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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국제여성영화제(2) ‘어른이 되면’ 동생에게 외부 세계를 가져다주는 방법

발행일 : 2018-05-15 11:43:56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Grown Up)>은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 2018) 한국장편경쟁 세션의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 상영작이다.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았는데, 마음 아플 수 있는 이야기를 밝게 그려냈다는 점이 주목된다.
 
중증발달장애를 가진 동생과 다시 살게 된 감독은 동생에게 언니이자 선생님이자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생물학적 엄마만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는 모든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생을 대하는 언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밝게 그려낸 이야기
 
<어른이 되면>은 마음 아플 수 있는 이야기를 밝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13살부터 30살까지 가족과 같이 살지 못 한 동생은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언니인 감독은 깨닫는다.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밝게 그려냈다는 것은 감독이 현실 속에서 긍정성을 찾아내, 더 밝은 미래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혜정이 그린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주인공은 눈이 크고 예쁘게 생겼지만 무서운 느낌도 함께 주는데, 혜정이 마음속 여러 가지 중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키워주고 싶은 의지를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낄 수 있다.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 엄마의 역할을 하는 혜영
 
“혜정이가 시설로 보내지기 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혜정이와 함께 있었다. 혜정이의 곁에는 늘 누가 필요했기에 혜정이의 언니가 된다는 것은 내가 된다는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혜정이는 온전히 우리 가족의 책임이었고 우리 가족의 뒤에는 누구도 없었다.”라고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알려준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감독은 던지는데, 비슷한 상황에 있는 가족들은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언니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시간을 뛰어넘어 이제 언니는 엄마의 역할까지 한다.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언니는 동생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고 기다린다. 그렇다고 싫다고 하는 순간 그런 상황에서 동생을 아예 배제시키지도 않고 혜정이가 견딜 수 있을 만큼 계속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킨다는 점도 의미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니가 동생에게 세상을 제시하는 방법은 무척 긍정적이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는 ‘안아주기(holding)’, ‘다루어주기(handling)’, ‘대상제시(object-presenting)’를 아이에게 하는데, 대상제시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을 뜻한다.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에서 언니가 동생에게 세상을 제시하는 방법, 외부 세계를 동생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은, 동생을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엄마가 아닌 언니는 동생에게 정말 좋은 엄마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다.
 
◇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용기
 
감독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혜정이와 다시 같이 살기로 결심한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심한 것은 더욱 힘들었을 수도 있다.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른이 되면’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온라인 비디오를 만들고 있는 감독은 주로 민주주의, 소수자 인권에 관한 영상을 만든다.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감독의 용기는, 많은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도록 만들 수 있다.
 
픽션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난 후 언니와 동생에게 초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면>의 뒷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그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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