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특별초청 부문에서 상영되는 장편 영화이다. 청각장애를 지닌 가족들과 살고 있는 11살 소녀 보리(김아송 분)는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데, 왜 나만 가족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고민하며 ‘소리를 잃고 싶다.’라는 소원을 빈다.
부모와 잠시 헤어져 매우 두렵고 불안한 보리에게 여자 경찰관은 상황 파악을 위해 다그치기보다는 짜장면을 같이 먹으며 공감하며 보리의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려준다. 여자 경찰관의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이제부터 보리에게 짜장면은 안전과 행복을 의미한다.
◇ 소외되지 않고 소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보리>에서 보리는 말을 하지 못하는 가족처럼 본인도 말을 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보리가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을까?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드는지 보리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족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게 축복일 수도 있지만, 보리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결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소외되지 않고 소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인데, 본인만 말을 한다는 게 미안했을 수도 있다. 보리가 미안해할 사항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한국말을 잘 하는 터키 사람을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친근함을 느낄 것인데, 보리는 어떤 마음이 들까?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인물이라면, 우리 중에 보리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보리는 가족들 못지않게 위로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 보리 스스로도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리에게 “네가 위로를 해야지, 네가 무슨 위로를 받아야 하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외부의 반응에 보리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영화 제목
<나는보리>는 ‘나는 보리’라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나는보리’라고 제목을 붙여 썼다.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제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띄어 쓰지 않고 연결해 쓴 제목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와 ‘보리’라는 이름, 객체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감독의 의지가 제목에 반영됐다고 생각된다. 영어 제목은 ‘Bori’인데, 한국어 제목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한 뉘앙스를 다 담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 보리에게 짜장면을 마음의 안전감으로 만들어준 여자 경찰관
부모와 잠시 헤어지게 된 보리는 부모를 찾아달라고 경찰서에 간다. 보리를 맡은 여자 경찰관은 어떻게 된 것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짜장면을 사주고, 자신의 것까지 추가로 시켜 같이 먹는다. 보리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서 강력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여자 경찰관은 마음이 무척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등장한 여자 경찰관은 보리와 영화의 분위기가 공포감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녀로 인해 보리에게 짜장면은 이제 마음의 안정을 주는 매개체가 된다.
살면서 두렵고 힘들 때 보리에게 짜장면은 안전감을 주는 음식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마음의 선물을 준 여자 경찰관으로 인해, 보리에게 짜장면은 이제부터 안전과 행복을 의미한다.
진정성 있는 작은 배려는 한 사람의 인생에 정말로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보리>는 보여준다. 보리의 사춘기, 보리의 성장기 속에서 보리와 관객들에게 전달한 여자 경찰관의 따뜻한 마음의 위로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