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슘 감독의 <공원에서 명상을(Meditation Park)>은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 2018) 새로운 물결 세션의 한국 프리미어(Korean Premiere) 상영작이다.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온 60세 여성인 마리아 왕은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오렌지색 팬티 한 장을 발견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믿고 살았던 삶이 모두 의미 없이 생각될 정도로 배신감과 억울함, 허무함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복수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자신을 찾는데 더 많이 노력하게 되고 결국 그 과정은 해방의 여정이 된다는 점이 무척 긍정적이다.
◇ 우울한 수 있는 내용을 밝게 표현한 영화, 관객은 큰 불편함을 겪지 않으면서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공원에서 명상을>은 첩보영화의 오프닝이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출발하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오프닝은 암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음악과 함께 밝게 진행되는 영상도 산뜻한데, 영화는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지만 무척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남편이 숨기고 있다는 것을 마리아 왕과 관객은 눈치채고 있는데, 남편만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은 관객이 마리아 왕에 감정이입해 응원하게 만든다.
<공원에서 명상을>에서 주인공의 변화는 진실 추적으로 시작했지만 나를 찾는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는 우울하게 진행되지 않기에 관객은 크게 불편함을 겪지 않으면서 마리아 왕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남편을 미행하는 과정도 음악과 함께 밝게 표현된다. 저렇게 미행하다가 걸리는 것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고, 저러면서 걸리지 않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날카롭게 보는 관객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괴리감이 생길 수 있는 장면에서는 음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간극을 메우는 것은 무척 똑똑한 설정으로 생각된다.
◇ 내가 알던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느낌
내가 알던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상대방을 잘 몰랐었을 수도 있지만, 서서히 변해가며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 돼 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천천히 온도가 높아지는 탕 안에 있으면 뜨거운 것을 잘 못 느끼는 것처럼.
마리아 왕은 내가 얼마나 미력한 존재였는지 느끼는데,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것이다. 평생 최선을 다했던 관계와 장소에서 가지고 있던 자존감이 없어진다는 것은 어린 아니가 겪는 멸절의 고통 이상의 막막함과 불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계성에서 받았던 상처를 마리아 왕은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성을 맺으면서 극복해 가는데, 단지 대상이 바뀐 게 아니라 이전에는 수동적이고 희생적이었다면 새로운 관계에서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미나 슘 감독은 다섯 편의 장편 영화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그 작품들은 선댄스, 토론토,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돼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데, 일상에서의 우울한 소재를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정서적인 면과 영상과 음악 등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서 모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