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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2016 상영작(8) ‘비치온더비치’

발행일 : 2016-11-28 19:51:58

정가영 감독의 ‘비치온더비치(Bitch On the Beach)’는 헤어졌지만 끝나지 않은 연애의 일상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6) 새로운선택 섹션의 장편 영화이다.

어느 대낮에 예고 없이 전 남친 정훈(김최용준 분)의 집에 들이닥친 가영(정가영 분)은 “우리 자면 안돼?”라는 말을 꺼내며,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절대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남녀가 바뀐 듯한 설정은, 일상이지만 하나하나 이유와 과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쿨하지 못한 찌질한 매달림인가, 아직 남아있는 사랑인가?

술 마시고 전 여친에게 밤늦게 전화하기, 애정행위 보채기 등 주로 남자들이 하는 행동을 가영은 정훈에게 한다. 가영은 주도적이다. 예고 없이 정훈의 집으로 찾아오면서도 당당하고, 정훈에게 같이 자자고 끊임없이 요청하며 다시 사귀자고 노골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갈구가 아닌 사라진 사랑을 다시 되찾고자 하는 결의와 의지로 보인다.

가영이 매달린다기보다는 보채고 생떼를 부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정훈의 계속적인 밀어냄과 가영의 찌질한 보챔 속에는 모두 내면의 진정성이 담겨있다. 둘 다 예의를 차리거나 내숭을 떠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정가영 감독은 본인의 이름으로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가영은 감독의 평상시 모습이거나, 어쩌면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영화적 판타지로 재구성된 인물일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남자들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만약 영화 속 가영의 실제 모델이 남자들이라면, 감독은 반발심을 사전에 막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캐릭터를 교체한,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비치온더비치’는 독특한 영화이다. 19금 색(色)드립을 들으며 처음에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현실처럼 영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가영의 모습을 보면서, 단순한 색드립이 아닌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토크쇼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 2인극의 연극, 2인무의 무용이 연상된, 2인이 등장하는 영화

‘비치온더비치’는 이하윤이 잠시 등장하고, 전화 목소리로 등장하는 정훈의 현 여친이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집 안에서의 가영과 정훈의 대화로 채워진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는 2인극의 연극, 2인무의 무용을 연상된다.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두 사람만 등장하기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 특히 대화가 중요하다. 사건의 진행은 행동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주로 대화로 이뤄진다. 그냥 보면 헤어진 애인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헤어지는 이유 중에 대화가 적어지고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잡아당기고 밀쳐내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영과 정훈의 대화는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집 밖의 모습이 잠시 보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집 안에서 진행되고, 야릇한 행동도 있지만 주로 대화로 이뤄지는 ‘비치온더비치’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2인극이고, 특별한 무대 장치가 많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영상이 아닌 눈앞에서 라이브로 바로 듣는 색드립의 연기는 더 생생할까, 아니면 보고 있기 민망해질까?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에 오히려 관객들이 긴장할 수도 있다. ‘비치온더비치’를 관람하는 관객들처럼.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감독이 각 막에 제목을 정하고, 친절하게 자막으로 알려준 이유는 무엇일까?

‘비치온더비치’는 4막으로 구성돼있다. 제1막 하여간에, 제2막 그랬대 글쎄, 제3막 그리하야, 제4막 그런대로이다. 각 막의 제목에 관객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각 막의 제목은 추상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구체적인 제목이었으면 정가영 감독은 아예 제목을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자막으로 표현된 각 막은 같은 감정선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매듭을 주고, 추상성을 부여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긴장감을 유지한다. 4막의 표시는 웹드라마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비치온더비치’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정지해있는 카메라는 흑백 영상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메라가 사람을 따라가기보다는 카메라 앵클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는데, ‘비치온더비치’를 보려면 기존의 색을 버리고 앵글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오라는 감독의 디렉팅처럼 느껴진다.

정가영 감독은 “사적이기 때문에 보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비치온더비치’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장편 데뷔작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한 감독의 모든 것일지, 아니면 이제 시작하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감독의 차기 작품이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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