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림 감독의 ‘수련회 가는 날’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자매인 지윤(김가은 분)과 소윤(김태림 분)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언니 소윤에게 지적장애가 있기 때문에 지윤은 늘 언니 소윤을 돌보기 위해 함께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지윤은 수련회 통지서를 받고 수련회에 언니 소윤과 함께가 아닌 혼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는 상황에 대한 표현과 내면 심리의 표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소윤을 보호하겠다는 지윤의 마음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지윤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김가은과 김태림의 연기 또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벌써 보호자의 역할을 하다
자기는 지적장애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고마워할 수도 있지만, 언니를 항상 보살펴야 한다는 것에 지윤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며 보호받고 싶은 나이인데, 어른처럼 언니를 케어해야 하는 동생의 모습은 보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래의 어떤 누구보다도 빨리 성숙할 것이지만, 그러면서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안타깝게 생각된다. 지윤이 선택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윤에게 지윤이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소윤 때문에 힘든 지윤의 마음을 선생님(장율 분)은 지윤과 관객에게 모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감독은 모든 부담을 지윤에게 100% 넘기지는 않고 숨 쉴 틈을 남겨두는데, 지윤에게 감정이입한 관객들이 숨 쉴 틈이기도 하다.
◇ 지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위치는, 지윤의 자신감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련회 가는 날’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지윤의 마음, 특히 자신감의 정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니를 보살피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지윤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책상 밑에 있을 때도 언니를 다독이는 시간에는 정면에서 바라보지만,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책상이 넘어진 시간에는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를 취한다.
지윤이 교무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할 때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데, 카메라의 시야와 대등하게 있느냐, 카메라의 내려다보는 시선에 눌리고 있느냐가 지윤 내면의 자신감의 정도를 표현한다고 느껴진다.
◇ 아역배우 김가은의 연기력
김가은은 스토리텔링을 주도하는 힘이 있다. 얼마나 대단한 배우로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영화 속에서 언니가 제발 다른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바라는 마음과 행동의 표현은 뛰어나다.
언니에게 엄마의 역할, 보호자의 역할, 상담사의 역할을 모두 하는데, 건방지거나 도도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대견하게 느껴지도록 지윤 캐릭터를 소화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우(임재하 분)가 떨어진 가정통신문을 집어줬을 때 표정 연기도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데, 실제로 사랑을 해봤거나 썸을 탄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순간적인 디테일을 리얼하게 표현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김가은은 밝은 에너지와 함께 내면의 억울한 마음, 우울한 기운 또한 순간순간 표현하는데, 실제 배우의 내면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훌륭한 배우로 클 수 있도록 연기지도를 할 때, 내면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줄 필요도 있다고 느껴진다.
◇ 아역배우 김태림의 연기력
‘수련회 가는 날’에서 김태림은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연기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소윤을 비하해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감독의 디렉팅 일수도 있고, 소윤 캐릭터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일 수도 있고, 그냥 본인의 연기 패턴일 수도 있는데, 인물에 잘 스며들어 표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탱크 안에서의 표정과 몸짓은 김태림의 가능성을 더욱 높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불안한 마음에 광기를 발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서의 동결반응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