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화 감독의 ‘나를 마셔줘(Drink Me)’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물약이 있다? 신입생 이나(김유정 분)는 의문의 선글라스 여자(권귀빈 분)로부터 상대방을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물약을 구입한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는데...
뻔하게 갈 수 있는 이야기에 신선한 아이디어가 투입돼 개연성과 인과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이 무척 돋보이는 영화인데, 단편영화가 줄 수 있는 마지막의 신선한 자극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 사랑은 타이밍인가? 사랑은 용기인가?
사랑의 물약이 등장하는 ‘나를 마셔줘’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랑의 묘약’이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라면, ‘나를 마셔줘’는 여자 주인공 이나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나를 마셔줘’와 ‘사랑의 묘약’은 사랑은 타이밍인지, 사랑은 용기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묘약’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려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은 동성인 남자인데, ‘나를 마셔줘’에서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려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은 이성인 남자이다.
건영(강성화 분)과 석환(원승재 분)이 계속 같이 등장하는 것은 사랑이 타이밍이자 용기라는 것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각각의 상황에서 이나의 마음을 밀접하게 따라가는 것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높인다.
◇ 사랑의 물약이 사랑의 물약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마무리 설정
‘나를 마셔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는 다소 뻔한 스토리텔링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사건 위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나의 마음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예상하면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를 마셔줘’를 직접 관람하면 사랑의 물약이 사랑의 물약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돋보이는 설정에 감탄하게 된다. 뻔하게 갈 수 있는 이야기에 신선한 아이디어가 투입돼 개연성과 인과성을 확실하게 확보한다.
‘나를 마셔줘’가 만약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었으면 패널들은 환호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단편영화가 줄 수 있는 마지막의 신선한 자극이 이 작품에서는 살아 숨 쉬는데, 의존적인 것 같았던 이나가 걸크러시(Girl Crush)로 반전의 여운을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