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The Remnants)’은 용산참사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울독립영화제2016) 본선경쟁 섹션의 장편 영화이다.
◇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에 대한 규명
‘공동정범’은 음악 없이 자막으로 시작한다. 경찰특공대를 통해 용산 참사를 되돌아본 전작 ‘두 개의 문’은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 돌아온 5명의 철거민에게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검찰은 마지막까지 망루 4층에 남아있던 철거민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을 물어 공동정범으로 기소한다.
공동정범은 하나의 범죄에 대해 각자가 분담해 이행했지만, 각자는 그 전체에 대해 형사 책임을 지는 것이다. 행위자나 행위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공동책임을 물어 공동정범으로 기소한 것이다. 이런 기획 재판으로 국가폭력의 책임은 철저히 은폐됐다.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는 용산 싸움이 아니라 연대 싸움이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간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공동정범으로 구속된 철거민들이 출소한지 2년 10개월 후인 2015년 10월, 3년 후인 2016년 1월에 농성 철거민 좌담회 개최한다. 참사 당시 망루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 채증 영상, 사진, 경찰 무전 등을 재분석 후 새롭게 확인한 사실들과 농성자들의 기억을 비교해보기 위해 모였지만, 하나의 시나리오로 앞뒤가 정확히 맞춰지지 않는다.
피해 의식의 아픔에 상처 또한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사가 위급했던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여 당시 상황을 규명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폭력의 가해자는 폭력에 대한 규명을 명확히 할 수 있지만, 폭력의 피해자에게 완벽한 규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계획했던 자와 계획 없이 당한 자, 가해를 가한 자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당한 피해자에게 같은 수준의 규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 작은 감옥과 큰 감옥, 마음의 감옥에 갇힌 이들
김일란 감독의 전작 ‘두 개의 문’이 경찰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통해 국가 폭력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했다면, ‘공동정범’은 피해자 각각의 개인을 경유해 보이는 것 안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다.
‘공동정범’은 두 가지 장면을 교차 편집하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교차해 내부에 있는 진실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직접적으로 나서서 중재를 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인터뷰를 계속해 따라감으로써 다큐멘터리 고유의 작법에 충실코자 한다.
‘공동정범’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계속적으로 질문을 한다. 직접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지 않더라도, 관객이 생각하고 대답하게 만들기 때문에, 고도로 세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공동정범’의 생존자에게는 그들이 구속됐던 작은 감옥과 출소 후 다시 만난 세상이라는 큰 감옥이 있다. 두려움과 고통에 힘들었을 그들에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인터뷰를 계속 요청하는 것 또한 작은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큰 폭력 앞에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용기를 발휘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평생 잊을 수 없는 죄의식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 억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시도와 노력은, 참사의 진실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정범’은 2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의 솔직한 감정이 들어간 인터뷰를 계속 듣다 보면, 관객들은 각자의 퍼즐을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맞출 수 있다. 2시간 넘게 감독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사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