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무리티바 감독의 <녹이 슨(Rust)>은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 2018) 쟁점들 세션의 아시아 프리미어(Asian Premiere) 상영작이다. 타티와 르네는 휴대폰으로 사진과 영상, 음악을 주고받은 지 이미 오래된 사이지만, 지난 수학여행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직접 대면이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시대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의 내면을 미묘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드는 영상과 조명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 직접 대면이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시대
스마트폰의 세상에서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오프라인의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녹이 슨>은 보여준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세상이 잘못된 세상이고, 오프라인의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스마트폰의 세상이 잘못됐거나 거짓된 세상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삶의 반 이상을 진실 되지 않은 삶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잘 때만 진실된 삶을 살고 있다는 편협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세상 자체도 우리 삶의 일부이고, 스마트폰이 아닌 세상도 여전히 우리 삶인 것이다. 거부하기보다는 어떻게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느냐가 현실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녹이 슨>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마트폰의 세상과 오프라인의 세상이 분리되지 않다. <녹이 슨>에서 타티와 르네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물 사진을 보면서 서로 공감대를 찾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공통된 것을 찾지 못해 이야기를 계속 이어지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팁을 제공한다.
편리성과 익숙함에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것을 넣어두고 다니는 세상 속에서, 분실되거나 누가 악의적으로 그 안의 내용에 접근한 순간, 인생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런 이슈는 또한 스마트폰을 통해 삽시간에 급속도로 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
<녹이 슨>은 수족관의 모습,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활기찬 에너지까지 영상에 담고 있다. 스마트폰 속 타티의 사진을 바라보는 르네와 그런 르네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타티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타티와 르네의 키스신을 위한 정서의 개연성을 확보하고, 타티가 먼저 키스를 하는 게 어색하지 않게 만든 영상의 디테일이다.
약간 몽롱함과 함께 밤의 기운을 아름다운 색감 속에서 표현하기도 하는데, 키스신에서 마치 무대 공연처럼 두 사람을 잘 보이도록 밝은 조명이 비치다가 주변이 밝아지면서 두 사람은 어둡게 표현해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런 연결은 무척 수준 높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뛰어난 미장센은 영상의 오버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설레는 표정, 오해로 인한 갈등으로 인한 표정 또한 실감 나게 표현되고 있다. 타티와 르네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는데 두 사람의 연기 못지않게 기여하는 것은 영상과 조명이다. 사건과 내면을 동시에 카메라에 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데, 롱테이크 장면은 감정선의 단절과 점핑을 가능한 줄이고 있다.
◇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시간에 가십처럼 웃고 즐기는 다른 사람들
<녹이 슨>은 브라질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 우리나라의 이야기라고 봐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가십처럼 웃고 즐기는 제2차 가해를 가하는 것은 어쩌면 전 세계가 공통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녹이 슨>을 관람하는 관객 중에는 타티가 피해를 당하고 제2차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티가 초래한 일인데 어쩌겠냐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관객을 포함한 관객들에게 영화는 충격을 전달한다.
타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도 충격 이후에는 이전보다 감정적인 공감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현실에서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 피해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한 도움, 심리적인 도움을 요청할 때도, 주변의 사람들은 피해자가 요청하는 도움에 먼저 귀 기울이기보다는 마치 본인들이 특별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피해자를 판단하고 심판한다는 점은 영화와 현실이 너무 닮아 있고, 매우 씁쓸하게 느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