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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2016 상영작(2) ‘깨어난 침묵’

발행일 : 2016-11-23 10:46:52

박배일 감독의 ‘깨어난 침묵(After Breaking the Silence)’은 부산 생탁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울독립영화제2016) 본선경쟁 섹션의 장편 영화이다.

◇ 소외된 사람들 중에서도 또다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는 5명의 인터뷰로 시작하고, 인터뷰로 마무리한다. 시작과 마무리에 내면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고, 그 사이에 사건과 이야기를 넣는다.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그 과거에서 이어지는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선택한다.

영화 시작시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현재 생탁 노조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지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개인의 클로즈업된 영상에, 별도로 녹음한 내레이션을 입혔는데, 처음에는 영상 오류인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더 영상 속 작은 움직임과 내레이션의 내용에 집중하게 됐다. 일종의 낯설게하기 같은 느낌이다.

‘깨어난 침묵’은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의 가치를 담고 있다. 종업원 110명에 사장은 41명이라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조직도를 가진 회사로, 사장들은 매달 2천만 원 이상의 배당금을 찾아간다고 한다.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생탁의 노조는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한 실력행사가 아닌, 기본적인 근로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한다. 그들은 연차와 시간외수당을 올바로 받기를 원하고, 그마저도 안 될 경우 주말 근무시 점심, 저녁 값이라도 제대로 받기를 원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있듯이,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조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어난 침묵’은 보여준다. 사람들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에 관심이 많고 제품도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노조도 대기업 노조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중소기업 노조에는 일반인들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가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난 침묵’은 소외된 사람들 중에서도 또다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생탁의 노동자가 110명이 아니라, 1만 1천 명, 11만 명이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 벌써 해결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투쟁을 접고 복귀하는 사람들도 모두 생존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영화는 짚고 넘어간다. 빨리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탁 노동자들은 노사갈등뿐만 아니라 노노갈등도 겪는다. 사장이 있기 때문에 근로자가 있고 회사가 있기 때문에 근로자가 돈을 벌어간다고 말하는 사람과, 근로자가 노동하기 때문에 사장들이 돈을 벌어간다고 말하는 사람의 의견을 모두 영화는 담고 있다.

◇ 흑백영화, 흔들리며 거칠지만 생생함을 담고 있는 영상

노조에서 직접 찍은 영상은 ‘깨어난 침묵’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수평이 맞지 않고 흔들리며 거칠지만, 영상은 생생함을 담아 현장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깨어난 침묵’는 흑백영화이다. 여과 없는 영상에서 유일하게 필터링 된 것은 색이다. 내용은 전체를 보여주면서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가거나 기존 선입견으로 본질을 벗어나게 볼 가능성을 차단한다. 예를 들어 투쟁의 장면을 담은 영상에서 빨간 띠가 계속 관객의 시야에 들어온다면, 생탁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기존의 다른 투쟁의 이야기가 선입견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영화이기 때문에 상대가 있는 예술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지나치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제대로 전하는 방법을 감독은 선택한 것이다. 낯설게하기와도 연관될 수 있는데, 영상이 가진 메시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흑백이 사용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 노사의 해결이 끝이 아니다. 국민의 위생과 안전은? 생탁을 믿고 마실 수 있을까?

‘깨어난 침묵’을 보면 노사갈등의 해소가 된다고 모든 문제가 풀렸다고 볼 수는 절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조 과정이 너무 더러워서 생탁을 3년간 안 먹었는데, 더러운 것을 너무 많이 보니까 머리가 착각을 일으켜 일상 작업 현장으로밖에 안 보였고, 생탁을 마셔보니까 맛은 있었다”는 한 근로자의 인터뷰는 충격적이다.

최근에는 먹거리의 위생과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의 분노는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고, 생탁의 사장들에게는 배당금으로 받는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근로자들에게는 생존과 생활이 걸린 문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깨어난 침묵’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깨어난 침묵’에 대해 노사갈등이 불거지지 않았더라면 비위생의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조차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비위생이 판치는 현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식품 공장은 아직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탁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노동 3권 보장과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환경 개선 요구를 침묵 속에서 깨어나게 했다. ‘깨어난 침묵’이 다큐멘터리로서의 기록의 가치와 고발의 가치에 머물지 않고, 후속조치까지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영화가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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