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 감독의 ‘분장(LOST TO SHAME)’은 성소수자를 이해하지만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내면을 다룬 작품으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6) 새로운선택 섹션의 장편 영화이다.
◇ 인간의 위선적인 양면, 이해하지만 인정할 수 없다?
‘분장’에서 무명 배우였던 송준(남연우 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연기라고 극찬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칭찬에 괴로워하며 갈등한다. 송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소수자 연극 ‘다크라이프’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진정성 있는 연기를 펼치려고 직접 트렌스젠더(홍정호 분)를 만나기도 한다.
송준은 가깝게 다가가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은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이다. 송준은 성소수자에 대해 영화 초반에는 이해했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표현된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진다는 개념에서 이해하기 힘들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해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갈등한다.
‘분장’은 인간의 위선적인 양면을 다루고 있다. 대놓고 욕하며 비난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행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화가 아닌 일상의 다른 상황에서도, 이해하지만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무력함과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매우 솔직하면서도 위선적인 개념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정면돌파한다. 감독은 영화적 환상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은 성향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위선적인 송준의 모습을 위선적이지 않게 전달하기 때문에, 실제 강도에 비해 더욱 자극적으로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도 있다.
친한 친구의 동성애 고백에, 가족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예전보다는 많이 일반화되면서,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그들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영화 속 송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은 ‘분장’이다. 영화 속 연극인 ‘다크라이프’에서 주인공의 연기를 하기 위해 송준이 분장을 한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성소수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분장을 한다.
그런데, 배우도 아니고 성소수자도 아닌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위선이라는 분장을 한다. 분장을 하고 때론 가면도 쓴다. 물론 스스로는 분장을 했는지 가면을 썼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그런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분장’은 우리에게 민낯 아닌 민낯이 있다는 점을 건드리고 있다.
◇ 영화 속 연극을 통해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서 같은 메시지가 반복되면 확신을 줄 수도 있고, 때론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분장’은 ‘다크라이프’에 출연한 송준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연극은 반복되기에, 그리고 무대 공연의 특성상 매번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특징을 이 작품은 잘 활용하고 있다. ‘다크라이프’의 연출가인 교수(한명수 분)가 송준이 감정대로 따라가 즉흥을 해도 된다고 인정하면서 개연성도 확보한다.
‘분장’은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이외에도 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깊숙이 들어간다. 감정이입하여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들의 삶의 고통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의 고통은 받아들이지만, 작가, 감독도 비슷한 갈등과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우는 한 역할에 대해 감정이입하지만, 작가는 글을 쓸 때 모든 배역에 대해 감정이입한다. 자신이 창출해낸 인물을 미워하면서도 그 자신이 되어 이해해야 한다. 배역은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신분열적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창작의 고통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고통이기도 하지만, 한 번에 자신이 여러 명의 역할을 겹치지 않게 해야 하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분리하는 고통이기도 하다. 작가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감독도 비슷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분장’에서 남연우는 작가, 감독, 주인공의 역할을 모두 맡았다. 송준은 캐릭터 자체가 내면의 갈등이 강한 역이다. 남연우는 감독의 역할과 주연배우로서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밑그림 하에 영화를 시작했겠지만, 감정이입하면서 둘 사이에서 괴로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갈등은 주인공 송준의 갈등이 돼 내면 연기를 강화했을 수도 있다.
‘분장’에서 송준의 동생 역 안성민의 무용신과 영화 마지막 부분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조연출 역의 양조아는 진짜 조연출 같다. 구박받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모습이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같이 느껴진다.
◇ 다양성 영화 소재의 다양성을 생각하며
다양성 영화는 말 그대로 소재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다양성 영화의 소재는 성소수자, 왕따 코드가 많다. 두 소재 모두 소외와 연결되며, 현재 우리 현실에서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청소년과 대학생이 만드는 영화, 저예산 영화 등 독립영화에서 자주 다뤄진다.
그런데, 이런 면은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독자성처럼 여겨져 이제는 외국 영화제에서 이런 소재로 상을 받거나 주목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영화감독들도 동일한 의견 표명한다.
서울독립영화제2016은 영화를 선정할 때 다양성을 유지했다. ‘분장’은 성소수자 입장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간 내면의 위선적인 이중성을 강하게 조명했다. 비슷한 소재라 생각되면서도 ‘분장’의 독창성이 느껴지는 이유이고, 영화제도 이런 측면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남연우 감독은 이 작품의 연출의도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물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객이 감독의 연출의도를 따라갈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의 연출의도를 염두에 두고 관람하는 것은 ‘분장’을 보는 관객의 재미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