 감독의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Sailing a paper boat)’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거의 매일 꿈이 바뀌는 고등학생 하루(박신영 분)는 이번엔 해적선장이 되고 싶다.
이 작품은 하루와 현도(신주협 분)가 부르는 시원시원하고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Musical Number)가 듣는 재미를 높이는 뮤지컬영화인데, 노래 가사는 마치 일기나 독백처럼 들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 서로 반대되는 두 캐릭터가 만드는 케미
‘진로 희망서’에 ‘해적’이라고 적은 하루, 자신의 꿈과 부모님의 기대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진로 희망서를 아직 채우지 못한 현도, 두 사람은 서로 반대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그런데, 내면에는 각자 원하는 꿈이 강하게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설정한 점은 똑똑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외적 갈등이지만, 실제로는 현도 내부의 내적 갈등이 더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도 노란색 가로등이 있고 하얀색 가로등이 있다는 것은 다양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현도 내부의 내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도 된다는 의미라고 연결할 수도 있다.
◇ 복합공연으로 만들어도 좋은 기획이 될 뮤지컬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에서 하루와 현도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일기나 독백의 느낌을 준다. 뮤지컬 넘버는 시원시원한데 실제 무대 공연인 것 같이 느껴진다. 박신영과 신주협, 두 사람 모두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기에 감성적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인 ‘오늘은 또 다른 나’,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나만의 색’, ‘해보고픈 곳으로’를 영화제에서 갈라콘서트 공연으로 기획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고 콘서트를 같이 즐기는 복합공연을 기획해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네 곡 중 한 곡의 악보를 관객에게 나눠주고 가르쳐준 다음 함께 부르는 싱얼롱 시간을 가진다면 더욱 호응이 좋을 것이다.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의 개념을 정립했는데, 자기 스스로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뜻한다.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에서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하루는 위니콧의 개념으로 볼 때 거짓 자기로 살지 않는다. 기질대로 참 자기로 살고 있는데, 남들이 말하는 헛된 꿈이 하루에게는 참 자기의 모습이다.
기질대로 살겠다는 의지로만 채워진 하루와는 달리 현도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감독의 꿈을 드러낼지 고민하는 것은, 사회가 원하는 거짓 자기로 살았을 때 저항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하루는 현도가 자기의 꿈을 갖도록 자극하는데, 참 자기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참 자기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꿈을 따를 것인가 현실에 충실할 것인가는, 태어난 기질대로 살 것인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더 쉽고 편하게 선택할 수도 있다.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에서 참 자기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현도의 모습이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로 표현되는 점은 인상적인데, 메시지를 이미지화 해서 더욱 강렬한 힘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