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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여행의 정석’(감독 정혜원)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52)

발행일 : 2018-02-06 11:43:34

정혜원 감독의 ‘여행의 정석(Do Dream)’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가끔 엄마(김금순 분)를 도와 치킨 배달을 하는 백수 정석(김의태 분)은 미국 자전거 여행을 꿈꾼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대생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과외 자리를 찾지만 정석의 얄팍한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난다.

영화는 학벌지상주의, 성적만능주의 사회에서 아직 주류에 끼지 못했거나 주류에 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정석은 그런 사회의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매우 소외되고 절박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서울대생이라면 무조건 높게 평가하는 풍조, 학벌지상주의와 성적만능주의

‘여행의 정석’은 서울대생이라면 무조건 높게 평가하는 풍조 속에서 학벌지상주의와 성적만능주의가 만든 모습을 무겁지 않게 건드리고 있다. 정석의 거짓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에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풍토 또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서울대생이라고 잘못 알고 높게 평가하지만, 치킨 배달을 하는 모습을 보고 180도 태도가 변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한 치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포장이 어떤지에 따라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물론 그간 살아온 삶의 축적이 현재 서울대생으로 살게 만들 수도 있고, 치킨 배달을 하는 삶으로 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눈에 보이는 스펙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차별을 두는 현실을 영화는 반영하고 있는데, 어떤 직업이라도 소중하다고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좋은 학교 가는 것 빼고는 꿈이 없는 성훈에게 가짜 서울대생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인생 경험

‘여행의 정석’에서 초등학생 성훈(이성욱 분)은 서울대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정석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그냥 서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정석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설정은 훨씬 더 강하게 와닿는데, 디테일을 살리면서 전달력도 높이고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좋은 학교 가는 것 빼고는 꿈이 없는 성훈에게 가짜 서울대생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인생 경험은 이 영화가 주는 판타지로 작용할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정석에게 이거저거 가르쳐야만 할 것 같지만, 정석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성훈의 꿈을 통해 정석이 자신의 위치와 꿈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나간다는 점 또한 의미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결국 정석도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여행의 정석’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여행의 정석’에서 서울대로 표현된 학교는 한예종이 아닐까?

예전에는 서울대를 나오면 절대 정석처럼 살지 않던 시대도 있었지만, 요즘은 서울대를 나와도 정석처럼 사는 청춘들이 많다. 허울 좋은 스펙으로 만들어진 자아를 채울 내적 알맹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부족하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의 정석’에서 표현된 서울대는 실제로 한예종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국립대이고 그 분야의 최고 실력자들이 입학을 하며,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현실에 직면하면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는 양가감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정석’ 정혜원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여행의 정석’ 정혜원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GV; Guest Visit) 시간에 무대에 오르면 위대한 감독과 배우로 칭송을 받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치킨 배달 알바를 할 경우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무시당한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여행의 정석’에서 정석이 그동안 생각하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잡고 있던 것을 놓으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는 희망의 암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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